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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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그룹 너마저!” 인도가 발칵

2G 이통사업자 선정 로비 테이프 공개…뇌물수수 집권 국민회의당도 위기

  • 벵갈루루=박민 통신원 minie.park@gmail.com

    입력2010-12-27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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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타그룹 너마저!” 인도가 발칵
    테이프 한 개가 인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로비스트 라디아의 통화 내용이 담긴 이 테이프에는 수많은 정치인과 저널리스트, 기업인의 이름이 언급됐다. 인도 내무부의 허가를 받아 국세청이 300여 일간 녹음한 테이프 내용 일부가 2010년 11월 18일 시사주간지 ‘오픈(OPEN)’에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테이프에는 ‘타타그룹’ 대표 라탄 타타와 라디아의 통화가 포함돼 있다.

    타타그룹은 자동차 부문 계열사인 타타모터스가 2004년 대우상용자동차 부문을 인수해 ‘타타대우상용차’를 공식 출범한 까닭에 한국에도 친숙한 기업이다. 타타는 자동차, 발전소, 의류, 통신업 등 80여 개의 사업 분야에 진출했고 시가총액만 600억 달러(약 68조4000억 원)에 이르는 인도의 대표 기업이다.

    당시 정통부 장관 “임의로 사업자 결정”

    기업인 타타의 이름이 언급된 이 테이프의 녹취 시기는 2008년부터 국민회의당 2기 정부가 시작된 2009년 5월까지다. 주된 내용은 내각 구성을 앞두고 라디아가 국민회의당과 지역 정당의 모임을 추진하겠다는 것,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인 에이 라자가 국민회의당 인사들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 라탄 타타가 2세대(2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라디아를 로비스트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2008년 9월에 있었던 2G 이동통신 사업권 분배 결정자는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인 에이 라자였다. 얼마 전 사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장관직을 내놓은 그는 ‘2G 사업자 선정 시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아닌 임의대로 사업자를 결정했다’는 혐의로 인도중앙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인도 정부는 390억 달러(약 44조4600억 원)라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알려졌다. 이에 반해 올해 5월 3세대(3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경쟁입찰을 통해 이뤄졌고, 인도 정부는 150억 달러(약 17조1000억 원)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



    당시 2G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3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때와 비교해볼 때 비합리적으로 싼 가격에 낙찰을 받았다. 또 인도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122개 신청업체 중 85개가 충분한 기술과 응용 프로그램을 갖추지 않은 자격 미달의 업체였다. 그렇다면 에이 라자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던 걸까? 테이프에 담긴 통화 내용에 따르면, 에이 라자는 2G 사업자 선정 때 라디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룹 총수인 라탄 타타가 라디아를 로비스트로 고용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타타그룹은 곤란에 빠졌다. 타타그룹은 그간 막대한 자산을 사회에 환원해 국내외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라탄 타타는 2008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리더’로 뽑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라탄 타타는 라디아를 로비스트로 고용해 불법적으로 2G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다는 혐의를 일절 부인했다. 그는 “라디아와 정당하고 공적인 관계만을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즉 자격 미달의 사업자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2G 사업자에 선정됐을지 몰라도, 타타그룹은 정당하게 사업권을 따냈다는 해명이다. 라디아가 타타를 위해 합법적인 로비 활동을 벌였는지, 그가 에이 라자를 비롯한 관료에게 뇌물을 통해 사업권을 따냈는지는 계속 수사 중이다.

    한편 이 테이프에 녹취된 통화 내용은 대략 5000건이고, 이 중 공개된 것은 100여 건이다. 인도 대법원은 테이프 전체를 대법원으로 양도할 것을 명령했다. 라디아와의 통화에 등장한 인물이 정부 관료, 미디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저널리스트, 기업가 등이어서 테이프가 계속 정부 손에만 있다면 그 내용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녹취된 내용 전문 공개 땐 더 큰 파장

    “타타그룹 너마저!” 인도가 발칵

    2010년 10월 인도 델리에서 열린 영연방대회 관련 부정부패 의혹도 연일 터져 나왔다.

    현재 인도에서는 부정부패 스캔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2G 사업자 선정 의혹이 불거진 때와 거의 비슷한 시점인 2010년 10월 인도의 대표 건설기업인 ‘아다시’ 의혹이 터졌다. 아다시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아파트 건설 사업자로 선정됐는데, 마하라슈트라 주 총리가 개입해 분양권 대상을 국가유공자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확대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영연방대회(Commonwealth Games) 관련 부정부패 의혹이다. 예를 들어 원래 있던 스타디움을 리모델링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새로 짓는 데 든 비용보다 10배 이상 많게 나왔다. 여기에 같은 기능의 비누 거치대를 A회사가 개당 187루피(약 4800원)에 공급한 반면, B회사는 9379루피(약 24만 원)에 공급했다고 기록된 장부가 발견되면서, 허위 장부를 통해 영연방대회 운영위원회가 돈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부정부패 사례는 단순한 비리 사건을 넘어 현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의 위기를 불러온다. 의혹의 중심에 국민회의당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 라자는 타밀 지역 집권당인 드라비다 진보연맹(DMK) 출신이기는 하지만 국민회의당에 의해 내각 관료로 임명됐다. 또 그가 2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해 국민회의당과 접촉했다는 정황이 통화 내용에 드러나 있다. 만모한 싱 현 인도 총리는 에이 라자의 법원 기소를 끝까지 거부했다. 인도 국민들은 국민회의당 집권 후 최대 액수의 내각 관료 배임사건임에도 총리가 ‘제 식구 감싸느라’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2010년 11월 17일 만모한 싱 총리에게 “2G 사업자 선정 관련 수사를 맡은 수사기구가 고의적으로 일정을 늦춘다”고 비난한 바 있다. 야당인 인도인민당을 포함한 각계각층 인사들은 에이 라자를 하루빨리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다시 의혹에 연루된 마하라슈트라 주 총리 역시 국민회의당 소속이며, 영연방대회 운영위원회도 국민회의당 인사가 주축을 이룬다. 인도의 정계는 크게 2개 연합체로 나뉘는데, 민족민주동맹(National Democratic Alliance·NDA)과 통일진보연합(United Progressive Alliance·UPA)이 그것이다. 민족민주동맹의 주축은 인도인민당, 통일진보연합의 주축은 현재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이다. 앞서 언급한 각종 비리 의혹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에 의한 생필품 가격 급상승까지 겹쳐 민심은 이미 국민회의당에서 멀어졌다. 그 여파인지 2010년 11월 치러진 비하르 주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당은 의석 234석 중 4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차기 총리감으로 주목받는 국민회의당의 라훌 간디가 직접 비하르를 방문해 후보 지지 연설을 한 노력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한 성적이다.

    끊이지 않는 뇌물 의혹의 끝은 어디일까. 이 사건으로 매일 뉴스에 오르는 타타그룹과 국민회의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모두 안개 속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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