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어색한 사투리에 묻어난 바른생활 남자의 父情

‘크로싱’의 차인표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8-07-02 0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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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한 사투리에 묻어난 바른생활 남자의 父情

    굶주림과 병 때문에 헤어진 가족은 다시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영화 ‘크로싱’에는 그 같은 몸부림과 진실이 담겨져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차인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그가 착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연기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그가 착하기 때문에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있다.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이미지는 그동안 그의 많은 선택이 알려지면서 구축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007 시리즈’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시나리오가 북한을 나쁘게 묘사했다고 해서 배역을 거절한 것이나, 아이를 입양했다거나 제3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차인표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쌓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아들 데려오기 위해 안간힘 쓰는 탈북자 역할

    “악역은 언젠가 꼭 한번 하고 싶다. 그러나 파괴하는 영화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가진 영화, 따뜻한 영화를 좋아한다.”

    차인표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선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탈북자 아버지가 아들과 재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 ‘크로싱’의 캐스팅 제의도 그는 세 번이나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선택했다. 제작진이 자신의 바른생활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탈북자들의 삶이 불쌍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삶을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다. 그리고 촬영하는 동안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차인표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어떤 드라마 PD는 “영화판 가서 푸대접 받지 말고 드라마 찍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조폭 보스로 등장한 ‘목포는 항구다’가 180만명,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39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차인표의 최근 출연작들은 분명히 상승세에 있지만 아직도 차인표라는 배우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크로싱’은 차인표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착한 영화다. 탈북자 가족의 재회과정을 그린 김태균 감독의 비극적 드라마 ‘크로싱’은, 우리의 삶은 날카롭고 위태로운 칼날로 포위돼 있고 마른 먼지 덮인 세상처럼 팍팍하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보여준다. 사실적인 카메라와 정성스럽게 재현한 북한의 모습은 이야기의 현실감을 증폭시켜준다. 중국과 몽골 그리고 강원도 탄광지대의 삭막한 땅에서 찍은 ‘크로싱’의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된 탈북자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구체성과 진실성을 담보하기에 신문의 일단 기사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떨림이 가슴 깊숙이 전해온다.

    함경북도 탄광지대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용수(차인표 분). 그는 젊은 시절 북한의 국가대표 축구선수였지만 지금은 다른 노동자들처럼 탄광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임신한 아내, 외아들 준(신명철 분)이 있기에 남루하고 가난한 삶이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용수. 하지만 북한의 식량 사정은 악화되고 임신한 아내가 잘 먹지 못해 쓰러지자 용수는 집에서 기르던 개까지 잡아 몸보신을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헛되어 용수의 아내는 폐결핵에 걸린다. 북한에서는 제대로 약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용수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중국에 가서 약을 사와야만 한다.

    ‘크로싱’에서 주인공의 탈북 동기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다른 탈북자들처럼 굶주림이나 정치적 박해 때문이 아니다. 두만강을 건너간 용수는 벌목장에서 불법 노동자로 일하며 착실히 돈을 모은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중국 공안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모아둔 돈을 다 잃어버린다. 아내의 약을 사지 않고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용수는, NGO(비정부기구)와 인터뷰를 해주면 돈을 준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고 독일대사관 담을 넘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가족과 영원한 이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몽골의 시골마을을 완벽하게 북한의 마을로 탈바꿈시켜 촬영에 사실성을 높인 제작진이 왜 내러티브 전개에 무리수를 두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였으면 해외 체류 경험도 있고 세상물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독일대사관 담을 넘는다는 것이 다시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몰랐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나 ‘크로싱’이 주는 울림은 깊어, 전반부가 가족과의 이별을 그렸다면 용수가 한국으로 온 뒤부터는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다.

    북한에 남은 용수의 아내는 끝내 숨지고 혼자 남은 준은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가려 한다. 그러나 탈북과정에서 붙잡힌 준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고, 서울에 있는 용수는 탈북자를 돕는 중국 동포와 연락이 돼서 많은 돈을 주고 아들을 데려오려 한다.

    치장하지 않은 연기에서 진정성 느껴져

    비는 ‘크로싱’에서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된다. 준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억수처럼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는 일이다. 그것은 팍팍한 일상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답답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 하나의 상징이다. 비의 이미지는 후반부에서 준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몽골 국경지대로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막 이미지와 부딪치면서 가족의 재회를 상징하는 모티프로 성장한다.

    차인표는 ‘바른생활 사나이’의 착한 이미지를 이어간다. 그의 함경도 사투리는 사실성이 떨어지고 어색하지만 인물을 끌어안는 진정성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치장하지 않고, 수식하지 않고,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아버지의 진심이 차인표의 연기에서 깊게 묻어난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방황하는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김태균 감독의 시선에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 특히 준 역을 맡은 신명철의 호소력은 기대 이상이다. 아버지와의 첫 국제전화 장면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들과 처음으로 전화 통화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반나절을 찍었다. 하지만 단 두 컷밖에 나오지 않는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우리의 현실과 커다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대작 영화들에 즐겨 사용된다. 그러나 ‘크로싱’처럼 진정성을 갖고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의 힘은 외형만 크고 화려한 허장성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와 가슴을 움직이는 진정성에 담겨 있다는 것을 ‘크로싱’은 확인해준다.

    차인표는 곧 250쪽 분량의 동화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보리울의 여름’도 그렇고 ‘크로싱’도 그렇고,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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