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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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 피눈물 닦으려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고영회 대한기술사회 회장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2-04-09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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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사 피눈물 닦으려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정치란 일종의 전쟁이다. 정치인이 볼썽사납게 싸우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법조항 문구 하나에 수많은 직업과 산업의 희비가 엇갈린다. 명분을 앞세우지만 알고 보면 이권다툼이다. 그래서 정치는 어렵고도 더럽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갈등 조정의 장’이기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가 정치에 몸을 던진다. 자신을 위해 혹은 후배를 위해.

    처음엔 그가 정치에 관심을 둘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대한기술사회 회장을 맡은 고영회(55) 변리사 얘기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잘나가는 변리사에 건축기술사 자격증을 2개나 가진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아닌가.

    “혹시 기술사(技術士)가 뭔지 아나요?”(고영회)

    “글쎄요, 이공계 각 분야 기술자에게 주는 자격증 정도?”(기자)

    1963년부터 시행된 기술사제도란 말 그대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최고의 엔지니어에게 국가자격증을 주는 제도다. 한동안 과학기술인들이 이 자격증을 따려고 열정을 불사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장근무 4년을 포함해 도합 12년을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기술자로 자존심을 지키며 살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틈틈이 공부해 당시 업계에서 인정받던 건축시공기술사와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자격증을 획득했어요. 그런데 기술사 자격증을 2개나 갖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12년을 건축 전문가로 일한 국가자격증 소지자인데도 말이죠. 얼마나 황당하던지….”

    최고의 직업 변리사도 번번이 물먹어

    그래서 생업을 팽개치고 서른다섯의 나이에 변리사 시험에 도전했다. 운이 좋았는지 3년 만인 1995년 시험에 합격해 오늘에 이르렀다. 특허 분야를 전담하는 변리사는 이공계생이 꿈꾸는 최고의 직업이다. 그만큼 이공계 출신은 사회적 대우와 안정된 신분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는 오늘날 이공계 대학생이 맞닥뜨린 사회 부조리와 진로에 대한 갈등을 조금 먼저 경험한 셈이다.

    어쨌든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변리사가 됐으니, 행복해졌을까. 천만의 말씀. 이 땅의 과학기술인이 겪는 소외감이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공계 최고의 직업이라는 변리사도 영역을 확장 중인 변호사업계와의 다툼에서 판판이 깨졌다. 특허심판 부문 역시 기술보다 행정이나 사법의 입김이 더 거셌다.

    일단 ‘폐족’ 위기에 놓인 기술사제도부터 손보자는 심정으로 젊은 기술사들과 ‘대한기술사회’를 창립하고 법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

    “인터넷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게 2002년이에요. 기술자 최고의 영예인 ‘기술사’를 되살려야 이공계 기피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도 당당한 이익집단의 일원으로 법 개정 운동에 참여한 거예요.”

    인고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먼저 과학기술계의 불만을 여론으로 결집했다. 그리고 2003년 참여정부 정권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꾸준히 의견을 개진했다. 1년 뒤 마침내 대통령이 기술사제도 개선을 위한 특별 지시를 내렸다. 기술사들은 환호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제도 연구 과정 및 공청회 관문을 통과했다. 수많은 기술사가 생업을 팽개치고 이 작업에 매달렸다. 그런데 ‘정부부처 간 협의’라는 숙제가 떨어졌다.

    “법무부가 1차 방어막이더군요. 왜 기술사에게 이러이러한 혜택을 줘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혜택이 아닌 자격증에 대한 정부의 책임인데 말이죠. 그렇게 법무부 관계자, 검사 등과 입에 거품을 물며 싸우기를 반복했죠. 정부부처 간 협의에만 대략 2년이 걸리더군요.”

    시간이 흘러 2006년 7월 국무회의 안건 제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복병이 튀어나왔다. 법제처였다. ‘기술사 고유영역’을 규정한 조항을 단칼에 삭제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알맹이가 빠진 채로 2006년 정부 입법으로 기술사제도가 정비(?)됐다. 4년여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지금도 기술사는 결코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최소한의 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말로는 ‘과학자와 기술자 우대’ 어쩌고 해도,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정치적 무능력자였던 거예요. 정부와 국회에 우리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의원 입법을 추진할 사람 하나만 있었더라도….”

    정부부처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기술사 선발은 고용노동부가 주관하고 관리는 과학기술부에서 하는 이원체제다. 하지만 기술사는 산업기사와 달라 고용노동부와 무관하다. 의사 자격증을 보건복지부가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관리하는 형국이다.

    오랜 시간 과학기술계는 “기술사 선발 권한을 교육과학기술부로 이전해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단호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고용노동부 관할권이 줄어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 얌전한 과학행정가들은 자기 밥그릇도 못 챙겼다.

    기술사들이 피눈물 흘리는 상황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 지배구조에서 과학기술계가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법조계와 의약계의 힘은 강고하다. 정치권은 가장 먼저 이들의 눈치를 살핀다.

    “어디 의사와 변호사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거액의 국부를 창출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나요. 이런 구도라면 우리 사회 엘리트는 모두 법조인이나 의료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을 바로잡자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당당합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이 무슨 거지 동냥하는 것 보듯 하는 게 분통 터져요.”

    올해 초 변리사협회 부회장직을 마친 그는 과학기술인의 대표 조직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수도권 대표와 대한기술사회 회장 활동에 집중할 예정이다. 새롭게 짜일 정치판에서 과학기술계의 요구를 어떻게든 전달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국부를 창출하는 사람이 바로 기술인

    올해 과학기술계는 이공계 출신 대통령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다. 전자공학과 출신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보기술(IT) 회사를 운영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그 후보다. 그러나 그는 큰 결심을 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비례대표 싸움에서는 보기 좋게 물을 먹었지만 이제야 정치인 신고식을 한 셈이다.

    “정치에 나선다니까 칭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과학기술인 문제는 여야가 합심해야 한다는 소신에서 나선 거예요. 당에서 검사를 영입하면 시끌벅적하던데 기술사 영입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서운해요(웃음).”

    “기술사 피눈물 닦으려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기자는 2004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기술유출’ 사건을 취재하다 그를 처음 만났다. 사회 전체가 첨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은 기술자들을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그때 그는 과감하게 기술자 편에 섰다. “기술과 기술인은 분리될 수 없고, 기술인이 살기 좋은 나라가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라는 신념에서 말이다. 지금도 변함없는 그의 신념이 정치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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