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9

2010.10.25

쥐구멍 찾고 싶은 캐나다 국립경찰

대형 사건 처리 잇단 졸렬한 행태로 ‘엘리트 명예’에 먹칠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입력2010-10-25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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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구멍 찾고 싶은 캐나다 국립경찰
    캐나다 국립경찰 RCMP는 ‘좋은 경찰’로 정평 나 있다. 19세기 후반 서부 정착기에 창설돼 캐나다 연방의 주권이 미국에 비해 원주민과 충돌을 줄이며 순조롭게 자리 잡을 수 있게 기여한 공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이미지 덕분에 의전용 정장을 입고 말을 탄 RCMP 대원의 모습은 단풍잎, 비버 등과 함께 캐나다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관광 팸플릿이나 이민 안내서 등에 등장한다. 하지만 최근 RCMP는 130여 년간 쌓아온 성가가 무색하게 대형 사건 처리에서 잇따라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85년 캐나다를 떠나 인도의 뭄바이로 가던 에어인디아 비행기가 대서양에서 폭파돼 탑승자 329명 전원이 숨졌다. 캐나다에 사는 인도계 테러리스트들이 시한폭탄을 담은 가방을 탁송화물로 부치는 방식으로 저지른 범행임이 곧 밝혀지고 용의자의 신원도 거의 드러났지만, 수사를 맡은 RCMP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죄판결을 얻어내지 못했다. 2004년 피고인 2명을 법정에 세웠으나 법원은 “이유 있는 의심을 넘어선 증거(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가 제시되지 못했다며 2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에어인디아 폭파사건 중대 실책

    에어인디아 사건은 인도의 펀잡 주 분리독립운동의 산물이다. 펀잡의 주민들이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준비하자 1984년 인도 경찰이 강경 단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분리주의자들은 그해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를 시해하는 등 일련의 테러에 들어갔고, 이에 동조한 캐나다 거주 펀잡 출신자들이 비행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것.

    인도 당국은 에어인디아에 대한 테러 모의 첩보를 미리 입수해 캐나다 당국에 알렸다. 이에 캐나다 당국은 사건 몇 달 전부터 음모자들의 전화를 감청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한 숲 속에서 실시한 시한폭탄 폭파시험 현장을 미행까지 했으나 정작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캐나다에서는 검사가 공소 유지만 맡고 수사는 경찰의 몫이다.



    주모자로 지목돼 사건 직후 RCMP로부터 가택수색까지 받았던 탈윈드 파르마르는 이후에도 여러 해 캐나다에서 활보하다 인도로 잠입했는데 1992년 현지 경찰에 붙들려 수사를 받던 중 가혹행위로 숨졌다. 2004년 캐나다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두 피고인은 종범 자격이었다. RCMP도 이 사건과 관련해 2001년 한 명의 펀잡계 캐나다인에 대한 유죄판결을 얻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인더짓 레야트라는 이 남자는, 사건 전모에 대해서는 모르고 단지 자동차 정비공인 자신에게 낯선 펀잡계 캐나다인들이 찾아와 시한폭탄을 만들어달라고 해 응했을 뿐이라고 주장해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종범 피고인 2명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오자 캐나다 연방정부는 범인을 처벌하진 못하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밝히겠다는 뜻에서 연방최고법원 판사를 지낸 원로 법조인을 위원장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7월에 나온 위원회 보고서에서는 RCMP와 이 나라 정보기관 등의 이 사건 처리에 대해 “끝없이 쏟아진 오류” “변명의 여지 없는 중대 실책” 등으로 결론지었다.

    저절로 잡힌 연쇄살인범을 풀어준 어이없는 사건도 있었다. 결국 로버트 픽턴(61)은 엽기의 극한을 보여준 연쇄살인을 더 저지른 뒤 2007년 종신징역에 25년간 가석방 금지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사형제가 없는 캐나다에서 이는 최고형이다. 그는 밴쿠버 근교에서 돼지를 기르면서 1990년대부터 수많은 ‘거리의 여인’을 자신의 양돈장으로 유인, 성행위를 한 뒤 살해하기를 거듭한 끝에 2002년 붙들렸다.

    그에 대한 재판이 처음 열렸을 때의 기소 내용은 26명 살해였는데 판사가 이를 6명 살해와 20명 살해로 분리해 우선 6명 살해만 재판하기로 결정했다. 26건 전부에 대해 증거를 확인하려면 1심 판결에만 몇 년이 걸릴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종신형은 6명 살해에 대한 형벌이다. 그런데 올해 7월 검찰은 나머지 20건에 대한 기소 부활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추가로 재판을 해봐야 형량이 늘어날 수 없고, 끔찍한 사건 내용을 다시 상기시킬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들 20명의 유족(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해 ‘유족 추정자’) 중에도 검찰의 기소 부활 포기가 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살해 방법이 잔혹했다. 픽턴은 돼지 도살장치로 희생자의 시신을 분쇄하는 등 표현하기 섬뜩한 만행을 저질렀다.

    픽턴에 대한 수사는 RCMP의 주도 아래 밴쿠버와 인근 지방자치단체 경찰이 참여한 합동수사팀이 담당해 끝내 범인을 잡아냈다. 그럼에도 수사팀이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연쇄살인 초기에 범인을 잡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정황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대목이 지난 7월 폭로됐다.

    연쇄살인범 초기에 풀어줘 말썽

    경찰이 픽턴을 검거하기 5년 전인 1997년 한 여인이 그의 양돈장에 불려갔다가 죽임을 당할 뻔했다. 여인은 그가 휘두른 칼에 찔렸으나 칼을 빼앗아 반대로 공격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 크게 다쳐 같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당시 경찰은 픽턴을 살인미수 혐의로 조사했으나 진척 없이 몇 달 뒤 사건 파일을 닫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성매매 여성인 데다 마약중독자여서 진술에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사건 종결에 대해 변명했다.

    당시 픽턴이 입고 있던 옷이 압류됐다가 사건 종결과 함께 경찰 창고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검거돼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4년 경찰이 창고에 방치했던 옷을 꺼내 재감정한 결과 다른 실종 여인 3명의 DNA가 검출됐다.

    이 밖에 무고한 외국인을 숨지게 한 사건도 있다. 2007년 폴라드인 로베르트 제칸스키(43)가 이민 비자를 받아 밴쿠버 공항에 입국했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난폭행동자로 신고된 뒤, 출동한 RCMP 경찰관들의 전기충격총(상품명 ‘Taser’)에 맞아 현장에서 숨진 것. 하지만 공항에 있던 한 청년이 찍은 동영상에서 제칸스키가 전혀 난폭행동을 하지 않은 채 있다가 무방비로 당한 것이 드러났다. 경찰관들은 도착 후 25초 만에 제칸스키에게 첫 전기충격총을 쏘았고, 이어서 무려 4발을 더 발사했다. 심지어 그가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쏘았다. 제칸스키가 마치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버둥거리며 숨을 거두는 모습이 생생하게 방송됐다. RCMP는 당초 발표 때 출동자가 모두 3명이었다고 했으나 실제는 4명이었다.

    RCMP는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oyal Canadian Mounted Police)’의 준말로, 초창기 말을 타고 서부를 누비던 시절의 전통을 강조해 말을 탈 일이 없는 지금도 이 명칭을 쓴다. RCMP와 지방경찰이 혼재하는 캐나다에서 자신들만이 엘리트 경찰이라는 RCMP의 자부심 또는 오만이 요즘의 기합 빠진 행태로 나타났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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