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문제아는 없다, 올바른 삶 몰랐을 뿐”

IYF 여름캠프 개최 박옥수 목사 “청소년에 자아실현과 자신감 심어줘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8-06-30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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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아는 없다, 올바른 삶 몰랐을 뿐”
    “‘아들을 도와달라’는 거예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아주머니였는데, 평소 잘 알고 있는 분이었어요. 미국에서 일도 잘돼 아들 앤디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입혔는데, 당시 열여섯 살이던 앤디가 마약에 빠졌던 거죠. 앤디도 ‘엄마, 나도 내 마음대로 안 돼’라며 몸부림을 쳤나봐요. 벌써 13년 전 얘기네요. 사람은 진짜, 약하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당시 생각을 끄집어내는 순간, 기쁜소식강남교회 박옥수(63·사진) 목사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때 대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앤디를 한국으로 데려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감 고취와 자아실현을 목표로 심어줬죠. 조금씩 변화를 보이더니 마약에서 손떼고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하더라고요. 지금은 미국 덴버에서 치기공사로 일하고 있어요.”

    7월10일부터 2주간 2500여 명 참가

    앤디의 개과천선(改過遷善) 소식은 미국 한인사회에 알려졌고, 이듬해에는 이른바 ‘미국 문제아’ 28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요즘 대학생,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IYF(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국제청소년연합)는 그렇게 시작됐다.



    ‘앤디 사건’ 이후 꾸준히 밀려드는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2001년 사단법인을 만든 뒤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된 IYF는 현재 세계 65개국 2500여 명의 청소년들이 매년 IYF 월드캠프(World Camp)에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IYF 산파역을 맡았던 박 목사는 현재 고문으로 협회를 이끌고 있다. 캠프에 참가한 각국 청소년들은 2주간 한국의 자연과 산업시설을 체험하고 봉사활동, 문화교류를 하면서 올바른 삶의 방식이 뭔지를 깨닫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소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절제를 가르친다’는 게 IYF 모토.

    2005년부터 겨울엔 해외에서, 여름엔 한국에서 대회를 마련하고 있는데 ‘2008 한국 대회’는 7월10일부터 2주간 강원 강릉시 등에서 열린다.

    “러시아나 아프리카 학생들이 한국에 오려면 재산을 다 팔아야 할 정도예요. 그래도 학생들이 밝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죠.”

    박 목사는 “IYF 캠프를 거친 학생들은 세계 각지에서 해외봉사단원(Goodnews Corps)으로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2001년 11명이던 해외봉사단원이 지금은 세계 70여 개국에서 6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해외 파견’이라지만 상상은 금물이라고.

    “해외로 파견되는 한국 젊은이들은 모두 산속 마을이나 정글로 들어가죠. 그곳에서 현지인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한국어, 태권도, 컴퓨터 등을 가르쳐요.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걸리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비우고 무너뜨리며 돌아보는 거예요.”

    ‘무너뜨린다’는 말에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자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요. 하지만 그건 욕망을 위한 노력이지 진리를 위한 노력이 아니에요.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고통의 나락을 경험한 사람은 신앙이 보이죠. 그래서 자기를 비우고 무너뜨려야 참된….”

    그는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문제아’에서 ‘건전 청소년’으로 바뀌는 이유도 자신을 비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믿는 사람의 말은 100% 믿게 돼 있어요. 마찬가지로 자신을 믿으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죠. 자신의 욕망과 쾌락에 끌려다니는 거예요. (자신을) 벗어나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한마디로 변하는 거죠.”

    그는 자신의 체험을 예로 들었다.

    “제가 위궤양으로 고생할 때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하느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기도를 마친 후엔 (상식과 주치의의 처방에 따라) 죽만 먹었죠. 한마디로 나를 비우지 못한 거예요. 나를 비웠다면 김치도 먹고 고추도 먹었어야 해요.”

    “문제아는 없다, 올바른 삶 몰랐을 뿐”

    2006년 8월 아프리카 가나 봉사활동 중 현지 주민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박옥수 목사.

    ‘비운다’ ‘무너뜨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명확해졌다. 하지만 ‘자신을 비우고 김치와 고추를 먹었더니 깨끗이 나았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선 다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박 목사 표현대로라면 기자는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평소 기자의 의학적 믿음과 박 목사의 치료법은 거리가 있었고, 기자는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했다.(-_-;;)

    어쨌든 박 목사가 IYF 활동에 열심인 것은 적잖은 번민 속에서 보낸 자신의 청소년기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1944년 경북 선산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난 박 목사는 선산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한 뒤 기술학교에 다녔다. 어려웠던 시절 용돈을 마련할 생각에 신문배달을 했지만 몇 달 안 돼 신문대금을 들고 고향으로 ‘날랐다’. 매일 300부를 돌렸는데 250부의 신문대금만 걷혀 급여를 받지 못했던 것.

    “나중에 알았어요. 지국장이 무료로 받은 확장지를 배달시켜놓고 수금을 못했다며 급여를 안 줬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몇 달 뒤 수금한 돈 1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대안학교 전국 보급 청소년 삶 바꿔주고파”

    당시 기술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는 생활기반자금을 줬는데, 서울에 올라가면 지국장에게 잡힐까봐 그 자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생활기반자금은 액수가 꽤 컸거든요. 학교에선 받으러 오라는데 1만원을 훔쳤다는 사실에 무섭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겁을 먹었던 거죠.”

    갈등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62년 대구의 한 선교학교에 입학했고, 선교사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1971년 영국 출신의 딕 욕(Dick York) 목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번뇌하던 자신의 청소년기가 늘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자신이 선교사에게 받았던 도움을 지금은 IYF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돌려줄 뿐이라며 멋쩍어했다.

    어려웠던 시절 한 선교사의 도움은 번뇌하던 청소년을 40년 넘게 교회는 물론 교도소와 군부대를 찾아 봉사하는 목회자로, 1986년 부산에서의 설교 내용을 담은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Born Again)’이 12개국 언어로 출간되고 한국에서만 5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90년 LA 라디오코리아에서 설교를 시작해 현재 60여 개국에서 그의 설교가 방송되는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단다.

    “경기 부천시와 울산 광주에서 운영 중인 대안학교(링컨하우스스쿨)를 전국에 더 보급해 청소년들의 삶을 바꿔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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