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2012.01.02

미국은 1년 내내 ‘캠페인 정치’

정치 신인도 선거운동의 자유 만끽…선거자금 엄격한 규제와 투명성 확보

  • 이소영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입력2012-01-02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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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선거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미국 국민의 의지를 선거제도에 투영한 결과, 정치에 입문하려는 정치 신인은 누구나 현역의원과 차별 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선거 캠페인을 할 수 있다. 다만 정치자금 모금 액수가 당락을 좌우하는 미국에서 정치 신인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대신, 자금 모금이라는 미국식 진입장벽을 뚫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 정치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영속적 캠페인의 정치’라 할 수 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는 각 지방에서 끊임없이 선거를 치른다. 중앙정부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연방선거도 2년에 한 번씩 실시한다. 게다가 선거운동 기간 제한이나 사전 선거운동 규제가 없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일찌감치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4년에 한 번씩 하는 대선의 경우, 선거가 있는 해 1월 예비선거로 시작해 11월 일반선거로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후보자들은 예비선거를 치르기 훨씬 전부터 선거 캠페인을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2년에 걸쳐 선거운동을 한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선거자금 모금액이 선거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재임 중 끊임없이 선거자금 모금 캠페인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실 때문에 끊임없는 선거 캠페인은 선출직 공직자로 하여금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정치인으로 하여금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긍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 선거는 선거운동 기간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제약이나 규제가 거의 없다. 1964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존슨 대통령이 최초로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 이후 미국에서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은 일반화했다. 2008년 대선 기간에 있었던 캠페인 중 오바마 쪽은 약 77%, 경쟁자였던 공화당 존 매케인 쪽은 약 56%가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내용에서도 제약이나 규제 없어



    2010년 중간선거 기간의 TV 정치광고도 54%가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시민 권리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에 하는 어떠한 표현과 집회에도 규제가 따르는 것을 반대한다.

    사회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나 이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규제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때로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하는데, 미국 대법원은 과거 몇몇 소송 건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사회적 가치를 개인의 명예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선거운동은 방법 면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후보자들은 선거자금이 허락하는 내에서 원하는 모든 방법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TV 광고나 홍보물을 배부할 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해 지역민을 동원한다. 또 유권자 방문, 전화, 이메일 등의 방법을 통해 유권자에게 직접 다가가고 정보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자발적 선거운동원이 참여하며 이들의 규모는 승리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발적 선거운동원은 풀뿌리 선거 캠페인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풀뿌리 선거 캠페인은 선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캠페인으로 ‘투표참여(GOTV·get out to vote) 캠페인’이라고도 부른다. 자신의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이끌려는 후보자들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전화나 이메일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후보자나 지지자들은 가가호호 방문해 직접 지지를 호소한다. 이 같은 활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반영한 것일 뿐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동원전술이기도 하다. 2004년 부시 진영이나 2008년 오바마 진영은 이 풀뿌리 선거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펼쳤고, 그 효과가 상당히 컸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미국 선거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선거운동 역시 중요해졌다. 2008년 오바마 후보의 승리는 SNS를 떼놓고 말하기 어렵다. 때로는 후보자의 발언이나 실수가 유튜브 등을 통해 유포되면서 후보자에게 결정타를 날리기도 한다. 2006년 앨런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이 상대 후보의 인도계 자원봉사자를 원숭이라고 비하한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유포되면서 낙선의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이 한 예다. SNS를 통해 공격적 비방이나 때로는 허위사실이 유포되지만 현재까지 이에 대한 규제는 없다.

    공정 선거 기준은 선거자금 투명성

    미국은 1년 내내 ‘캠페인 정치’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유세장.

    미국 선거에서 유일하게 규제하는 부분은 선거자금의 기부와 지출이다. 미국 연방선거의 경우, 선거자금은 주로 개인기부로 마련한다. 이익단체나 기업 또는 노동조합은 정치활동위원회를 설립한 뒤 이를 통해 정치자금을 기부한다. 대선에만 유일하게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며 그 외 선거에는 공적자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선거자금에서 기부금의 비중이 매우 큰 상황에서는 선거자금 공개와 투명성 확보가 공정선거의 핵심 과제다. 이 때문에 미국 선거자금법은 정치자금 출처와 지출 명세를 철저히 공개토록 규정한다. 또한 개인기부와 단체기부의 액수 및 방법도 엄격히 규제한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선거비용의 지출에는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 1976년 미국 대법원이 개별 후보자의 캠페인 지출액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판결한 이래 공적자금 외의 선거비용 지출 한도는 사실상 없어졌다.

    이와 더불어 후보자들은 선거자금 사용 항목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후보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항목에 자금을 배당해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광고, 홍보 등 선거운동과 직접 관련된 항목뿐 아니라 컨설팅, 여론조사, 사무실 운영, 기부금 모금을 위한 행사 등에 많은 자금을 지출하고 그 명세를 공개한다. 이는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는 많은 항목을 제외한 채 선거비용을 보전받아 자금과 지출이 불명확한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개인이나 정당 차원의 정치자금은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연방선거법의 규제 밖에 있는 소프트머니(미국의 정치자금 가운데 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에 제공하는 후원금) 때문에 기업과 이익집단의 정치적 입김이 커지는 현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사회 일각에선 ‘깨끗한 선거운동’ 캠페인을 전개한다. 그 핵심 내용은 선거자금 대부분을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하고 후원금은 소액 기부만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미국인은 공정 선거의 기준을 선거자금의 투명성에 둔다. 자금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지출했는지를 국민이 제대로 알도록 하는 것이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 대신 선거자금 외에는 어떠한 선거운동 규제도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비방으로 얼룩지고 허위사실 유포로 왜곡되는 선거 풍토는 문제라는 인식도 있지만,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결코 제도적으로 규제하려 하지 않는다. 제도적 규제는 미국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 원칙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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