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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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변화 관찰과 통일 준비 ‘통일부 체질’이 변했다

정세 급변 가능성 대비한 예산 증액…협력과 교류 ‘돈주머니’는 더욱 조여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12-27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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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변화 관찰과 통일 준비 ‘통일부 체질’이 변했다
    2007년 말 노무현 정부가 확정한 통일부의 2008년 예산에는 북한 내부 동향을 파악하는 이른바 ‘북한정세분석’ 관련 비용이 5억6200만 원이었다. 그나마 이 액수는 통일 관련 사료(史料)를 정리하는 데 필요한 돈이었다. 당시만 해도 ‘평화와 번영의 상대’인 북한의 내부를 정찰하는 것이 금기시됐고, 그런 일은 ‘대화의 상대방’인 통일부가 아니라 음지에서 일하는 국가정보원이 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4년째인 2011년 통일부 예산에는 북한정세분석 예산이 117억1500만 원으로 3년 전보다 20배(1984.5%) 가까이 늘었다.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커진 북한 내부 불안이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시작, 이에 따른 북한 정세의 급변 가능성 증가 등으로 정부 차원의 대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북한정세분석 예산을 포함해 정부가 확정한 통일부의 2011년 예산안을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8년 예산안과 비교하면 정권교체 이후 통일부의 성격과 기능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름만 같은 통일부지, 하는 일은 전혀 달라졌다.

    갑작스러운 통일 준비하는 부서로

    전체적으로 통일부의 2011년 일반예산(남북협력기금 제외)은 2068억 원으로 2010년보다 526억 원(34.1%), 2008년보다 803억 원(64.1%) 늘었다. 이 가운데 실제 사업에 배정된 사업비는 1675억 원으로 3년 전의 849억 원보다 배 가까이(97.3%) 증가했다. 사업비 이외의 예산인 인건비와 기본 경비는 해마다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업비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 우선 하나의 큰 특징이다.



    이렇게 늘어난 사업비 예산은 대부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남한이 주도하는 민족통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내부 역량 강화에 배정됐다. 통일정책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 탈북자 및 이산가족 지원 등에 대한 예산의 증가 추세가 뚜렷했다. 반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역점을 뒀던 남북교류협력이나 남북대화를 위한 비용은 크게 줄었다. 쉽게 말해 과거 북한과 대화하고 경제 지원을 하던 통일부가 지금은 북한의 변화를 관찰하고 갑작스러운 통일을 준비하는 부서로 바뀐 것이다.

    대폭 증액된 정세분석 예산의 세목을 살펴보면 우선 북한 종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70억 원이 쓰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2010년 5억 원을 들여 설계 용역을 한 결과에 따라 북한의 산업과 인문지리, 북한 자료와 인물 데이터베이스 등을 구축하는 용역비와 장비 구입비 등으로 지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18억5000만 원이 들어간 북한정세지수 개발을 위해 2011년에는 20억200만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또 2010년보다 금액이 다소 줄었지만 탈북자 등을 상대로 한 북한 관련 심층 정보수집에 9억3500만 원, 북한 방송 디지털자료 실시간 수집체계 구축에 14억7600만 원이 들어간다. 북한 내부를 잘 들여다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북한의 변화를 제때 정확하게 읽어내겠다는 것이다.

    ‘통일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한 예산도 크게 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한 ‘통일 대비’를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데 76억6200만 원이 배정됐다. 3년 전보다 342.1%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대내외에 정부의 바뀐 통일정책을 알리는 홍보(통일정책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비용은 4억4000만 원에서 21억1600만 원으로 380% 늘어났다.

    북한 변화 관찰과 통일 준비 ‘통일부 체질’이 변했다
    통일교육 비용도 35억4900만 원에서 112억1900만 원으로 216.1%나 증가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통일교육을 강조했고, 그 3가지 방향으로 ‘미래지향적 통일관’ ‘건전한 안보관’ ‘균형 있는 북한관’을 들었다. 과거 좌편향이었던 통일교육을 보수적 시각의 ‘북한 바로 알기’로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 IPTV를 통한 표준화된 학교 통일교육을 시작하는 등 방법론도 새롭게 했다.

    탈북자와 이산가족, 납북자 등에 대한 예산지원이 크게 늘어난 점도 특징이다. 과거 북한과 대화가 잘될 당시 탈북자와 납북자 등은 통일정책의 뒷전이었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어려웠다.

    3년 동안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꾸준히 늘어 2010년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선 것과도 관련이 있지만, 탈북자 지원 예산은 3년 전 603억4500만 원에서 2011년 1184억5100만 원으로 배 가까이(96.3%) 늘었다. 지난 11월에는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탈북자 지원 재단인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산가족 지원 예산은 3년 전 단돈 6000만 원에서 13억2100만 원으로 무려 2101.7% 늘었다. 특히 6·25전쟁 도중 북한에 끌려간 전쟁 납북자와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1년 예산에 처음으로 39억8200만 원이 배정됐다. 대신 지원이 거의 마무리된 전후 납북자 지원 예산은 59억6600만 원에서 17억3300만 원으로 71% 감소했다.

    북한 변화 관찰과 통일 준비 ‘통일부 체질’이 변했다
    버릇 나빠졌다 보수진영 인식 반영

    북한 변화 관찰과 통일 준비 ‘통일부 체질’이 변했다

    2010년 7월 통일부 주최 6·25전쟁 60주년 기념 ‘평화대행진’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반면 남북협력기금이 아닌 일반예산에 반영된 개성공단 관련 지원예산은 3년 전 16억7000만 원에서 10억7100만 원으로 35.9% 감소했고, 남북회담 예산은 31억4700만 원에서 17억3500만 원으로 44.9% 줄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간헐적으로 남북 간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 등 의미 있는 대화는 없었고 현 정부의 남은 2년 임기 동안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정책 판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북한 대남 일꾼들이 ‘우리 예산’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던 남북협력기금은 이제는 ‘그림의 떡’이나 ‘신포도’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연간 1조 원 이상의 남북협력기금을 책정했지만 실제 사용을 줄여서 북에 주던 ‘당근’도 줄였다. 안 쓰고 국고로 반납된 액수가 늘어나 기금의 집행률은 2008년 21.1%, 2009년 8.9%, 2010년 5.6%(11월 현재)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기금 사용을 줄인 것은 북한이 3년 내내 대남 공세와 비방전을 펴며 정부가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정부가 북한에 눈감고 ‘퍼주기’를 한 결과 북한의 버릇이 나빠졌다는 현 정부와 보수 진영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2011년도 사정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국민들의 대북 감정이 최악의 상태로 악화된 데다 북한이 남북 간 무력 긴장 조성을 통해 3대 세습체제 확립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남은 임기에 ‘대북 돈주머니’를 획기적으로 풀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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