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2017.04.26

김작가의 음담악담

5만 개 팔찌에게 준 우주회장 밴드의 선물

콜드플레이 첫 내한공연 모바일 시대 최적화된 무대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04-25 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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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7, 18일 서울에는 비가 촉촉히 내렸다. 바람이 불었다. 벚꽃이 졌다. 땅은 온통 분홍빛 점들로 가득했다. 아스팔트에 펼쳐진 밤하늘 같았다. 나는 전날의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을 떠올렸다.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공연, 무대 앞과 객석을 가득 채운 5만 개 팔찌가 내뿜던 빛을. 그 빛이 모이고 흔들리며 함성과 합창 속에서 이지러지던 우주를.

    4월 15일 해가 질 무렵 올림픽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스탠딩 입장을 위해 낮부터 기다린 이들이 올린 사진과 글로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빼곡했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도 막상 도착해 깜짝 놀랐다. 티셔츠와 에코백 등 콜드플레이 관련 물품을 파는 부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일본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일부 아이돌 콘서트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티셔츠를 사려고 관객이 이렇게 줄 서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마니아를 제외하면 밴드 티셔츠를 평소 입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으로 모자라 물건으로 이 시간을 기념하고자 하는 욕망의 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객석에서 빛난 5만 개 별

    콜드플레이의 음반  ·  음원 매출이 국내 시장에서 비교적 상위권에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I’m Yours’로 공전의 인기를 기록한 제이슨 므라즈, 신보가 나오는 족족 빌보드차트는 물론이고 국내 음원차트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마룬5에 비하면 체감 인기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현장 열기는 그들의 공연장에서 느껴지는 수준을 압도했다. 첫 내한공연이라는 프리미엄이 있고,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리즈라는 브랜드도 있다. 이런 요소가 맞물려 수백 대 일이라는 예매 전쟁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1세기에 이름을 알린 해외 음악가 가운데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가장 관객친화적이자 상호작용에 충실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콜드플레이의 히트곡 ‘Viva La Vida’를 합창하며 공연 시작을 재촉하는 가운데 저녁 8시 10분쯤 무대조명이 꺼졌다. 환영 함성이 울려 퍼졌다. 통상적인 공연이라면 바로 입장 음악과 함께 밴드가 등장하고 첫 곡을 시작했을 테지만, 이번엔 밴드의 아시아 투어를 위한 영상이 흐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 최강 밴드 콜드플레이를 소개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카운트다운이 울려 퍼졌다. 숫자가 제로(0)가 되는 순간, 마리아 칼라스의 ‘O Mio Babbino Caro’를 배경으로 그들이 등장했다. 첫 곡 ‘A Head Full Of Dreams’가 무지갯빛 조명과 함께 시작됐다.

    자신들의 공연에 기승전결 따위는 없다는 듯, 오직 기선 제압만 있다는 듯 시작부터 불꽃이 터지고 무빙이 돌아갔다. 그리고 콜드플레이 공연의 전매특허이자 많은 팬이 기다려왔던 자이로밴드(발광팔찌)가 스탠딩과 지정석을 막론하고 무지갯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이로밴드는 안에 LED(발광다이오드)와 센서가 내장된 플라스틱 팔찌다.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광봉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팔찌 조명을 음향  ·  조명 부스에서 일괄 조절하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라디오 신호를 쏘면 각각의 팔찌가 반응하는 식이다.

    점멸은 물론이고, 색상과 위치까지 조절할 수 있다. 노랑과 빨강, 파랑과 초록 등 그때그때 곡 분위기에 맞는 색깔로 반응하며 위치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나기도 한다. 2011년 독일의 한 기술자가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던 중 ‘Fix You’에 영감을 받아 이 장치를 개발했고, 그들에게 공연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지금까지 자이로밴드는 콜드플레이 투어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쓰이고 있다.

    이 장치로 현대 콘서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명은 무대에서 객석으로 확산됐다. 무대에서 뿜어내는 스펙터클이 전부가 아닌, 밴드 또한 객석의 장관을 바라보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5만 개 별이 형형색색 시시각각으로 빛나는 가운데 콜드플레이는 신곡과 히트곡을 이어갔다. 데뷔 히트곡 ‘Yellow’는 세월호 3주기이기도 했던 4월 16일 공연에서 10초간 묵념과 함께 시작돼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래가 됐다.

    이어 대표적인 히트곡 ‘Fix You’와 ‘Viva La Vida’가 연이어 연주되며 객석은 감동과 흥분의 절정을 찍었다. 공연 내내 이어지던 객석의 ‘떼창’도 이 두 곡에서 가장 높은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이 두 곡은 근래의 한국 사회와도 관계가 있다. 이른바 ‘세월호 정국’이 이어지던 때 한 종합편성채널 뉴스에서 ‘Fix You’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 영상은 인터넷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고 보는 이의 눈가를 적셨다. 이 곡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위로의 노래로 통하기도 한다. 크리스 마틴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 역시 눈물이 흘렀다.



    SNS 시대에 최적화된 공연

    이어진 ‘Viva La Vida’는 몰락한 왕의 이야기를 그린 노래다. 2008년 발표한 이래 콜드플레이의 대표적 앤섬(anthem)으로 자리 잡았다. ‘탄핵정국’에서 이 노래는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영상에도 종종 삽입되곤 했다. 그때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염원하는 촛불의 송가로 광장에 퍼졌다면, 이제는 그때를 돌아보는 개선행진곡이 돼 잠실벌을 울렸다. 음악의 절정은 그렇게 찾아왔다.
     
    2시간 동안 펼쳐진 공연에서 콜드플레이는 20년간 흘러온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음악으로, 연출로 보여줬다. 스탠딩과 지정석 사이 간이무대에서 버스킹 같은 형식으로 어쿠스틱 공연을 선보였고, 최근 페스티벌계의 대세인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스타일의 연출로 객석을 거대한 춤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자이로밴드로 대표되는 기술과 연출, 메인무대와 보조무대를 오가는 공간 활용,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경험이 어우러졌다. 이 극적이고 화려한 엔터테인먼트를 보면서 새삼 콜드플레이 성공 비결의 본질을 깨달았다. SNS와 모바일 시대에 최적화된 무대였다. 록스타의 신화와 제의적 가치가 무너진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눈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에 기억을 기록한다. 그리고 SNS에 인증하고 자랑한다. 그러나 현장의 경험은 액정과 스피커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법이다. 무대에서 멀수록 그 한계는 더하다.

    이때 자이로밴드가 펼치는 환상적인 풍경과 멀리 앉아 있어도 지정석까지 다가오는 모습이 담긴다면? 공연을 보는 사람은 뿌듯하고 온라인으로 연결된 이는 생생한 부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 시간, 그 자리의 스펙터클이 각자의 이미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콜드플레이의 공연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고, 한국에서도 1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모을 수 있었으리라. 콜드플레이는 그렇게 현대 콘서트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한국을 떠났다. 혼자 온 사람에게는 행복을, 친구와 온 사람에게는 연대를, 연인과 온 사람에게는 사랑을 선물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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