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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인도로 가는 길’

영어 광풍과 영어 카스트 하층민

영어 광풍과 영어 카스트 하층민

영어 광풍과 영어 카스트 하층민

‘인도로 가는 길’

E.M. 포스터의 소설을 거장 데이비드 린이 스크린에 옮긴 ‘인도로 가는 길’은 인도에 대한 영화를 언급할 때 늘 떠올리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 사이의 대립을 보여주는 우화로 읽는다면 ‘인도’ 대신 다른 어느 나라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영화에는 영국과 인도, 두 세계를 대표하는 남녀가 나온다. 식민지에서 판사로 일하는 약혼자를 만나러 온 영국 아가씨 아델라와 인도의 지식인인 아지즈다. 두 사람은 편견과 경멸감을 갖고 인도인을 대하는 보통의 영국인들과 다른 영국인, 어느 인도인보다 영국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인도인이다. 이 둘의 우정과 소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 소통이 사실은 얼마나 위험한 기반 위에 있는 것인지를 영화는 얘기한다. 동굴 여행에서 몽환적 분위기에 정신이 혼미해진 아델라는 엉뚱하게 아지즈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우정은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도에서는 상류층에 속하는 아지즈도 식민지라는 일방적 권력관계의 폭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식민지 인도가 독립한 지 이제 60년. 그러나 아직 식민의 유산은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영어다. 지금 인도에서는 영어 구사능력이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른바 ‘영어 카스트’다. ‘인도로 가는 길’에서도 식민 권력관계의 일방주의는 언어에 나타나 있다. 아지즈가 영국인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영어로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반대방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언어 자체만이 아닌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다. 언어가 일방적일 때 그 관계에는 우열이 매겨진다. 아니 현실의 권력관계가 먼저 언어에 투영되고, 그 언어가 다시 권력관계를 강화시킨다고 하는 것이 맞다.

우리 사회의 영어 열풍을 생각하면 인도의 영어 카스트가 결코 낯설지 않다. 요즘 웬만한 초등학교를 가보면 영어 표현이 적힌 카드가 교실과 복도를 뒤덮고 있다. 우리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한국어의 깊은 세계를 배우기도 전에 영어부터 익숙해진다. 그게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일까라는 의문이 일단 든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나무랄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식민화라도 하려는 듯한 이 광풍은 영어를 얼마나 잘하게 되든 우리 자신을 영어 카스트의 하층민으로 만드는 짓이다. 어른들이야 원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주간동아 2008.04.22 632호 (p76~76)

  •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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