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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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용의 俗 담은 우리말

지저분한 결별은 악연의 외나무다리

‘저 긷지 않는다고 우물에 똥 눌까’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aristopica@gmail.com

    입력2017-05-02 14: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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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이 쓴 글을 읽고 한참 실없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무례하게 대하는 손님이 주문한 컵라면에 물 붓는 선보다 더 많이 뜨거운 물을 부어 가져다주면서 ‘많이 싱거울 거다!’라고 고소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소심한 복수라 하겠습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퇴사를 결심한 사람 중에는 회사나 상사에게 뭐라도 손해를 안기고 나가려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봐야 복사용지 펑펑 쓰고 에어컨 안 끈 채 퇴근하는 정도겠지만요.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선 늘 갈등과 불만이 생기니까요. 무리로부터 내쳐지는 경우라면 ‘나만 당할 수 없다’ 싶은, 어떻게든 헤살 부리고 싶은 감정이 치밀어 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경계코자 ‘저 긷지 않는다고 우물에 똥 눌까’ ‘침 뱉고 돌아선 우물에 다시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의 결속이 단단하던 옛날, 마을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개인이나 가족을 마을 밖으로 내쫓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다시 동네에 터 잡지 못하게 살던 집을 부숴버리기도 했지요. 이것을 훼가출동(毁家出洞)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쫓겨나는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앞으로 이놈의 마을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 며 씩씩대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앙심을 품고 ‘흥! 내 똥물 실컷 마셔봐라’ 하며 공동 우물에 남 몰래 똥 누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예 사람들 면전에서 우물에 가래침 ‘카악’ 뱉고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람 일 모릅니다. 쫓겨났든, 스스로 박차고 나왔든 나중에 어떤 아쉬운 일로 다시 와서 살아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분한 마음에 차마 해선 안 될 말에 앙갚음까지 하고 나갔다면 그때 과연 얼굴이나 들 수 있을까요. 그러니 사이가 틀어져 떠나는 마당이라도 최소한의 밑바닥 예의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이깟 회사 더러워서 때려친다’며 ‘책상 엎고’ 상사 면전에 ‘사표 던지고’ 나왔어도, 그 바닥이 그 바닥이라 언제고 다른 회사에서 또는 거래처에서 머쓱하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다신 보지 말자고 막말하며 인연을 끊은 뒤 공교롭게도 결혼할 사람의 가족이나 중요한 이의 친구로 다시 맺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 참 좁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살이입니다. 욱하는 마음에 헤살과 해코지로 남에게 먹인 똥물을 언제고 자기가 다시 마실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만 붙을 문구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마음 한편에도 꼭 붙여두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저분함을 남긴 결별은 언제고 마주칠 악연의 외나무다리가 될 뿐입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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