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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記·충·천

1987년 경찰, 2009년 경찰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1987년 경찰, 2009년 경찰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의 보고 문건이 손에 들어왔다. ‘요즘 경찰, 갈 데까지 갔구나’라며 들춰보는데,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20여 년 전 어두운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건 내용은 4월30일 청년학생 결의대회부터 5월1일 노동절, 5월2일 촛불 1주년 범국민대회의 집회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6월10일 100만 범국민대회를 제대로 막아야 한다는 것. ‘채증요원 87명 투입’ ‘첩보를 미리 빼내라’ 등 읽으면 읽을수록 옛 기억이 생생해진다.

문건에는 “좌파세력이 시민사회단체 누리꾼 세력을 규합해 불법 반정부 시위를 벌인다”고 적혀 있다. “좌파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미검거자는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라”는 대목도 눈에 띈다. 좌파세력에는 학생(NL계와 PD계), 민노당, 진보신당뿐 아니라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촛불시민연석회의, 사노련, 전교조,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삼민투 등이 포함돼 있었다. NL, PD, 사노련, 삼민투…, 독재시대에 좌경용공 세력으로 규정된 단체들이다. ‘아직도 이런 단체가 있나’ 싶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소속 단체를 찾아보니 참여연대, 흥사단,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같은 낯익은 시민단체가 다수 포함돼 있다. 경찰은 집회를 생중계하는 인터넷 매체도 ‘좌파’로 규정했다.

우리 사회는 좌·우파를 무 자르듯 너무 쉽게 구분한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좌파, 찬성하면 우파다. 선을 딱 그어놓고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며 다툰다. 경찰은 시위와 집회에 관한 법 또는 도로교통관리법에 의거해 ‘법대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1987년 경찰, 2009년 경찰
왜 경찰이 시민집회를 두고 미리 정치적 분석을 하면서 ‘발본색원’ 운운하고 오해 살 일을 하는지 의문이다. 서울의 치안총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덕수궁 서울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뒤 “일부 전의경의 실수”라고 거짓 변명한 것도 철거의 법적 근거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의 이러저러한 행태에 1987년 6월의 영상이 자꾸 덧칠되는 것은 왜일까.



주간동아 690호 (p70~70)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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