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4

2009.05.05

원조 시락국부터 졸복국까지… 침 도네

‘봄맛’ 따라 떠나는 통영 여행

  • 채지형 여행작가 http://www.traveldesigner.co.kr

    입력2009-04-29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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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 시락국부터 졸복국까지… 침 도네

    경남 통영 주변의 소매물도.

    ‘맛있는 것만 먹기에도 우리 인생은 짧다.’

    서울 서대문의 한 음식점에 갔다가 우연히 본 이 문구는 단순하면서 명쾌했다. 소박한 우리네 인생에서 ‘먹는 낙’이야말로 최고의 낙이 아닐까. 여행을 하는 데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맛’이다. 일반적으로 맛집 여행을 계획할 때면, 지도 위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전라도 지역에 머문다. 전라도는 누구나 인정하듯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가도 어느 정도 기대를 만족시키는 ‘안전한’ 맛집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안전’ 대신 ‘도전’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경상도로 한번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경상도의 음식 맛이 심심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는 사람도 있지만, 맛이 있는 곳은 또 확실하게 맛있는 곳이 경상도다. 경상도의 맛을 책임지는 곳 중에서도 이번에는 통영으로 떠나보자. 통영을 ‘음악의 도시, 예술의 도시’로만 알고 있다면, ‘맛으로 행복해지는 도시’ 한 가지를 추가하는 게 좋겠다. 놀랍게도 통영에는 모든 세대를 만족시킬 맛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으니.

    통영 맛집의 출발은 원조 시락국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막차를 타고 도착한 통영.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킨다. 어스름한 새벽에 시작한 통영 맛집 여행의 출발점은 서호시장의 원조 시락국집.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식당은 무척 작다. 테이블이라고 해봐야 바텐더가 온더록을 만들어줄 것처럼 생긴 테이블 하나가 전부. 그 위에 10여 가지 반찬이 담긴 반찬통이 있다. 반찬은 셀프. 양념장과 김 등 양념도 알아서 입맛에 따라 먹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식당을 탐색하는 동안 ‘말이국밥’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한 숟가락을 뜨니, 왜 사람들이 이 집을 찾는지 알 것 같다. 시원하고 진하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통영 사투리. 이곳에서는 장어를 요리하고 남은 머리 부분에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7~8시간 끓여 육수를 만드는데 이것이 원조 시락국의 비법이란다.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나니, 밤새 버스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려온 보람이 느껴지는 듯했다. 물론 통영의 맛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입안을 향기롭게 해주는 멍게비빔밥, 도다리쑥국

    맛도 맛이지만 향을 좋아하는 이라면 멍게비빔밥과 도다리쑥국을 먹어봐야 한다. 그 향긋함에 입안은 아름다운 꽃밭이 되고 드넓은 바다가 된다. 특히 도다리쑥국은 쑥이 나오는 봄에만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이때 통영을 찾는 이라면 먼저 맛봐야 한다. 봄의 기운을 듬뿍 담은 쑥의 향기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도다리의 하얀 살! ‘바로 이 맛이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멍게비빔밥은 또 어떤가. 한입, 입에 넣고 눈을 감으면 바다를 머금은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멍게비빔밥에 들어가는 것은 멍게와 통깨, 김가루, 참기름 4가지. 재료가 더 들어가도 안 된다는 것이 주방장의 설명이다. 고유한 맛을 해칠 수 있다는 게 이유. 멍게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밥알이 눌리지 않게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밥과 멍게, 양념을 삭삭 비벼야 한다. 멍게도 꼭꼭 오래 씹어보자. 바다 냄새가 더욱 진하게 퍼질 것이다. 한 가지 더. 멍게는 5월에 많이 잡힌다는 것을 기억하자.

    원조 시락국부터 졸복국까지… 침 도네

    ‘다찌집’에서 소주를 추가하면, 푸짐하고 맛있는 안주가 덤으로 나온다(첫번째 사진). 원조 시락국 (두번째 사진). 오미사꿀빵(세번째 사진).

    매일 한정 판매, 오미사꿀빵

    경주에 황남빵이 있고 안흥에 찐빵이 있다면, 통영에는 오미사꿀빵이 있다. 역사는 거슬러 1960년대로 올라간다. 오미사꿀빵집의 주인 할아버지가 밀가루 배급을 받던 시절, 빵을 만들어서 하나둘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 빵집에 간판이 없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오미사 옆집 빵집’이라고 불렀다. 오미사는 당시 빵집 옆에 있던 세탁소 이름. 세월이 흘러 오미사는 없어지고 ‘오미사 옆집’으로 불리던 꿀빵집이 ‘오미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꿀빵집을 운영하면서, 매일 일정량만 만들어 판매한다. 빨리 가지 않으면 꿀빵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한번은 오후 5시쯤 택시를 타고 “오미사꿀빵집으로 가주세요”라고 했더니, “지금 할아버지 집은 꿀빵이 떨어졌을 시간인데, 아들이 하는 집으로 모셔다드릴까요?”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아들이 꿀빵집을 따로 하고 있던 것. 아들의 꿀빵집에 도착하니 마침 새로 꿀빵을 만들던 터라,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 하나하나를 보면서 막 나온 따끈한 꿀빵을 맛볼 수 있었다.

    애주가들의 잔칫집, 다찌와 해장을 책임지는 졸복국

    통영에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찌집’에 가보라고 했다. ‘다찌’라는 이름은 ‘술을 서서 마신다’는 뜻의 일본어 ‘다찌노미’에서 왔다고 한다. 현재 우리에게 불리는 다찌는 ‘다찌노미’의 의미보다는 통영의 특별한 술 문화를 가리킨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일단 기억해야 할 것은 혼자 가면 손해라는 것. 3명 이상이라면 다찌집만 한 곳이 없다. 기본으로 소주 3병에 3만원이라고 해서 비싸다 생각했는데, 나오는 안주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싱싱한 각종 생선회에 미역, 멍게 등 10여 가지 안주가 줄줄이 나왔다.

    다찌집에서 길고 긴 밤을 보냈다면, 다음 날 직행해야 할 곳이 있다. 서호시장에 있는 졸복국집. 손가락 2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졸복 4~5마리가 들어간 졸복국은 통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해장국이다. 시원한 국물과 담백한 맛은 다찌에서 밤새 힘들었을 속을 훌륭하게 다독거려준다. 식초를 조금 더 넣으면 국물이 진해진다고 하니, 한번 시도해봐도 좋겠다.

    소매물도 여행 떠난다면 충무김밥에서 포장을

    통영 주변에는 150여 개의 섬이 있다. 이 중에서도 소매물도는 인기 스타. 손때가 덜 묻어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곳에는 이렇다 할 식당이 없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때 안성맞춤인 것이 충무김밥이다. 김밥과 곁들여 먹는 갑오징어무침, 멸치젓을 듬뿍 넣어 담근 무김치는 언제나 즐거운 맛을 선물한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여행하는 사람이든 현지인이든 모든 상황과 세대를 만족시키는 통영의 맛! 독특한 문화와 자연, 그리고 역사가 살아 숨쉬는 통영의 맛이 부디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통영의 베스트 맛집

    멍게비빔밥 통영맛집 : 055-641-0109, 밀물식당 : 055-646-1551

    도다리쑥국 통영회식당 : 055-641-3500, 터미널 회식당 : 055-641-0711

    오미사꿀빵 www.omisa.co.kr 055-646-3230

    졸복국 호동식당 : 055-645-3138, 분소식당 : 055-644-0495, 만성식당 : 055-645-2140

    충무김밥 뚱보할매김밥 : 055-645-2619, 한일김밥 : 055-645-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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