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8

2012.10.15

여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생명의 정치 : 변화의 시대에 여성을 다시 묻는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2-10-15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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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강금실 지음/ 로도스/ 180쪽/ 1만1000원

    아무리 우아하게 화장해도 ‘여성’이라는 말에는 여전히 차별과 설움이 묻어난다. 직업 선택에서 양성평등 시대가 열렸지만 여성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경직돼 있다. 여성이 여성성을 발현하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으려면 여성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문화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첫 여성 민변 부회장, 첫 여성 로펌 대표, 첫 여성 법무부 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등 ‘1% 엘리트 삶’을 살아온 저자는 지금까지 여성의 대표성을 지니고 살아왔다. 따라서 그에게는 앞선 여성으로서 남다른 소명의식과 다음 세대 여성에게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책에서 여성과 정치, 권력과 생명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기업과 국가의 관료적 구조와 문화, 가부장 사회의 전통 속에서 여성성은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고 열등한 것으로 폄하돼왔다. 남성성만을 좋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풍조와 역사적 경험은 여성들이 늘 겪어온 일이며, 가정에서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강인함과 공격성, 냉정함, 대범함, 권위 등 남성처럼 살아야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저자는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생명을 살리는 방향’이 되려면 여성이 주체가 되고 선구자 노릇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태어나자마자 비천한 이름을 얻고 버림받은 삶을 살았지만 남성보다 더 과감한 용기와 도전의식을 보여준 ‘바리데기’ 신화와 ‘아바타’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서 그 예를 찾는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과 여성이 연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생명의 축제를 만들었다. 2008년 여름 뜨거웠던 촛불집회는 10대 여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1차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소녀’ 약 6000명이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성 김진숙은 부산의 한진중공업 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였다. 땅에서는 소셜 엔터테이너 김여진이 즐거운 응원전을 이끌었다. 자발적인 연대와 참여, 단지 생명으로서의 공감이 이른바 희망버스를 움직였다.



    사법부 등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곳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는 우리 모두 “권력에 대한 인식이 도착(倒錯)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국민의식과 권력의 변화를 거론한다.

    “권력은 국민에게 속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사리 잊힌다. 대통령에게, 정치인에게, 혹은 가진 자에게 권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러한 권력 메커니즘으로 세계를 읽고 이해하는 관행에 젖어 있다. 권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권력이란 말을 오용하는 한 우리는 부정적이고 도착된 힘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잠복한 권력 지향적 패러다임은 상명하복 질서만 강요함으로써 자유롭고 수평적인 소통을 억압한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권력질서는 가만히 둔 채 단순히 ‘경제민주화’만 외치는 것은 낡은 틀에서 내용물만 조금 고치자는 격이라는 의미다.

    책 곳곳에서 저자는 정치적 정의는 사라지고 소통 부재와 불도저식 개발을 지향하는 이명박(MB) 정권과 각을 세운다. 특히 4개강 사업은 자연과 생명을 억압하는 ‘반생태적 불행한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해 평화, 공존의 공동체를 만들려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여성의 힘이 절대적이다. 여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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