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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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검찰총장이라서…참 쉽죠~?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10-21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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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발간된 한 시사주간지는 6월 퇴임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경남지역 중견기업인 SLS조선 비자금 조성사건 변호를 맡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게 어쨌다고?’ 독자가 보기엔 이미 검찰을 떠난 임 전 총장이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한 게 무슨 대단한 기삿거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창원지검 사건이고, 내로라할 대기업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간단하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을 떠나면서 써내려간 ‘고별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후배 검사들과 대립 구도를 형성한 것부터가 이해되지 않는 행보라는 게 대다수 검찰 관계자의 반응입니다. 몇 주 전부터 임 전 총장의 수임 첩보를 접하고 취재해온 저 역시 동감합니다. 임 전 총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수임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직 총장의 수임 사실이 수사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SLS조선 사건은 검찰이 심혈을 기울여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회계분석팀까지 수사에 동참했습니다. SLS조선의 고위 관계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치권 등에서 또 다른 ‘정치보복’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까 매우 조심스레 수사를 벌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전직 검찰총장의 이 같은 행보는 검찰 처지에선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후배 수사 검사들이야 소신껏 ‘정도(正道)’를 가려고 하겠지만, 그들의 ‘윗선’은 얼마 전까지 모시던 상관을 마주 대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임 전 총장은 인터뷰에서 “막역한 친구가 있어 자문을 해주고 있는데, 후배들도 원칙대로 수사하면 되고, 나는 나대로 변호사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그 말이 후배들에게 곧이곧대로 들렸을까요?

    그런 사이, 우려하던 징후들이 벌써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SLS조선 L회장의 출국금지가 갑자기 풀렸느니 하는 별의별 소리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말이 나오는 것부터가 전관예우의 폐해 아닐까요? 얼마 전 막역한 사이인 한 검사에게 “정말로 전직 총장들이 수사 검사들에게 전화도 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검사는 “○○○ 총장이 가장 많이 해. 그럴 때면 당황스럽지. 말도 마”라며 미간을 찌푸리더군요.



    전직 검찰총장이라서…참 쉽죠~?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리 없습니다. 변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시기가 너무 빠르고 민감한 사건을 맡았다는 겁니다. 2005년 4월에 퇴임한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2006년 퇴임 1년여 만에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의 변호를 맡았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수임료를 반납하고 사임하지 않았습니까. 젊고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지 못해 줄줄이 간판을 내린다는 요즘, ‘사건 수임하기 참 쉽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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