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6

2017.05.03

연예

천연덕스러운 연기꾼, 안재홍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첫 상업영화 주연, 이선균과 눈부신 케미

  • 임수연 아이즈 기자 vagabond@ize.co.kr

    입력2017-05-02 13:57:5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배우 안재홍(31·사진)에게는 보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매력은 처음부터 도드라지기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쪽에 가깝다. ‘제2의 송강호’라는 극찬을 받으며 안재홍이란 이름 석 자를 충무로에 알린 영화 ‘족구왕’에서 그는 내세울 만한 토익점수도 학점도 없는, 족구에 대한 낭만만 있는 복학생 만섭을 연기했다.

    케이블TV방송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은 공부 대신 우표와 전화번호 수집에 몰두하는 대입학력고사 6수생이다. 하지만 대책 없고 마냥 철부지처럼 보일 수 있는 안재홍의 캐릭터들은 시간을 두고 알아갈수록 묘한 호감을 불러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천진한 표정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무모하게 청춘을 바칠 수 있는 패기에 그 흔한 우월감도 가지지 않는다.

    요컨대 안재홍의 캐릭터들에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낭만’이 있다. 또래 대학생과 달리 자신은 공무원시험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족구장 설치에 힘쓰던 만섭과, 공부엔 시큰둥하지만 첫눈이 오면 형을 꼭 깨워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던 정봉은 특유의 순수함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 ‘임금님의 사건수첩’(4월 26일 개봉)에서도 안재홍은 우리가 알던 그의 얼굴을 소화한다. 예종(이선균 분)의 옆을 졸졸 쫓아다니는 사관 이서(안재홍 분)는 비현실적일 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지만, 그 외에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덤벙거린다. 왕이 그를 시험하고자 던진 질문에 답하려고 머리에 손가락을 얹고 몰두하는 모습은 ‘족구왕’과 ‘응답하라 1988’에서 보던 인간미 넘치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와 동시에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안재홍에게 배우로서 만만찮은 도전이자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독립영화 ‘1999, 면회’나 ‘족구왕’보다 작품 규모가 커졌고, ‘응답하라 1988’이나 ‘조작된 도시’와 달리 메인 주연으로서 제몫을 해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전과 달라진 상황에서도 그의 매력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확인받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영화 개봉 직전 만난 안재홍은 “많은 자본이 들어갔고, 대중을 만족시켜야 하는 상업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용기를 내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작품에 임한 심정을 밝혔다. 안재홍의 상업영화 도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지금까지 꽤 긍정적이다. 시사회 직후부터 그의 연기에 호평이 이어졌고, 박스오피스에서는 ‘특별시민’과 함께 1, 2위를 다투고 있다.

    첫 상업영화 주연에 도전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안재홍은 이선균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그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함께 등장한 이선균 선배가 잘 이끌어줬다. 이 선배는 현장을 넓게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녔고, 장면을 만들어나갈 줄 아는 배우 같다. 그 덕분에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이선균과 촬영장 밖에서 보낸 시간도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촬영이 없는 날엔 두 사람이 함께 야구 경기를 보러가고, 전북 전주한옥마을에도 다녀오는 등 돈독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서도 작정한 코미디보다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 나오는 소소한 웃음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안재홍 역시 “웃기려 하기보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재미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꾸 실수하는 이서와 그런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가지가지 한다”며 구박하는 예종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코미디는 둘의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타율도 높아진다.

    안재홍이 이선균과 함께 전국 맛집을 돌아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에 대해 안재홍은 “맛집을 다니면서 우리끼리 중간 중간 표시를 하며 순위를 매겼다. 군산 간장게장, 목포 게살비빔밥, 부안 젓갈정식, 전주 콩나물국밥집이 우리가 뽑은 베스트였다. 맛집 애플리케이션을 자주 이용하는데, 오늘도 인터뷰 장소인 삼청동 근처 맛집을 미리 검색해 도가니탕을 먹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야말로 동네 친구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이다.  



    이선균과 전국 맛집 순례한 사연

    ‘응답하라 1988’의 정봉, ‘족구왕’의 만섭이 실제 배우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안재홍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독특함은 상당 부분 안재홍 개인의 매력과 중첩된다. 하지만 그간 맡았던 역할들이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안재홍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역시 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각 때문에 제가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의 연기에 무리하면서까지 도전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저와 가장 잘 어울리고 매력적이라고 봐요. 시간이 더 지나고 나이가 먹으면 제 안에서 또 다른 모습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는 5월 방송 예정인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도 출연한다. 안재홍은 새 드라마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6년 동안 연애한 오래된 커플이 겪는 권태 감정을 이야기하는, 현실 연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드라마에서 선보일 모습 역시 우리가 예전에 봤던 안재홍의 일부이면서, 보지 못했던 안재홍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유의 개성 있는 캐릭터로 충무로에 나타나 눈도장을 찍은 안재홍은 연극은 물론, 저예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지상파 드라마를 가리지 않는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유의 캐릭터를 무리하게 벗어던지려 하지는 않지만, 활동 영역에서만큼은 또래 배우보다 용감하게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그는 독립영화 ‘소공녀’의 촬영을 마쳤다. ‘소공녀’는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에 이은 ‘광화문 시네마’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안재홍은 모든 작품에 출연했다. 또 지난해에는 ‘청춘예찬’으로 첫 연극 공연에 도전했다.

    “‘무대연기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한 건 아니에요. 그저 공연을 무척 하고 싶었어요. 대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청춘예찬’을 다뤘을 정도로 원래 유명한 희곡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죠. 뒤풀이 때 박근형 연출가가 ‘지금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열정이 나이테처럼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맞을 것 같아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연극과 드라마를 오가며 그가 만들어나갈 나이테가 훗날 어떤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