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4

2012.07.02

브랜드 없는데 덩치 키우기에 열중

페스티벌 공화국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7-02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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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없는데 덩치 키우기에 열중
    상전벽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지금 돌아보면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제 포화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해가 바뀌면 새로운 페스티벌이 또 생겨난다.

    이번 여름에도 새로운 페스티벌을 선보인다. 일본 최대 페스티벌 서머소닉과 제휴하는 슈퍼소닉.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댄스뮤직 페스티벌 센세이션, 그리고 마이애미, 뉴욕, 이비사, 상파울루 등에서 매년 개최하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까지. 여기에 이미 여름 페스티벌의 양대 강자로 자리잡은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과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더하면 여름 한 달 남짓 동안 해외 톱스타가 참가하는 대형 페스티벌이 5개나 줄줄이 열리는 셈이다.

    여름만이 아니다. 서울재즈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 그린 플러그드가 이어지는 봄이 있고,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과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등이 줄을 잇는 가을도 있다. 야외 활동이 어려운 겨울엔 실내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페스티벌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려스럽다. 페스티벌이라는 상품의 공급량이 급격히 늘어난 데 반해 다양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획일적이다. 먼저 라인업이 그렇다. 페스티벌 출연진이 대부분 겹친다. 특히 국내 출연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한창 뜨는 팀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 음악계의 기형적인 지형 탓이다.

    한국은 방송과 공연이 철저히 분리된 나라다. 시장에서 방송이 갖는 영향력은 공연보다 막강하다. 아이돌이 한국의 특화한 음악상품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방송 친화적인 가수들은 대부분 라이브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해야 하는 페스티벌에서는 방송에서 볼 수 없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면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은 지명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그 전에 비해 많은 밴드가 스타덤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봤자 손에 꼽을 정도다. 아마 근래 들어 생겨난 대형 페스티벌 수보다 적을 것이다. 그러니 페스티벌 간 차별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록페스티벌이든, 재즈페스티벌이든, 일렉트로닉페스티벌이든 헤드라이너급 주요 라인업을 제외하면 거기서 거기다. 음악적 차별성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이 만들어나가는 페스티벌 문화도 거기서 거기긴 마찬가지다. 이런 말이 있다. 한국 대중문화 시장은 20, 30대 여성이 아니면 모조리 망한다는. 그네들을 제외하면 문화 소비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페스티벌도 예외는 아니다.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이나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처럼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페스티벌을 제외하면 역시 여성 위주의 관객 분포도를 보인다. 그러니 어느 페스티벌이나 잔디밭에 돗자리가 깔리고, 패션 또한 산뜻한 피크닉 복장이 주류다.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문화에 돈을 쓰지 않아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편중된 시장구조 덕에 기획자들 역시 남성 취향의 음악(이제 그런 게 남아 있기나 한가?)보다 여성 취향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먼저 섭외하는 경향을 보인다.

    페스티벌의 획일화를 부추기는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크게 한판 키워보자는 심리다. 페스티벌을 하나 만들려면 최소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스폰서가 필수다. 대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스폰서를 맡는다. 스폰서로선 당연히 판이 커야 폼이 난다. 아직 브랜드 가치도 없는 신생 페스티벌조차 티켓 몇만 장 판매를 목표로 열리는 이유다(물론 대부분은 목표를 채우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는 1970년 1000명 규모로 시작해 지금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15만 장이 매진되는 세계 최대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 같은 드라마가 나올 수 없다. ‘라디오헤드가 나오는 일본 페스티벌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역시 작은 규모로 시작한 서머소닉도 불가능하다. 공연보다 더 흥미진진한 후지 록페스티벌의 관객 문화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고작해야 20, 30대 도시 여성(과 그들의 남친)을 위한 아웃도어 레저시장으로서의 의미나 있을까.

    진짜 페스티벌다운 페스티벌, 혹은 페스티벌의 다양성을 지니려면 ‘작고 길게 보기’가 필요하다. 공통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소규모 집단이 만들어내는.(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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