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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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거품빼기 스타들이 나서라!

구단 예산 60`~`80%가 선수 몸값 … 서로 발목 잡는 소모적 경쟁 타파 솔선수범 절실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입력2008-02-27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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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거품빼기 스타들이 나서라!
    2002년 7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던 지네딘 지단이 임금 삭감을 자청하고 나섰다. 지단의 선언이 있기 2주 전, 이탈리아 인터 밀란에서 뛰던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알바로 레코바도 연봉 삭감을 감수하며 ‘고통 분담’을 선언했다.

    당시 유럽 빅리그에서는 이탈리아 세리에A 라치오 구단이 도산 위기에 몰리는 등 거품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머지않아 K리그에서도 스타 선수들이 연봉 삭감을 요청하며 “K리그를 살려달라”고 호소할지 모른다. 마치 얼마 전까지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할 기업이 없어 급기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나섰듯이 말이다.

    K리그가 휘청거리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천정부지로 솟은 선수들의 몸값에 각 구단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 연봉 10억원을 돌파한 지는 이미 오래됐고, 각종 수당까지 합하면 구단 예산의 60∼80%가 선수 몸값으로 나가는 절름발이 신세다. 한 구단 사장은 “누구든 운영하지 못하겠다고 나서면 도미노처럼 너도나도 포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올해 초 각 구단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몸값에 만족하지 못한 스타들이 K리그를 등지고 해외로 눈을 돌린다면 K리그는 불황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K리그를 살릴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구단들의 소모적 경쟁을 피할 수 있을까. 스타들이 거품 빼기에 적극 동참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이 축구선수들의 위상을 드높인 점은 분명 경사다. 하지만 기형적인 몸값 상승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이적료 20억, 연봉 10억원은 기본 … K리그 휘청

    1997년 당시 포항의 홍명보와 일화의 고정운은 K리그 최초로 1억원 연봉을 돌파했다. 당시 1억원 연봉 돌파는 K리그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 1억원은 올림픽대표나 A대표로 반짝 인기를 누리면 얻을 수 있는 액수가 돼버렸다. 홍명보가 J리그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던 2000년에 받았던 연봉은 세금을 제외하고 10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선수생활 막바지에 놓였던 한국 스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하지만 이젠 굳이 일본을 찾을 이유가 없다. 웬만한 선수 연봉이 일본을 웃돌기 때문이다. 이적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4년 초 최태욱이 안양에서 인천으로 옮기며 10억원 이적료(11억원)를 넘어선 이후 2, 3배 껑충껑충 뛰었다. 지난해 초 오장은(대구 → 울산·27억원) 김동현(브라가 → 성남·24억원) 최성국(울산 → 성남·20억원) 김치우(인천 → 전남·20억원) 한동원(서울 → 성남·17억원) 등 이적료 20억원은 기본이요, 30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비교해보자. 포항은 이동국을 미들즈브러로 보내면서 이적료 한푼 받지 못했고, 설기현이 울버햄프턴(2부)에서 레딩으로 옮길 당시 이적료는 100만 파운드(약 18억원)였다. 일본 국가대표가 J리그 내에서 이적할 때 평균 이적료는 16억원이다. 그런데 K리그의 이적료는 세계 최고 리그라는 잉글랜드, 그리고 물가와 소득 수준이 더 높은 일본까지도 넘어선다. 게다가 각종 수당도 많은 편이다. 지난해 수원 삼성에서 뛰던 안정환에겐 한 경기 승리 수당으로 2000만원의 고액이 책정됐다. 김남일은 1800만원. 연봉 외에도 선수들과 맺은 각종 수당 등 이면계약으로 각 구단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1990년대 말만 해도 각 구단의 1년 예산은 50억∼60억원대였다. 당시 100억원가량 쓰던 수원 삼성은 타 구단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이제 수원 삼성, FC 서울, 울산 현대, 성남 일화 등 이른바 빅클럽들은 연간 150억∼20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적자는 계속 누적된다.

    생각해보자.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이천수의 연봉은 12억원 수준. 그가 뛰었던 울산 현대의 연간 관중 수익은 10억원에도 못 미친다. 관중 수익으로는 한 명의 스타 몸값도 충당하지 못하는 게 K리그의 냉엄한 현실이다.

    지난해 울산은 최고 연봉자 이천수를 네덜란드로 이적시켰고, 10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은 김남일은 수원 삼성을 떠나 J리그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안정환은 연봉을 구단에 백지위임하고서야 부산에 새 둥지를 틀 수 있었다. 부산은 연봉 7억원 선이던 북한 대표 안영학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탄탄한 흑자구조 J리그에서 배워야

    지난해 K리그 우승팀 포항은 이례적으로 돈보따리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연봉 5억원 선이던 최태욱을 전북으로 이적시켰다. 각 구단은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감에 결국 거품 빼기에 돌입했다. FC 서울은 올해까지 3년간 예산을 동결했으며, 수원은 2년 후 선수 인건비를 전체 운영비의 절반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올해 특급 스타를 영입하지 않았다. 재정 규모가 열악한 시민구단들도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무리한 지출을 줄이고 있다. 사실 선수 몸값 상승이 선수들 탓만은 아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음성적인 이면계약을 서슴지 않았던 구단 행정의 책임이 더 크다.

    구단들은 선수 연봉을 줄여야 지역 연고의 유소년 클럽과 인프라 구축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그동안 비밀에 부쳤던 선수 연봉을 공개하고, 각 구단의 경영정보를 팬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 J리그는 K리그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J리그는 1999년 장기 경제불황에다 외국인 선수 연봉이 급등했으며, 2만명에 육박하던 평균 관중도 1만명(1997년)으로 급감했다. 기업 스폰서들은 떨어져나갔고, 급기야 요코하마 플뤼겔스는 도산한 뒤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됐다.

    하지만 일본 축구의 상징 미우라 가즈요시가 연봉을 자진 삭감하자 다른 선수들도 이에 동참했다. 신인 선수 연봉의 상한선을 정했고, 계약금도 폐지했다. 선수 연봉도 등급제로 분류해 폭등을 제한했다. 그 결과 치솟던 선수 인건비가 차츰 줄어 50%까지 낮아졌다. 2006년 우라와 레즈는 선수단 연봉을 총지출의 36.5%까지 줄이며 탄탄한 흑자구조를 만들어냈다. 연봉 구조만 바꾼 게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2부 리그격인 J2를 출범했다. 리그의 하부구조를 탄탄히 하면서 지역 사회에 뿌리를 둔 클럽의 확대를 추진했던 것이다. 1999년부터는 구단의 경영 상태를 일괄적으로 공개하고 경영자문위원회도 설치했다.

    수입은 J리그의 3분의 1 수준이면서 선수 연봉은 비슷한 K리그가 J리그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프로연맹은 선수들의 기본급, 출전 및 승리 수당이 포함된 연봉 총액을 50억∼60억원을 기준으로 삼되, 물가변동과 구단 재정상황을 감안한 샐러리캡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인건비를 줄이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이익을 마케팅과 인프라 확충에 어떻게 투자할지를 결정할 목표를 세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프로구단들의 건실한 재정을 위해 미우라의 헌신처럼 스스로 희생을 감내하는 스타들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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