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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개성공단의 눈물

평양도 5월 7일 잔뜩 기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나올 후속 조치 따라 개성공단 운명 결정할 듯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평양도 5월 7일 잔뜩 기대?

평양도 5월 7일 잔뜩 기대?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남측 인원 50명 중 43명이 철수한 4월 29일 밤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의 차량 심사 게이트 윗부분에 통행불가를 알리는 ×자 신호가 켜졌다.

‘충성의 반역.’ 2002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개성공단 건설을 합의할 무렵 이 지역을 관할하는 2군단의 단장이던 김격식 현 인민무력부장에 대해 북한 군부 내에서 수군거렸다는 말이다. 그해 12월 북한 개성직할시와 판문군 일대에서 개성공단 사업을 진행하자 원래 이 지역에 주둔하던 인민군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 등이 송악산 이북으로 자리를 옮겼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사시 남측으로의 진격로가 10km 남짓 길어지게 된 당시 조치를 김격식이 군말 없이 수용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개인에게는 충성이지만 국가에는 반역이 될 수 있다는 말. 개성공단 존재 자체에 대한 북한 군부의 이중적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전시상태 끝나야 개성도 풀려”

10여 년 시간이 흐른 지금 개성공단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북측과의 미수금 협상을 위해 남은 7명의 귀환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현재 상황은 남북이 추후 대화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벌이는 팽팽한 기 싸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평양은 한국과 미국이 다음 수순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고 이들을 ‘인질 아닌 인질’로 삼았고, 남측은 개성공단 폐쇄가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늦춘 상태에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려고 ‘대화의 끈’을 남겨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운명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물음은 과연 북측의 ‘진짜 속내’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실제로는 폐쇄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협상의 판돈을 키우려고 ‘벼랑 끝 전술’을 펴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닫겠다고 결론 내렸으면서도 그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려고 현재 수순을 밟는 것인지의 문제다. 전자라면 이후 협상을 통해 얼마든 재개될 공산이 크지만, 후자라면 이미 개성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잠시 시계를 돌려 5년 전으로 가보자. 이명박 정부 출범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로 남북간 긴장국면이 형성되던 2008년, 북측은 이른바 ‘12·1조치’를 통해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측 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통행시간대를 축소해 남측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이듬해 3월에는 세 차례에 걸쳐 육로통행을 차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2009년 9월 들어서야 정상화됐다. 아예 가동이 중단된 현재 상황에 비하면 낮은 수준의 위기였지만, 당시에도 폐쇄와 재개 발언을 오가며 혼돈스러운 시그널을 쏟아낸 북측 속내가 무엇인지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이 시점에 이미 김정은이 후계자 지위로 현지시찰을 다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시기였고, 2009년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교시가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된 시점이기도 하다. 최근 공개된 북한 기록영화에는 이 무렵 개성을 관할하는 2군단을 포함해 다양한 전방부대를 시찰하며 각급 지휘관과 토론을 벌이는 후계자 시절 김정은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개성 풀어야 논의 vs 논의 있어야 개성 풀어

평양도 5월 7일 잔뜩 기대?

2009년 3월 9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이날부터 20일까지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리졸브 기간에 개성공단 출입에 관한 엄격한 군사적 통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당시 개성공단에 대한 북측의 강경행보가 ‘후계자 김정은’의 작품이 아니었겠느냐는 시각이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때 이미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개성공단 폐쇄를 마음먹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08~2009년 강공에도 북측은 당초 요구했던 북측 근로자 임금인상이나 토지사용료 신설 등의 조건을 뜻한 대로 얻어내지 못했다. 일련의 일로 ‘후계자 자존심’을 구겼던 김 제1비서가 본인이 권력을 장악한 지금에 와서 ‘폐쇄 결심’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은 개성공단 문제가 단순히 개성공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북측의 인식을 감안할 때 더욱 힘을 얻는다. 북측 매체들의 관련 언급을 살펴보면 현재의 통행제한 조치는 전시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펼친다. 전쟁에 돌입했으므로 남측 인원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공단 관리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맡지만 군사분계선 문제는 군부 관할로, 전시상황이 해소돼 군사분계선 통행이 정상화해야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이 개성공단만을 다루자는 남측의 실무협상을 거부하고, 미국의 이른바 ‘적대시 정책 철폐’ 등 큰 틀의 협상을 진행해야만 이 문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평양이 기다리는 것은 5월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를 통해 한미 양국이 ‘지도자의 최고 존엄’을 존중해주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그에 준하는 ‘큰 틀의 협상 논의’ 카드를 만들어오는지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추후 남북 혹은 북·미 간 대화가 시작되고 ‘전시상황’이 해소되면 통행을 정상화하는 명분은 만들어지겠지만, 평양이 이번 기회에 2008년 제기했던 근로자 임금인상이나 토지사용료 신설 등을 꺼내들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때처럼 빈손으로 물러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야 ‘지도자의 위신’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남측이 저렇듯 사정하니 마음을 돌려주겠다’는 식의 명분 쌓기다.

통일부가 ‘중대조치’를 언급한 4월 25일 청와대는 개성공단을 볼모로 새 정부를 흔들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 이번 일을 계기 삼아 향후 남북관계를 ‘올바른 틀’로 가져가겠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일명 ‘서울 프로세스’)을 위해서라도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북측이 기대하는 구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성을 풀어야 더 큰 논의가 가능하다는 남측과 더 큰 논의가 있어야 개성을 풀 수 있다는 북측. 모든 눈이 워싱턴에서 만날 한미 두 대통령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주간동아 886호 (p44~45)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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