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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미술 여행

불모의 땅에서 패션의 새 지평 열다

‘Nora Noh·자료로 보는 노라노발(發) 구 기성복 패션의 역사’

불모의 땅에서 패션의 새 지평 열다

불모의 땅에서 패션의 새 지평 열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펄 시스터즈의 판탈롱….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를 열고 맞춤복 일색이던 시절 기성복을 제작, 전파해 패션의 ‘해방’을 알린 패션디자이너 노라노가 스타일링한 작품이다. “옷은 예술품이 아니다. 옷은 옷다워야 한다”는 패션 철학을 가진 그는 85세에도 여전히 현역 디자이너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를 조명하는 전시가 10월 30일 다큐멘터리 영화 ‘노라노’ 개봉과 함께 열렸다.

1947년 20세 나이로 미국 유학을 떠난 노라노는 49년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을 개업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양장에 익숙지 않은 외교관 부인들을 위해 한복의 감각을 살린 아리랑 드레스를 디자인해 동서양 패션을 아우르기도 했다. 그는 주문복을 만들던 시절부터 ‘기성복 시대’의 도래를 예감해 손님들 옷 치수 데이터를 기록, 축적해왔다. 이 같은 데이터 평균은 그가 기성복을 만들 때 요긴하게 쓰였다.

1979년 노라노는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에 ‘Nora Noh’ 간판을 걸고 쇼룸을 열어 20여 년간 자신의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최지희, 최은희, 엄앵란 등 당대 콧대 높은 여배우들에게도 ‘노라노를 입는다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 프레시움(관장 배인준)에서 열리는 기획전 ‘Nora Noh ·자료로 보는 노라노발(發) 구 기성복 패션의 역사’는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삶을 통해 한국 패션의 역사를 조명한다.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행보를 담은 신문과 사진 자료 외에 기성복을 제작하기까지의 과정과 해외 진출 시기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유학과 복식문화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당대 여성에게 복식문화와 패션 담론을 전파한 그의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칼럼, 80년대 뉴욕 패션계의 베스트셀러였던 세로 스트라이프 원피스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때 많은 한국 여성이 ‘인형의 집’ 속 노라를 동경하며 울타리 밖으로 나갔지만 대개 다 가혹한 세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아니다. 막히면 통한다는 의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불타는 한 여성의 모험은 끝내 불모의 이 땅에 디자인 나라를 만들어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노라노를 이렇게 평했다. 그처럼 빼어난 한 패션디자이너의 열정과 우리나라 패션 산업이 걸어온 발자취를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월 15일까지, 문의 02-2020-1880.



주간동아 2013.11.04 911호 (p74~74)

  • 구희언 여성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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