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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변호사, 공익 활동에 높은 관심과 참여 열기 전담 변호사는 20여 명 수준, 아직은 걸음마 단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성원들. 왼쪽부터 황필규·윤지영·장서연·소라미 변호사, 신옥미·전은미 실장, 차혜령·염형국 변호사, 안주영 실장. 해외 연수 중인 박영아 변호사와 최근 ‘공감’에 합류한 이재영 변호사는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배의철 변호사는 틈날 때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과 종각역, 2호선 을지로 3가역 등 노숙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는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밤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서너 시까지 지하철역을 돈다. 노숙인 대상 법률상담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노숙인 대부분이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법률 시스템은 사실상 없다”며 “지하철역을 찾아가 변호사라고 밝히면 상담받으려는 이가 무척 많다”고 했다.

“지난주 만난 한 노숙인은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을 하고 싶다며 방법을 묻더군요. 신용정보를 도용당해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도움을 청한 분도 있고요.”

배 변호사는 무보수로 이들을 돕는다. 노숙인만이 아니다. 그가 지난해 문을 연 ‘퍼블릭법률사무소’(‘퍼블릭’)는 수임료를 전혀 받지 않는 ‘비영리 공익 법률사무소’다. 그는 “보호 가치가 있는데도 경제적 이유로 법적인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 인종·종교·국적 등의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을 위해 무료 공익소송과 법적 구제 활동을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노숙인을 비롯해 난민, 장애인 등에게 법률적 도움을 해왔고,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도 진행 중이다.

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비 충당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사법연수원 졸업 후 비영리 공익 활동을 위해 ‘퍼블릭법률사무소’를 연 배의철 변호사.

사무실 운영비는 ‘공익법률기금’과 후원자들의 소액 정기후원금 및 기부금, 법률구조기금 등으로 충당한다. 이 중 공익법률기금은 공익변호사 활동 지원을 위해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기금. 2011년 사법연수원(연수원) 41기생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배 변호사는 “연수원을 졸업한 뒤 법률 지식과 열정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려는 동기생이 있다면 다른 동기들이 힘을 모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수원 41기로 당시 인권법학회장이던 그는 이 뜻에 공감했다. 다른 학회원들과 함께 ‘공익펀드’ 논의에 참여했고, 이후 집행위원장을 맡아 기금 조성을 이끌었다. 배 변호사는 “법률가의 길을 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의 실현과 소수자 인권 보호에 대한 꿈이 있다. 공익펀드 참여가 그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호응은 뜨거웠다. 김이수 당시 사법연수원장 등 교수진도 참여했다. 2013년 1월 현재 공익법률기금 후원 회원은 544명, 후원금은 1114만5000원이다. 연수원 41기 중 ‘공익변호사’ 길을 택한 배 변호사와 류민희, 김동현 변호사가 매달 여기서 300만 원씩 지원받는다. 류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지난해 2월 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을 창립해 역시 비영리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 배 변호사는 “후원금에서 사무실 운영비 등을 제하면 월급은 150만~180만 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퍼블릭’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수입 지출 명세를 상세히 공개한다.

변호사자격증을 이용해 돈을 벌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만 하는 변호사. 일반 직장인보다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행복한 사람들. 2004년 1월 아름다운재단이 만든 공익 변호사 그룹 ‘공감’은 우리나라에 이러한 ‘전업 공익변호사’ 모델을 널리 알렸다. 출범 당시 ‘공감’ 변호사들이 밝힌 목표는 “1)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구체적 인권을 보장하고 인권환경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 우리 사회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고 2)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변화가 모색되는 다양한 지점에서 법률전문가로서의 가능한 실천을 함께 하며 3) 법이 인권보장과 사회변화를 위한 열린 도구로 기능하게 하는 실천들을 ‘공익법 활동’으로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것”. 이후 9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 ‘공감’의 뜻에 ‘공감’하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

‘퍼블릭’과 ‘희망법’에 앞서 2011년 1월 ‘공익법센터 어필’(‘어필’)을 세운 김종철 변호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연수원 시절 ‘피난처’라는 난민 비정부기구(NGO)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면서 관련 활동에 관심을 뒀다. 변호사가 된 뒤 로펌에 들어갔을 때도 기업 대리 업무와 난민을 위한 공익 활동을 반반 정도씩 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전업 공익변호사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젊은 변호사 2명이 고민을 덜어줬다. 각각 1000만 원씩 마련해주며 “이걸로 네 뜻을 펼치라”고 격려한 것. 작은 규모의 공익법률기금이 조성된 셈이다. 김 변호사는 그 돈으로 사무실을 얻었다. 이후 인권활동가 못지않게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 의뢰인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데 필요한 증거 자료를 얻으려고 아프리카로 날아가고, 국제인권 단체와 협력해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그사이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공안에 걸려 우리나라로 도망쳐온 조선족 리모 씨 등 많은 이가 ‘어필’ 도움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법무법인 태평양’이 만든 ‘재단법인 동천’에서 다양한 공익 활동을 설계하는 양동수 변호사(맨 오른쪽)가 이주 여성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성과가 차츰 알려지면서 출범 당시 10명에 불과하던 정기후원자는 2월 현재 259명으로 늘었고, 2월엔 국내 굴지 로펌 ‘율촌’이 ‘어필’에 1년간 공익변호사 연봉을 후원해주기로 약속했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빠듯한 살림 탓에 엄두를 못 냈다. 율촌 후원금으로 변호사를 한 명 더 채용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어필’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3년 2월 지출 명세에서 급여는 525만 원. 그와 정신영 미국변호사 등 상근변호사만 2명인 조직 임금으로 보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상에도 김 변호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 기뻐하는 듯했다. 그는 “난민을 만나면 그들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된다. 나는 데모 한 번 못 해보고 공부만 하면서 무미건조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들은 다르다. 변호사로서 그들의 드라마틱하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를 좀 더 나은 이야기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송무만 담당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을 창조적 아이디어가 솟아난다”며 예를 하나 들기도 했다. ‘어필’이 매년 업무경과와 재정상황 등을 정리해 펴내는 연간보고서 이름 ‘제법이다(制法利多)’. ‘법을 사용해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아 직접 지은 이 이름에 대해 그는 “감각적이지 않느냐”며 무척 뿌듯해했다. “‘어필’의 비전을 공유하는 지지자와 협력자를 늘리고 난민문제에 대한 사회 인식을 제고하려면 홍보가 필요하다. 그걸 위해 각종 이름을 짓는 데 아주 집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젊은 변호사 사이에서는 이러한 ‘전업 공익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1월 아름다운재단에서 독립해 ‘공익인권법재단’으로 재창립한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로스쿨 졸업생을 대상으로 채용 공고를 냈는데 1명 모집에 25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턱없는 연봉 보람으로 채워

문제는 이런 관심이 바로 공익전담변호사 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 가장 큰 장애는 경제적 문제다. 창립한 지 9년 됐고, 개인 후원자가 1100명 수준인 ‘공감’ 변호사 연봉이 3000만 원 안팎이다. 변호사의 일반적인 기대 소득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영리 변호 활동을 하는 이들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인 게 현실이다. 염 변호사는 “갓 개업하는 변호사가 사무실을 내면서 이 정도 후원금을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감’에 지원했던 분 가운데 상당수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익전담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배의철 변호사도 “연수원 동기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공익변호사기금이 없으면 나 역시 사무실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익을 위한 삶이 곧 동료 또는 가족 삶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면 예비 법률가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종철 변호사는 “특히 로스쿨 졸업생의 경우 재학 중 학비 때문에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전업 공익 활동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2009년 6월 설립된 ‘재단법인 동천’(‘동천’)은 이런 우리나라의 공익 법률 활동 현실에서 매우 이례적 존재다. ‘법무법인 태평양’(‘태평양’)이 체계적인 공익활동을 위해 만든 이 재단에서는 양동수 변호사 등 공익전담변호사 4명이 일하고 있다. 양 변호사는 자신을 ‘프로보노 매니저(Probono manager)’라고 소개했다. ‘프로보노’는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probono publico’의 줄임말로, 전문지식을 이용한 봉사활동을 의미한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무료 변론이나 법률 상담 등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양 변호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공익 활동(프로보노)을 원하는 변호사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를 이어주는 일인 셈이다.

양 변호사는 연수원 수료 후 우리나라 유수의 법무법인에서 기업 자문 변호사로 일했던 인물. 그는 “법률전문가로서의 삶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가끔씩 ‘내가 꿈꾼 삶이 이런 거였나’ 회의가 들 무렵 ‘동천’의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내가 진짜 돕고 싶은 의뢰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 난민, 탈북민 등을 위해 일하는, 보통의 공익전담변호사 같은 삶을 살 거라고 여기고 동천 행을 결심했죠.”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더 급한 게 보였다. 주위에 있는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일이었다. 양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모든 변호사는 공익 활동 의무를 진다. 2000년 개정한 변호사법 등에 따라 연간 일정 시간 이상 공익 활동을 하지 않은 변호사는 공익기금을 납부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 욕구도 높은 편이다. 문제는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 그는 변호사들이 자신의 역량에 맞춰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어떤 변호사가 어느 분야에 전문성과 관심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NGO 등과 연계해 적절한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변호사들이 난민법 제정, 협동조합기본법 개정 과정에 참여해 입법지원 활동을 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

“영리 분야 법률의 경우 제·개정 과정이 굉장히 복잡해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꼼꼼하게 검토하죠. 그런데 비영리 분야 법률 중 일부는 그런 과정 없이, 어찌 보면 참 허점 많은 상태로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 분야야말로 프로보노 활동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보석처럼 빛나는 ‘사회적 소금’

‘법무법인 율촌’이 ‘공익법센터 어필’에 1년 동안 공익변호사 연봉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연 후원식.

양 변호사는 “NGO는 변호사를 어떤 일에 어떻게 쓰면 좋은지를 모른다. 변호사는 법률적 내용을 제외하면 NGO가 활동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둘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법률전문가이면서 NGO와 계속 소통할 수 있는 내가 할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양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프로보노 변호사와 NGO 활동가가 함께 참여하는 ‘난민법률지원 교육프로그램’ 등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동천’의 성과 덕에 ‘태평양’은 올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제정한 ‘변호사 공익대상’ 단체 부문을 받았다. 개인수상자는 ‘공감’ 창립 때부터 사무총장을 맡아 꾸준히 공익전담활동을 이끌어온 염형국 변호사다.

법조계 곳곳서 지원 움직임

양 변호사는 “‘동천’을 계기로 다른 대형 로펌들도 공익전담변호사를 두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공익 활동 정도를 로펌 평가의 주요한 기준으로 삼는 미국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펌이 공익 활동에 적극 나설 경우 전체적으로 공익법률영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 공익전담변호사들의 기대도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익전담변호사는 20여 명 수준.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공익 변호사가 필요한 곳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매우 부족한 수”라고 지적한다. 그는 “‘공감’이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하면서 내건 목표 가운데 하나가 ‘공익변호사 양성 기금 조성’이다. 공익전담변호사를 꿈꾸는 젊은 변호사가 현실적 이유로 좌절하지 않도록 기금을 조성해 그들을 후원하려 한다”고 밝혔다. ‘공감’이 우리 사회에서 공익전담변호사의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만큼 후배들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졸업하는 로스쿨 3기 변호사 중 최소 한 명 이상을 선발해 공익전담변호사 활동 초기 2~3년간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이라며 “그사이 해당 변호사가 자립 기반을 마련하면 다른 변호사를 또 후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인원을 늘려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연수원 42기가 선배들의 공익법률기금 같은 자체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율촌’이 ‘어필’에 1년간 변호사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 법조계 곳곳에서 공익전담변호사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변호사 공익 활동의 성과와 개선 방향’에 대한 심포지움을 열고 ‘로펌 공익 활동 평가지표’를 개발, 발표하는 등 변호사의 공익 활동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젊은 변호사들로부터 시작된 공익 활동 열기가 공익전담변호사 수의 증가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881호 (p42~4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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