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윤동주 일생에 세계가 매혹](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2/07/02/201207020500034_1.jpg)
이 소설 속 화자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일하며 문학의 꿈을 키우다, 17세에 강제 징집돼 후쿠오카 형무소 간수병이 된 와타나베 유이치다. 그는 냉혹한 간수이자 검열관인 스기야마 도잔이 1944년 겨울 살해되자, 이 사건의 수사 책임을 엉겁결에 맡는다. 이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도잔의 간수복 윗주머니에 있던 시 한 편.
교도소장과 간수장이 아무것도 밝히지 않기를 바라는 가운데 유이치는 범인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창살에 갇힌 시인과 창살 밖에서 그를 지키는 검열관의 운명적 대결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시인이 깊은 산속 오솔길을 안내하듯 문장의 미로를 슬쩍 펼쳐 보이면, 검열관은 헐떡이는 사냥개처럼 인용된 작가들과 작품을 찾아 서가를 헤맨다. 사건은 파헤칠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지만 작가는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하고 한 개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한국에서 출간되기도 전에 높은 선인세를 받고 영어권 명문 출판그룹인 영국 팬맥밀란(Pan Macmillan)과 영어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작가의 전작 ‘바람의 화원’과 ‘뿌리 깊은 나무’(이상 밀리언하우스)가 드라마로 제작돼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에서 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 소설은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먼저 큰 관심을 보여 성장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런 결실을 거둔 데는 이정명이 전작에서 보여준 성과와 이 책을 소개한 한국인 에이전트에 대한 신뢰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과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후 한국 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원천적 힘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여러 강점을 지녔다. 먼저 형무소라는 독특한 공간, 갇힌 자와 가두는 자의 대립 캐릭터,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은유와 비유가 넘치는 탄탄한 문장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요절한 시인의 안타까운 삶을 시인이 가진 시 세계와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독특한 구성, 장르문학의 장점을 도입한 확실한 복선도 장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럽 편집자들이 ‘시놉시스’ 1쪽과 리더스리포트 2쪽, 그리고 샘플 번역본 27쪽 등 30쪽만 읽어보고 선인세를 높게 제시했다는 것은 이 작품에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별을 스치는 바람 윤동주 일생에 세계가 매혹](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2/07/02/201207020500034_2.jpg)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