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2017.06.07

김민경의 미식세계

작은 몸에 가득 찬 바다

제주 활고등어회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6-02 17: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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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의 참치’라 부르는 고등어는 어디에나 있다. 국적이 다양하고 해동, 냉동, 자반, 통조림 등 가공법도 여러 가지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이다. 등이 높고 통통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고등어(高登魚)는 살이 많고 맛이 구수하며 영양이 풍부한 데다, 값도 저렴하다. 요리법도 굽고 튀기고 조리고 끓이는 등 꽤나 다채롭다. 아쉬운 점은 고등어가 가진 양질의 지방이 구수한 맛을 선사하지만 빠른 산패와 비린내도 동반한다는 것이다. 활고등어회를 내륙에서 맛보기 힘든 이유다.

    활고등어회는 제주에 가면 제맛을 즐길 수 있다. 살결이 부드러워 씹을 것이 거의 없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게다가 작은 몸통이지만 부위별로 확연히 다른 맛이 난다. 대체로 부드러운 와중에 씹는 맛을 선사하는 부위도 있고, 방어나 참치에서 날 법한 독특한 향이 물씬 나는 부위도 있다. 꼬리 부위의 보들보들한 살에선 고소한 맛이 진하게 배어난다.

    고등어회는 먹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라 한 점 한 점 다르게 맛보는 재미가 있다. 먼저 초장, 간장, 쌈장에 각각 찍어 간결하게 즐긴다. 그다음에는 마른 김이나 깻잎, 상추 등에 올려 좋아하는 양념과 함께 먹는다. 양파 또는 부추처럼 향이 좋은 채소 절임과 곁들이거나 곰삭은 배추김치로 감싸 향긋한 재료의 어울림을 만끽한다. 마지막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간장이나 쌈장과 함께 참기름을 약간 뿌리고 고등어회를 한 점 올려 크게 한입 맛본다. 뜨거운 김에 고등어 살이 살짝 오그라들면서 절묘한 식감과 향을 선사한다. 작은 몸통에서 저며 낸 살이 이토록 여러 가지 맛을 선사하다니 고맙고 놀랍다.




    회를 먹은 다음에 탕이 빠질 수 없다. 얼큰한 매운탕도 좋지만 뽀얗게 끓인 젓국이 한 수 위다. 제주에서는 고등어가 흔한 생선이라 잡자마자 소금에 대강 버무려뒀다 젓국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짭짤하게 숙성시킨 생선을 푹 끓이면 특유의 감칠맛과 기름진 맛이 우러나 우윳빛의 깊고 진한 국물이 완성된다. 여기에 푸성귀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뒤 한소끔 끓이면 배릿한 향에 짭조름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고등어젓국은 제주 성산읍에 있는 남양수산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제주에서 횟감으로 쓰는 고등어는 대부분 양식한 것이다. 자연산은 계절에 따라 살이 오르는 정도와 먹이 활동이 들쭉날쭉해 고기 맛과 질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양식을 선호한다. 물론 같은 양식 고등어라도 산란 직전이나 날이 추워져 살이 부쩍 오를 때가 더 맛있다. 같은 바다에서 키운 고등어도 하루 이틀 수족관에 머물다 보면 맛이 또 달라진다. 수질과 수온에 민감해서다. 회를 뜨는 사람의 솜씨도 중요하다.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회를 떠야 살이 퍼석퍼석해지거나 무르지 않는다.

    살아 있는 고등어가 바다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고등어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푸른 유선형의 몸매와 몸짓이 아름다운 물고기다. 향긋한 나물을 먹을 때 땅의 기운을 떠올리듯, 고등어 한입 먹을 때 그 작은 몸에 담긴 우렁찬 바다의 힘도 떠올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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