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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베 날마다 ‘극우 역주행’

지지율에 도취, 망언과 도발 행동…헌법 개정·엔화 공습 이어질 듯

  •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 날마다 ‘극우 역주행’

1월 9일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나가타(永田)에 있는 총리관저 4층 접견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일행을 맞았다. 아베 총리는 한국 의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서구적 느낌의 얼굴형, 부드럽게 위로 말아 올린 머리카락, 흰 와이셔츠에 와인색 넥타이. 실제로 본 아베 총리의 모습은 귀공자 같았다. 말투도 사근사근했다.

“한국은 일본과 공통 가치를 나눈 중요한 우방입니다. 양국 관계가 앞으로 더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황 대표도 맞장구를 치며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회담이 끝나갈 무렵 황 대표는 이번 면담에서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꺼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아베 총리가 워낙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황 대표는 자칫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뻔했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났다. 아베 총리의 외모는 여전히 귀공자다. 하지만 언변은 달라졌다. 한국을 배려하고 예우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부정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둔하는 극우 투사로 변했다.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정치가를 두 부류로 나눈다. ‘싸우는 정치가’와 ‘싸우지 않는 정치가’다. 싸우는 정치가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정치가다. 싸우지 않는 정치가는 상대방 말에 동조하면서 비판하지 않는 정치가다. 나는 첫 당선 이래 ‘싸우는 정치가’를 지향해왔다.”

뼛속까지 우익 집안서 성장

아베 날마다 ‘극우 역주행’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초등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1071회 정기 수요집회를 열면서 ‘아베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1월 발간한 아베 총리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지만 지병을 이유로 1년 만에 그만둘 때 그는 ‘심약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오히려 약해 보이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 싸우는 정치가를 자처한 그는 마음속 신조를 잊지 않았다. 그의 신조가 무엇인지 감을 잡으려면 가문과 북한이란 키워드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아베 총리의 가문은 화려하다. A급 전범이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외할아버지, 자민당 총재 후보였던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 아버지다. 할아버지 아베 히로시도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세습 의원이 많은 일본 정계에서도 그의 가문은 특별하다. 특히 그는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눈에 외할아버지는 전쟁을 주도한 범인이 아니라 일본을 강하게 만든 국가 지도자였을 것이다.

2002년 9월 관방부 장관이던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를 따라 북한에 갔다. 고이즈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일 평양선언’에 서명하려 할 때 그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하지 않으면 평양선언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아베 총리에게 북한은 ‘철저히 응징해야 할 존재’였던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해 많은 피해를 입혔기에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이 가해자라는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납치 사건이 알려진 후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일본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퍼져갔다. 아베 총리 역시 피해자란 인식을 가졌다.

“일본은 (패전 후) 60년간 국제 공헌에 노력해오면서 호전적 자세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 간 문제만 생기면 과거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꾹 참으며 오로지 폭풍우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 결과 걸핏하면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듯한 인상을 세계에 심어왔다.”(‘새로운 나라로’ 중에서)

아베 날마다 ‘극우 역주행’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

가문의 영향과 북한에 대한 반발로 그는 극우 성향을 갖게 됐다.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그는 헌법 개정을 통한 국방군 보유를 주장하고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외쳤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자 ‘내정 간섭’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1997년에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모임’을 결성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을 열심히 후원하기도 했다. 뼛속까지 우익인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선거에서 총재, 12월 총선에서 총리가 됐다.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약 5년 만에 다시 총리로 복귀한 것이다. 당시 그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 정말 이렇게 빨리 다시 남편이 총리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치솟는 지지율, 그리고 자신감

분명 아키에 여사의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2007년 9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그는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못했다. 여러 중의원 의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며, 북한이 미사일을 쏘자 안보에 위협을 느낀 일본 국민은 매파인 아베에게 표를 몰아줬다.

일본 국내외 언론은 아베가 총리 취임식 후 각종 극우 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총리가 되자마자 그는 한국, 중국과 관계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특사를 보냈다. 자신이 직접 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아소 다로 부총리를 보냈다.

아베 총리는 초기엔 발톱을 숨겼다고 할 수 있다. 당장은 ‘경제 회복’에 주력해야 했기 때문에 외교 관계에선 ‘안전 운행’을 했다. 특히 한국에겐 예의를 보였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 영유권 갈등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한국과는 잘 지내야 했다. 그래야 전선(戰線)이 넓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했다.

4월 23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간 대화 한 토막.

마루야마 가즈야 자민당 의원 : “무라야마 담화 내용 중 ‘머지않은 과거 한 시기’ ‘국가 정책의 잘못으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등 3개 문구는 모호하게 ‘그저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무사안일주의로 역사적 가치가 없다.”

아베 총리 : “정말 애매하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 담화에서) 그런 문제가 지적되는 것은 사실이다.”

마루야마 의원 : “식민지 지배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것과 한국·일본처럼 합의해 병합한 것은 다르다.”

아베 총리 : “(무라야마 담화에 나오는)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측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침략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한국, 중국 정부는 정색하며 반발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의 실언일 것이다. 마루야마 의원의 유도에 걸려들었다. 적어도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안전 운행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꽤 있었다.

하지만 하루 뒤 아베 총리는 각료 3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과 관련해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각료들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비난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두둔한 것이다. 그러자 전날 침략 정의에 대한 발언도 실언이라기보다 자신의 평소 신념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총리가 된 이후 줄곧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 언론뿐 아니라, 서구 언론도 강하게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 파임스(FT)’는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마음속의 국수주의적 악마를 통제하려고 애썼지만 그 가면을 벗어던지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아베 총리가 지난해 집권한 후 많은 기대를 받았고 경제와 국방 같은 분야에서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았으나 최근 삐뚤어진 역사인식으로 자신이 이룬 모든 진전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렸다”고 소개했다.

잠재적 폭탄 2개

그가 안전 운행을 접고 극우 본색을 드러낸 것은 높은 지지율에 도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70%를 웃돈다. 통상 내각을 꾸린 뒤에는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아베 내각의 경우에는 계속 상승 중이다.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아베 총리는 ‘거칠 것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아베 총리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 극우 본성을 드러낸 만큼 앞으로도 ‘우향우’ 행보를 이어갈 개연성이 크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 본격적인 극우 행보를 보일 것이다. 첫 번째 작업은 헌법 개정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주도해 제정했고, 1947년 시행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한 적이 없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아베 총리에게 첫 번째 폭탄이 터질 수 있다. 60년 넘도록 헌법을 고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국민적 반발 때문이였다. 일본 국민도 ‘과거 헌법이 현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헌법을 손대는 것에 대해선 불안을 느낀다. ‘혹시 다시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 발의 요건을 다룬 96조부터 먼저 개정하고 그다음 헌법 9조를 개정하고자 한다. 헌법 9조는 전쟁 포기와 교전권을 금지한 조항이다. 지금은 아베 총리의 인기에 헌법 9조 개정 반대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아베 내각이 실제 개정하려고 하면 반대 세력이 결집할 개연성이 크다. 그 경우 국민 여론이 둘로 나눠지면서 아베 내각은 큰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또 다른 폭탄은 경제다. 아베 내각이 의도적으로 돈을 풀다 보니 시중에 엔화가 넘치면서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아베가 총리로 취임한 지난해 말에는 1달러당 80엔 전후였지만 지금은 100엔에 근접했다. 수출 기업의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주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일본 경제가 활기를 띠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경제 조작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중·장기적 성장동력 덕분에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인위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끌어올렸다.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정부 기대만큼 소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 경우 불황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온다. 민심이 한순간에 아베 내각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886호 (p46~48)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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