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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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았다, ‘독감백신’ 접종하라

매년 2000여 명 사망… 손 씻기 등 개인위생수칙 지켜야

  •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wjkimmd@gmail.com

    입력2013-01-28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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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지 않았다, ‘독감백신’ 접종하라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1월 17일 독감백신 접종을 하는 한 여성.

    한동안 잠잠하던 독감이 뒤늦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1월 초 미국에서는 독감이 크게 유행해 병원에 환자가 몰리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보스턴 시와 뉴욕 주가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미국발(發) 독감이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처럼 순식간에 우리나라로 유입하지 않을지, 독성이 강한 변종독감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도 1월 17일 질병관리본부가 독감 유행주의보를 내렸으며, 본격적으로 독감 환자가 급증하고 폐렴 입원환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유행한 독감은 계절독감 일종인 H3N2아형의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변종독감은 아니다. 단지 예년보다 유행 규모가 커 문제가 불거졌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H1N1아형의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주를 이루고, 일부에서는 H3N2 바이러스도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 따라서 H3N2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 여부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장염, 급성출혈성결막염 환자도 급증하면서 겨울철 때 아닌 바이러스 질환이 창궐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자연 치유

    조만간 설 연휴로 전국적인 민족 대이동이 있다. 이 기간 출국하는 해외여행객도 많은 만큼 독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예방법을 알아보자.



    독감이라고 부르는 인플루엔자는 용어가 주는 영향에 따라 ‘독한 감기’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감기와 달리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치명적 질환이다. 수일간 고열과 심한 몸살로 업무에 지장을 받기도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자연 치유된다. 그러나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만성폐질환, 심혈관질환, 당뇨, 만성신부전, 암, 장기이식 환자 등), 임신부, 영유아 같은 고위험군에게 독감은 전혀 다른 중증 질환이다. 고위험군이 독감에 걸리면 폐렴이 합병되거나 만성질환이 갑자기 악화해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감 관련 사망 사례의 90% 이상은 노인에게서 발생한다. 유난히 많은 부고 소식에 영안실을 찾아 고인의 사망 원인을 확인해보면, 고열을 동반한 독감이 갑자기 시작되고 그것이 폐렴 합병 또는 지병 악화로 이어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따라서 노인이 겨울철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면 한 해 건강을 보장받는 것과 매한가지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선 독감으로 매년 2000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폐렴은 2011년 국민 사망 원인 통계에서 6위로 상승할 정도로 현저히 늘었다.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생활습관병인 당뇨, 심혈관질환이 늘면서 독감과 폐렴은 노인 사망 원인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독감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유행하는 H1N1, H3N2 바이러스는 모두 백신에 포함돼 있어 한 번 접종으로 예방 가능하다. 특히 고위험군은 독감으로 인한 입원 및 사망 위험성이 높은 만큼 백신 접종 우선 권장 대상자다. 설령 본인은 건강하더라도 돌보는 사람이나 가족 가운데 고위험군이 있다면 백신을 맞아 전염 위험성을 원천적으로 막는 게 좋다. 이는 만성질환자를 자주 대하는 의료인이 독감백신 접종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가족 내에서는 독감 전염이 노인 생명에 큰 위협이 되며, 어린이가 전염원 구실을 한다. 전형적 사례는 어린이가 놀이방이나 유치원에서 독감에 감염된 후 한 집에 사는 노인에게 전염시키고 노인에게 폐렴 합병이 나타나 입원하는 경우다. 어린이는 대부분 독감에 걸려도 잘 낫는 반면, 한두 가지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은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즉, 면역체계가 노화해 방어면역이 잘 가동되지 않는 노인이 독감에 걸리면 세균성 폐렴이 합병되거나 갖고 있던 지병이 악화돼 뜻하지 않게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맡기는 맞벌이부부의 경우, 적어도 독감 백신과 함께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해드리는 것이 노인에게서 발생하는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을 피하는 길이다.

    항바이러스제 투약 빠를수록 좋아

    늦지 않았다, ‘독감백신’ 접종하라

    최근 독감과 장염이 유행하면서 위생용품을 찾는 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

    백신이 독감을 완전하게 막아주는 것은 아니므로 손 씻기, 기침 에티켓 등 개인위생수칙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독감 환자는 기침, 재채기를 하면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함된 미세한 침방울을 주변 1~2m 이내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따라서 기침, 재채기를 할 때는 휴지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꼭 싸 주변으로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한다. 또한 손으로 코를 훔칠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손을 오염시키므로 악수를 통해 상대방에게 직접 전염될 수도 있다. 오염된 손으로 책상, 문손잡이 등을 만져 환경을 오염시키면 타인에게 독감이 간접적으로 전염되기도 한다. 따라서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독감은 갑자기 시작되는 고열, 오한과 함께 기침, 인후통, 콧물이나 코 막힘 같은 호흡기 증상에 두통, 근육통, 관절통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면 의심할 수 있다. 독감이 의심되면 의사에게 진료받아 타미플루 같은 특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한다. 항바이러스제는 열이 시작된 후 가급적 48시간 안에 투약하는 것이 좋으며, 빠르면 빠를수록 해열과 증상 개선 효과가 크다. 특히 노인, 만성질환자 같은 고위험군과 중증 독감 환자는 합병증 발병과 사망 위험성을 낮출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한다. 건강한 성인이라도 독감에 걸리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만큼 수일간 앓아눕게 되므로 항바이러스제 치료로 일찍 회복하는 것이 이득이다.

    설 연휴 고향에 계신 부모를 찾아뵐 때 독감 백신 접종을 했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접종을 하지 않은 부모에게 백신 접종을 챙겨드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효도선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북반구에 위치한 국가(중국,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현재 독감이 유행 중이다. 해외여행객은 출국 전 반드시 독감백신 접종을 해 뜻하지 않은 낭패를 피해야 한다. 동남아국가에서는 늦은 봄까지 독감이 유행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행 중 현지에서도 손 씻기와 기침 에티켓을 지키고 입국 시 발열, 기침 같은 독감 증상이 있으면 검역관에게 신고해 적절한 조치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독감이 매년 4월까지 유행하므로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예방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독감뿐 아니라, 겨울철 빈번히 발생하는 라이노바이러스로 인한 감기,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설사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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