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기자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일대를 걸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고향인 선운리 진마마을에서 장성이나 정읍으로 가는 소요산 질마재길을 백구 한 마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백구와 길벗이 된 건 순전히 개의 의도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는데 식당 주인이 키우는 백구(2년생 진돗개로 이름은 ‘나루’) 한 마리가 다가오기에 여러 번 이마를 쓰다듬었더니, 대뜸 길 안내를 시작하더군요. 질마재길에 대해 주인과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듯 백구는 10m 앞서 총총걸음을 했습니다.
질마재길은 곰소만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좋았거니와, 형형색색 단풍 옷을 갈아입는 소요산 절경이 기자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했습니다. 길 중간에 서서 수첩에 메모라도 하려면 백구는 어김없이 주변을 맴돌았고, 기자가 발걸음을 떼면 그제야 앞서 걸었습니다. 가만히 길가에 앉아 있는 꿩에게 달려들어 꿩을 놀라게 하더니, 낮게 나는 고추잠자리를 잡는답시고 폴짝 뛰어오르더군요. 그렇게 11km, 5시간을 걷는 동안 기자는 길에서 백구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주간동아 760호 (p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