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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김정은 체제 숨은 뇌관 01

한반도 덮친 ‘김정은 리스크’

김정일 이후 북한 新권부 암투와 미래 전망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한반도 덮친 ‘김정은 리스크’

한반도 덮친 ‘김정은 리스크’

1984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52주년 행사 당시의 주석단. 왼쪽 두 번째가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오극렬이다.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일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국방위원회 대신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이끌어갈 새로운 권력집단의 실체다. 평양은 후계체제 구축 차원에서 이미 모든 권력을 이 조직에 집중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현재의 비상사태를 주도하는 것도 이 조직이며, 앞으로 김정은 체제를 완성해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일도 이 조직에서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망은 단순히 국방위원장의 유고가 아니다. 그의 ‘단일지도’ 통치권력은 크게 당총비서, 국방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나뉘어 있었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되는 총비서는 북한을 당적(黨的)으로 통제하고,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는 국방위원장은 북한을 국가적으로 통제하며, 당중앙군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는 최고사령관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식이다. 이러한 3중 권위는 상황에 따라 각각의 비중이 달라지는 패턴을 보였다. 평시에는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의 구실이 강조됐다면 비상시에는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위상이 강조되는 식이다.

당과 국가기관, 군의 최고권위가 일거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금이 바로 북한 체제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비상상태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외부에 공개되진 않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최고사령관 본인이 사망한 현재 상황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를 관리할 책임은 최고사령관을 결정할 수 있는 당중앙군사위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최고의 권력기관 당중앙군사위

김정은의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한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 이후 북한은 이 조직을 후계체제 구축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활용해왔다.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유명무실하던 비상설 협의기구에서 상설 최고군사기관으로 격상시켰고, 김정은에게는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부여했다. 군을 먼저 장악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위상은 당시 발표된 당중앙군사위 위원의 면면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당정치국 또는 국방위원회 명단에 병석에 누웠거나 노쇠해 공식석상에서 찾기 어려운 인물이 다수 포함된 것과 달리, 당중앙군사위는 지금 당장 북한을 움직이는 핵심 실세로만 구성했다. 김정은과 함께 부위원장을 맡은 이영호 총참모장,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최룡해 당비서 등 흔히 김정은의 후견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두 집결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뒤 이를 공표하기까지 죽음과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이나 부검 등을 주도한 기관 역시 당중앙군사위였을 확률이 높다고 북한정치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외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당중앙군사위원 가운데 한 명을 책임자로 정하는 형식이었으리라는 것. 사망 사실을 언제 어떤 형식으로 공개할지, 이후 장례와 권력승계에 관한 대내외적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역시 당중앙군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한반도 덮친 ‘김정은 리스크’
어제의 지배자, 오늘의 패배자

최고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유고 상황에서 그 진상 조사와 사후조치를 담당하는 기관이 이후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모든 독재국가에서 확인되는 패턴이다. 비상사태 상황에서 당·정·군의 모든 업무를 주관하게 된 당중앙군사위는 조만간 위원장과 인민군 최고사령관을 새로 선출하는 권력승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가 예상하는 대로 북한의 최고권력이 당분간 권력분점이나 집단지도체제 형태를 띠게 된다면 그 매개 역시 당중앙군사위일 수밖에 없다.

거꾸로 놓고 보면,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불만이 있거나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등장할 경우 이들이 꺾어야 할 대상도 다름 아닌 당중앙군사위원회다. 군사 쿠데타 같은 방법으로 체제전복을 시도하려면 먼저 이 기관을 무력화하고 주요 구성원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핵심 과제다. 당중앙군사위를 단기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가 목숨을 건 싸움의 관건인 셈이다.

물론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이 보여주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인 모습은 이와 같은 급변사태가 단기간에 발생할 개연성이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권력승계를 100% 완성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이후 진행 상황에서 알 수 있듯 김정은의 권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사망 이틀 만에 공개 발표가 가능했던 것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가 당중앙군사위의 후속처리가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된 방증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특히 평양은 당중앙군사위에 권력을 집중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군사반란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만에 하나 변심할 경우 가장 치명적인 호위사령부 등 친위부대의 최고지휘관을 모두 당중앙군사위원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하면 당중앙군사위원으로 간택받을 만큼 충성심 높은 인물들만 이들 부대의 책임자로 임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고지도자와 인척관계이거나 오랫동안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온 이들 ‘이너서클’ 구성원이 반란에 나설 확률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 산하 인민경비대 등 준군사조직이 거사를 일으키는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외곽과 전방에 흩어진 군과 달리 평양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경비대는 개인화기 수준의 미약한 무장만으로도 신속히 권력을 접수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2010년 4월 인민내무군으로 재편되면서 당중앙군사위의 지휘체계에 포함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마디로 모든 무력 사용의 권한을 당중앙군사위로 단일화해놓은 셈. 이 조직을 책임지는 이명수 인민보안부장 역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타고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발탁됐던 인물이다.

그러나 시야를 장기 전망까지 넓히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생전의 김 위원장은 인민군 각급 부대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산간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군부대 시찰 릴레이를 이어왔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후계체제 구축작업을 본격화한 2009년 이후 공개된 횟수만 총 44회. 이 가운데 최근 16회는 김정은도 동행했다지만, 수십 년간 전국 각지의 부대에 ‘오중흡7연대’라는 모범부대 칭호를 하사해 구성원에게 갖가지 혜택을 제공하고 지휘관을 승진시켜 온 김 위원장의 관리 노력과 비교할 수는 없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권력으로부터 밀려난 그룹의 존재다. 2009년 초반 시작돼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앞두고 일단락된 권력엘리트의 세대교체 광풍 속에서, 1995년 선군정치를 본격화한 이후 두각을 나타냈던 군부 주요 인물과 중앙당 비서들은 이너서클로부터 밀려났다. 일부 핵심인사는 불명예 퇴진했고, 사고사와 병사가 미묘하게도 특정 시기에 맞춰 발생하기도 했다. 군에서는 조명록, 김영춘, 오극렬, 김일철, 당에서는 이제강, 이용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1970년대 이래 북한군의 기계화·현대화를 이끌어온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의 경우는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후계체제 본격화 직전까지 인민군 수뇌부를 구성했던 이른바 ‘군사파’ 인물들은 대부분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상군은 물론 해·공군까지 포괄해 북한군 곳곳에는 여전히 오극렬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지휘관이 다수 분포해 있다. 이들을 모두 물갈이하려는 시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는 점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위험요소라고 북한군 인사 변동을 꾸준히 관찰해온 연구자들은 분석한다. 더욱이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바탕으로 군 지휘권을 장악하기에 이른 ‘신군부’의 출세를 지켜보며 이들이 불만을 품게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덮친 ‘김정은 리스크’

2010년 9월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직후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참석자 사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촬영한 것으로, 앞줄 가운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앉았고 그 왼쪽 두 번째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자리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낙관은

새로 구성된 권력엘리트 그룹 내부에도 약한 고리는 존재한다. 상당 기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 권력분점이나 집단지도체제가 갖는 약점이다. 그간 김 위원장이 펼쳐온 용인술의 핵심이 각 세력을 경쟁시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였다면, 권력분점이나 집단지도의 원리는 서로의 협조가 필수적인 역할분담(division of roles)에 가깝다. 평양의 권력엘리트들은 이러한 작업에 익숙지 않고, 권력운용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과제일 수밖에 없다. 힘의 분점은 극히 미묘한 상처로도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권력학의 기본공식을 감안한다면 김 위원장이 서둘러 만들어놓은 현재의 체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 장담하기란 쉽지 않다.

곳곳에 숨은 뇌관 가운데 하나라도 폭발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며, 그 후폭풍은 어떻게 전개될까. ‘주간동아’는 향후 북한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불안정의 가능성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먼저 김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남은 미스터리를 따져보고, 김정은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한 지방 세력이 중앙권력에 반기를 들 개연성과 김정일 시대의 이데올로기였던 ‘선군정치’가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전문가 분석도 소개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북한 군부 일각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항하는 군사반란을 일으킬 경우 어떻게 전개될지 평양 군사쿠데타의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북한의 급변에 대비해 그간 한국과 미국이 여러 층위에서 준비해온 대비 계획의 얼개도 살펴본다. 최근의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에 대해 워싱턴과 베이징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도 함께 전망했다.

거듭 밝혀두거니와, 북한 내부의 권력분쟁이나 체제붕괴 우려를 과장할 이유는 없다. 모든 주변 국가가 ‘안정적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까지도 꼼꼼히 검토하고 준비하는 작업의 필요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는 오히려 김 위원장의 사망과 김정은 체제의 이른 출발이라는 돌발변수를 슬기롭게 타넘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은 비관의 끝에서 얻은 것이라야 진정으로 가치 있는 법이다.



주간동아 818호 (p14~17)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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