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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야~ 네가” 막말에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명품매장 직원들 ‘감정노동의 고통’ 상상 초월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다짜고짜 “야~ 네가” 막말에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다짜고짜 “야~ 네가” 막말에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LVMH 노조 홈페이지 캡처 사진. 구두를 신고 하루에 12시간씩 서서 일하는 판매직원의 변형된 발. LVMH 노조 홈페이지에 올라온 판매직원의 호소글.

팻말을 걸어놓지 않았으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5월 2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LVMH(루이뷔통 모에 에네시)그룹 P·C(화장품 향수 부문) 한국판매법인 건물의 노조 사무실에 들어서자 향긋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크리스찬디올, 겔랑, 메이크업포에버 등 명품 화장품과 향수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쓰는 사무실은 화장품 매장처럼 깔끔했다.

이들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는 노조원들이 5월 18일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의 방한 일정에 맞춰 집회를 열고 “남들이 보면 공주처럼 일하는 줄 알지만 우리는 하루에 12시간씩 선 채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라며 회사 측에 임금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전국 100여 개 매장 판매직원 650여 명 가운데 3분의 1인 200여 명은 휴가를 내고 모여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해 성토했다.

판매 직원들은 하루의 반을 꼬박 서서 일하다 보니 무릎 관절염,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근육통, 방광염을 앓고 있고 심지어 결혼한 근로자의 30%(70여 명)는 유산 경험이 있다. 그뿐 아니라 초과근무를 한 대가로 월 50여만 원을 받지만 기본급 자체가 낮아서 입사 10년차 월급이 200만 원을 겨우 넘는다. 그 결과 퇴사하는 사람이 매달 30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건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전하영(37) LVMH P·C 노조위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19세에 크리스찬디올 화장품매장 직원의 우아한 복장에 반해 입사한 그는 “명품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많았다”고 한다. 직군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매장에서 직접 일하기 전까지는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어려움도 몰랐다.

고객에게 멱살 잡혀 질질 끌려가



“우리는 태엽 감은 로봇처럼 친절이라는 노동을 파는 기계처럼 일해요.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사람입니다.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막 대하는 사람 앞에서 화를 내고 싶은데 규정상 그럴 수 없으니 속병이 생길 수밖에요.”

판매직원은 대부분 상품을 교환, 환불해주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로 백화점 화장품 코너는 반품 비율이 높다. 고객이 백화점에서 테스트한 뒤 구입했는데도 집에서 사용해보니 ‘색깔이 다르다’ ‘품질이 다르다’ 등의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매장에서 한 달 립스틱 판매량이 300여 개라면 그중 고객의 단순변심으로 반품되는 립스틱은 20개가 넘는다. 판매가가 100만 원에 육박하는 에센스, 앰풀을 반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무조건 환불해줄 수는 없으므로 회사 측에선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구입 일주일 안에 영수증을 지참하고 방문하면 교환, 환불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객에게 고지하라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품을 판매직원 얼굴에 던지며 교환해달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전 위원장은 “4년 전 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고객’에게 ‘님’이라는 존칭을 기어코 붙였다.

“엄마하고 딸하고 같이 왔기에 매니저(매장 판매직원 책임자)인 제가 ‘고객님,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라고 여쭈니 고객님이 다짜고짜 ‘야! 생일에 이런 제품 받고 기분 좋을 것 같아!’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고객님, 상황 설명 좀 해주세요’ 했더니 ‘이게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향수를 사갔는데 향수 유리병 목 부분에 홈이 나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고객님이 언짢을 수 있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고객님. 새 제품은 훼손될 우려가 있어 포장할 때 확인을 못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더니 고객님이 ‘네가 이 바닥에서 한번 끝나봐야 정신 차리겠구나!’라며 제 멱살을 잡곤 안내데스크로 질질 끌고 가더라고요. 백화점 사람들도 많고 제 밑에 직원이 7명, 메이크업쇼 지원 스태프가 7, 8명 있었는데 후배 볼 면목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고 계속 말씀드렸고, 끝내는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전 위원장은 물건을 바로 교환해주지 않고 부연설명을 했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2시간 동안 훈계를 받았고, 제품 교환은 물론 그 제품의 몇 배에 달하는 샘플을 주고 나서야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손님과 함께 온 10대 소녀가 그에게 ‘언니, 똑바로 하세요!’라고 훈계할 때조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굽실대는 것뿐”이었다.

노조 사무실에 상담하러 왔다가 전 위원장의 얘기를 들은 판매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실명 공개를 꺼려했다.

남자 고객 성추행에도 무방비

다짜고짜 “야~ 네가” 막말에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전하영 LVMH P&C 노조위원장.

“한번은 고객님이 2년 전 면세점에서 구입한 콤팩트를 교환해주지 않은 적이 있어요. 고객님이 콤팩트를 떨어뜨려 파우더가 깨진 것이기 때문에 교환해드릴 수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고객님이 1시간 동안 욕을 하곤 ‘교환해주지 않으면 칼 들고 죽이러 오겠다’고 하는 통에 경호직원들이 일주일 동안 매장 앞을 지켜야 했어요.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폭언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9호선 막말녀’도 저희 고객님이에요. 한번 오면 6시간 동안 직원을 붙잡고 괴롭히기 때문에 이런 분을 만나면 정말 힘들죠.”

고객의 사소한 행동거지도 판매직원을 힘들게 하긴 매한가지다. 판매직원에게 돈이나 카드를 손에 건네주지 않고 던지는 것이 대표적 사례. 그렇게 던진 돈이나 카드를 주섬주섬 줍다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심지어 판매직원은 성추행에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남자 고객이 여자 판매직원에게 ‘언니가 발라주니까 기분 좋다. 여기에 발라주면 이것 사줄게’ ‘(판매직원이 크림을 고객 손등에 발라줄 때 고객이 다른 손으로 크림 바르는 판매직원의 손 안을 간질이며) 어때? 좋아?’라고 희롱해도 판매직원은 항변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불합리한 고객보다 합리적인 고객이 더 많다면 판매직원은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전 위원장은 “손님 100명 중 1명 혹은 1000명 중 1명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당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일할 때 누군가에게 욕을 먹거나 멱살을 잡힌다면 어떤 감정으로 일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까닭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 ‘손님은 왕’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자부하는 백화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선 판매직원은 고객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다”며 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유럽의 판매직원들은 우리나라 판매직원만큼 친절하지 않아요. 한국인들이 그곳 판매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판매직원에게 물건 값이나 상품 정보를 물어보면 되지 과도한 친절 서비스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백화점에서 일하는 판매직원들은 특히 심한 고충을 겪는다. 백화점 측에서는 고객 편의가 최우선이므로 고객이 불편을 느끼면 그 책임을 해당 품목 판매매장에 일임한다. 백화점은 경우에 따라 고객의 반품금액을 판매매장과 분담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고객님이 판매직원에게 불평한 뒤 그 내용을 백화점 고객상담실에 접수하거나 인터넷에 올리세요. 그러면 이 사안은 바로 다음 날 백화점 조회시간에 전사 직원들에게 공개되죠. 이후 문제를 일으킨 판매직원은 다른 곳에 배치되거나 고객을 가장한 백화점 측으로부터 친절 정도를 평가받아 그 성적이 공개돼요. 직원들이 화풀이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소문이 잘못 나면 다시는 유통 분야에 몸담을 수 없으니 그러지도 못해요.”

직원 보호장치 마련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구조를 꿰뚫은 소비자는 그것을 악용하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백화점에서 화장품 반품하는 방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무조건 소리 지르면서 소란을 피우면 반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다.

전 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직원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객과 판매직원 사이에 이견이 있으면 중간에서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중재자는 물론, 판매직원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감정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매달 감동노동 수당 7만 원을 받아요. 하지만 과연 이 돈으로 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고 싶어도 기록에 남으면 직장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봐 못 먹고 대신 술, 담배를 많이 해요. 근본적으로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무조건적인 감정노동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판매직원도 노동의 의무가 있는 동시에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권리가 있지 않나요.”



주간동아 839호 (p22~24)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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