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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파산·감원에 사모님들 “오 마이 갓!”

‘금융맨’ 아내·여친 블로그 화제 … 호화 만찬과 값비싼 선물은 옛말

월가 파산·감원에 사모님들 “오 마이 갓!”

겉보기에는 ‘섹스 앤 더 시티’와 똑같다. 주말 오전, 뉴욕 맨해튼의 브런치 레스토랑. 모임에 참석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세련된 탱크톱과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었다. 그러나 표정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나 사만다처럼 밝지 않다. 그럴 수밖에. 모임에 참가한 여성들은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남자를 연인이나 남편으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들의 대화 주제는 감원과 해고(lay-off),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다우존스 지수 등이다. 여기에다 날로 심각해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하소연도 빠지지 않는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이 모임의 정체는 ‘익명의 뱅커들과 데이트 중인 여자들’. 지난해 11월 블로그를 통해 결성된 이 모임에 가입하려면 파생상품 트레이더나 증권사 애널리스트, 투자상담사 등 금융산업 종사자의 애인이거나 아내여야 한다. 지금까지 이들은 억대 연봉이나 운전기사 딸린 자가용,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만찬, 값비싼 선물 등을 당연하게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정확히 말하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날로 어두워져가는 애인의 표정을 통해, 또는 전에 없던 술주정을 하기 시작한 남편의 모습을 보며 이들은 미국 경제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절감한다.

경제 악재 터진 날엔 데이트 취소

모임에 참석한 매건 페트루스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27세인 그녀는 파생상품 트레이더인 남자친구와 8개월째 데이트 중이다. 매건은 얼마 전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경황이 없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매건의 하소연을 들어줄 시간이 없다. 회사 동료 여럿이 해고당하는 바람에 그들 몫까지 도맡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카메론의 상황도 매건과 비슷하다. 투자분석가인 남자친구와 1년째 사귀는 그녀는 얼마 전 데이트 중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술을 몇 잔 마셨는데, 남자친구가 갑작스레 취하더니 그녀를 식당에 팽개친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뷰티 컨설턴트인 던 스피너는 지난해 11월 개인자산관리자인 브랜던 데이비스와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이 올해 들어 그토록 좋아하던 골프를 끊는 것을 보고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남편 친구 하나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남편이 제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며 좋아했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아내가 일할 테니 최소한 내가 35살에 과로사 할 일은 없겠지’라고 했다지 뭐예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맙소사, 내가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니잖아!’ 싶었어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오프라인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여성들은 30명가량. 이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며 변호사나 칼럼니스트, 패션 웹사이트 운영 등 뉴욕 특유의 전문직에 종사한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이들의 블로그에는 신랄하고 시니컬한 토로가 많다.

“블로그의 글들은 하나같이 속 쓰리고 우울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런 글을 읽으면 희한하게도 마음이 좀 가벼워지더라고요.”

얼마 전 부동산투자 상담가인 남자친구와 결별한 레니(27)의 말이다.

‘경제 관련 악재가 터지는 날엔 데이트를 취소하라’는 것은 ‘익명의 뱅커들과 데이트 중인 여자들’만의 노하우다. 어차피 날카로워져 있을 애인과 만나서 좋은 얘기를 나눌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설령 만난다고 해도 남자들 정신이 딴 데 가 있어요. 저를 쳐다보는 척하지만 실상은 손에 든 블랙베리(PDA)를 쉴 새 없이 확인하고 있지요. 블룸버그나 CNBC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거예요.”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는 크리스틴의 설명이다.

왜 이 여성들은 현재의 상황을 이토록 못 견뎌하는 것일까?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지난해에도 그녀들의 남자친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그때는 남자친구가 쥐어준 신용카드, 그리고 최고의 남자와 사귄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1년이 흐른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쌍한 남자친구와 텅 빈 지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히 이혼 이야기도 빈번하게 나온다. 맨해튼의 이혼 전문 변호사 라울 펠더에 따르면, 경기가 하강하면서 이혼 건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건수는 줄고 있다. 남자들이 딴 주머니를 찰 만큼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기 때문. 블로그에 올라온 사연 중엔 바람을 피우던 한 금융계 종사자가 최근 애인에게 결별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월급과 보너스가 줄어들자 아내가 남편의 신용카드 사용처를 꼼꼼하게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맨해튼의 심리치료사인 해리엇 파펜하임은 이번 경기침체가 이른바 ‘월 스트리트 천재 뱅커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정신력마저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끝없이 터져나오는 경제 관련 악재가 금융계 종사자들의 자긍심을 꺾어놓으면서, 이들의 우울증이 아내나 연인, 아이들에게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경제위기로 인해 남녀 관계까지 금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던의 남편인 브랜던은 ‘새로 옮긴 직장이 그전 직장보다 업무 강도가 세고 중압감도 심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스트레스를 집으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골프를 그만두게 된 것에 대해 그는 “그저 골프 이야기를 하기가 싫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자들의 침묵이 가장 참기 힘들다”

어느 쪽이든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크다. 경제위기 때문에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사실도, 더는 신용카드를 마구 그을 수 없게 됐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 남자친구나 남편 때문에 답답하다. 그래서 이들의 블로그에는 남자친구에 대한 불평이나 한탄 외에도 경제 관련 뉴스가 빠짐없이 올라온다. ‘다우존스 300포인트 하락’처럼 나쁜 뉴스에는 빨간색, ‘워런 버핏,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30억 달러 투자’ 같은 좋은 뉴스에는 노란색의 말머리가 붙는다. 1월21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뉴스에는 ‘초특급 굿 뉴스’를 뜻하는 초록색 말머리가 붙었다.

“더 이상 200달러짜리 저녁을 사줄 수 없다 해도 상관없어요. 여전히 우리 애인과 남편들은 자신감 넘치는 멋진 남자들이니까요. 그리고 결국 이 남자들이 불경기를 이겨나갈 테니까요.”

매건의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린다.

미국發 경기불황 후폭풍 지구촌 모습

영국에선 “외국인 나가라!”


유럽연합(EU) 국가들 중에서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영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에도 비상이 걸렸다. 영국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에 대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관대한 정책을 펴왔다.

영국 에너지 분야 노동자 수천 명은 1월 말부터 린제이 정유공장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에 반대하며 전국적인 동조파업을 벌였다. 사태는 이탈리아 기업 IREM이 정유공장 내 신규 단지를 건설하는 하도급 계약을 따낸 뒤부터 시작됐다. IREM이 영국인 노동자보다 임금이 싼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출신의 이민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면서 영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실직 공포가 확산된 것.

‘정식 쟁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파업’이라는 정부의 경고에도 연대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영국에 진출한 외국 자본이 자신들에게 역차별 정책을 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특히 2007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고든 브라운 총리가 “영국인들에게 영국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한 공약을 거론하며 총리의 약속 불이행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는 자신의 발언이 기술 수준을 포함한 구직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었을 뿐, 다른 EU 국가의 이민 노동자들을 배척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며 선을 그었다.

파업은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정부와 여론이 이번 연대파업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또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실업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틈을 비집고 외국인 백안시 정책을 펴는 극우민족주의가 득세할 가능성 때문이다. 영국 내 극우정당인 영국국민당(BNP)은 이미 최근 몇 년간 이슬람의 극단주의 테러 등 불안한 정세를 틈타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런던시장 선거에서는 5%가 넘는 득표력을 과시해 정치권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영국 사회에서 외국 출신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만은 아니다.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무더기로 EU에 가입한 이후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 보장된 영국 노동시장으로 몰려들자 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커졌다.

EU 국가들에 진출한 영국인 노동자가 3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 반해, 영국에서 일자리를 차지한 다른 EU 국가 노동자들은 1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번 파업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악의 경기침체와 보호주의 목소리가 합쳐지면 영국 경제에는 ‘독이 든 칵테일(toxic mix)’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주간동아 2009.02.17 673호 (p64~66)

  • 전원경 객원기자 winn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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