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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창조의 근원 젊은이여, 변방을 두려워 마라”

‘변방’에서 길 찾는 신영복 교수 인터뷰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자유의지와 창조의 근원 젊은이여, 변방을 두려워 마라”

“자유의지와 창조의 근원 젊은이여, 변방을 두려워 마라”
인자한 할아버지를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곱게 나이 든 사람도 많지만 아집 센 노인이 더 많은 까닭이다. 다행히 신영복(71)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전자에 속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복무하던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으로 구속돼 감옥에서 20년간 복역했는데도 어둠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온화한 음성과 생김새, 남을 배려하는 아량까지 두루 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 교수가 좋은 인상을 풍기는 것은 그가 할아버지들의 오랜 취미인 서예를 장기로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실로 여러 곳에 글씨를 써줬다. 국민이 매일같이 마신다는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뿐 아니라 멀리 미국 하버드대학,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까지 그의 글씨가 아로새겨져 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차원에서 신 교수는 자신이 쓴 글씨가 있는 곳, 즉 월북했다는 이유로 조명받지 못하는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5·18 광주항쟁의 최초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김개남 장군의 추모비, 고(故) 노무현 대통령 묘석,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등을 찾아가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경향신문’에 풀어냈고, 최근 그 글을 묶어 ‘변방을 찾아서’(돌베개)를 펴냈다.

모든 문명 변방에서 시작

6월 1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내 책을 사준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면구스러워했다. 북콘서트 시작 전 30분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주하게 된 그의 음성은 클래식기타 선율 같았고, 그의 말은 잔잔하면서도 곰곰 되새길 만한 지혜의 클래식이었다. 짧은 인터뷰를 보충하려고 ‘변방을 찾아서’ 내용을 괄호 안에 정리했다.



▼ 책 제목을 ‘변방을 찾아서’라고 정한 이유는 뭔가.

“내가 쓴 글씨가 있는 곳을 둘러보자는 기획이었다. 그것이 변방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목이 ‘변방을 찾아서’가 됐다. 내가 가진 이미지나 생각이 주류 담론과는 거리가 멀고,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도 중심부에 있는 것 같지 않다.”

▼ 변방에 있는 사람들만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하나. 아니면 그런 사람들의 청만 들어주나.

“그런 건 아니다(웃음). 다만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고, 글씨를 청하는 사람과 내가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으면 응한다. 이번 글에서 빠졌지만, 아마도 민주열사 묘비와 대학에 있는 추모비에 내 글씨가 가장 많을 것이다.”

▼ 글씨란 어떤 의미인가. 감옥에서 글씨 연습을 부단히 했다고 들었다.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처음 글씨를 배웠다. 글씨는 의식의 심층에 각인돼 있다. 글씨가 어떤 상황에 놓일까 생각하면서 애정을 두고 글씨를 쓰려 한다(서예의 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서여야(書如也)라는 금언이 있다. 서예란 그 시대의 고민을 담아야 하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이 그 속에 담겨야 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글 궁체를 많이 쓰지만 궁체는 내가 좋아하는 민중시나 민요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궁체로 민중시를 쓰면 된장찌개를 크리스털에 담은 것처럼 어색해 고민을 거듭한다.”

▼ 감옥에서는 책 3권만 소지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을 주로 읽었나.

“독서 편력을 돌이켜보면 일관되지 않다. 다만 그곳에서 책을 재구성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개발하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청소년권장도서 초청위원 자격으로 박완서 선생님과 한자리에 선 적이 있는데, 그때 박 선생님도 나도 우량도서를 선택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책을 고르지 않았다. 모든 책을 보면서 교사든 반면교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책 서문에 ‘이 글이 독자들의 풍부한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젊은이들이 변방에서 창조적인 일을 담당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렇게 썼다. 우리 사회는 중심부가 견고한 편이다. 탈근대의 화두도 소통이 아닌가. 변방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중심에서 밀려난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창조의 근원이 될 수 있다.”

▼ 창조적인 일을 담당해야 할 젊은이들이 멘토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사는 것이 답답하기 때문에 지혜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을 많이 산 사람의 과거 경험은 누군가에게 제약이 될 수도 있다. 09학번 교실에 59학번인 내가 들어가면 50년이라는 간극이 있으니 함부로 멘토가 될 수 없다. 멘토는 계몽적인 패러다임, 낡은 패러다임이다. 사람은 모든 걸 스스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

노인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자유의지와 창조의 근원 젊은이여, 변방을 두려워 마라”
▼ 사람들이 변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 곳이 없으며,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하지 않은 문명이 없다(오리엔트 문명은 변방인 지중해의 그리스·로마로 그 중심을 옮겨간다. 그리고 다시 갈리아 북부의 오지에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문화가 꽃핀다. 근대사의 중심부는 해변의 네덜란드와 섬나라 영국으로 옮겨가고, 다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이동한다. 동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중국 역사 역시 고대의 주, 진에서부터 금, 원, 청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

▼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갖고 살아가야 할까.

“자유의지와 상상력으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인권력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은 권력을 장악한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권력 상층부가 변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때 하층부에서 잠깐 행정권력을 장악했는지 모르지만 모든 시스템은 오랜 시간 노인권력이 쥐고 있다.”

▼ 우리나라의 지배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이론적으로만 말한다면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혁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이 반드시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혁명을 거치지 않아 경제문제와 빈곤문제가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사회 엘리트가 재편되고 구도가 결정돼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현실적으로 엘리트 재생산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주간동아 843호 (p32~33)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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