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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국정농단 STOP, 개헌 START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기본권 강화 등에 학계·정치권 공감대…“새 지도자는 새 헌법으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비판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11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광화문광장 양쪽의 세종대로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오른쪽 건물) 주변까지 촛불을 든 참가자로 가득 차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께서 개헌을 제안했고 새누리당 친박, 비박 가릴 것 없이 찬성하며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도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어제 문재인 전 대표께서 개헌 불가 입장을 밝힘으로써 실낱처럼 개헌을 고리로 뭉쳐가던 여야 의원들이 허탈감을 갖게 했습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11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이보다 앞서 15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요구한 긴급기자회견 자리에서 개헌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 역시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국면 전환을 초래한다.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發 개헌 제안의 늪

개헌은 최근 정치권의 잠재적 화두다. 촛불집회 전면에 드러난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지만, 그 뒤에 담긴 국민의 뜻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과 기본권 강화 등이며, 이를 구현하려면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헌정체제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2004년 6월 17대 국회 개원식 때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은 “진정한 민주화를 완성하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현재의 권력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6월 ‘법률신문’이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헌법 교수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42명)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개헌 후에도 현 헌법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낸 헌법학자는 4명에 불과했다. 학계에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었던 셈이다.



문제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이 논의의 주도권을 박근혜 대통령이 잡으려 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JTBC 보도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기 바로 전날인 10월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전격적으로 개헌을 제안했다. 또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안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하고 국민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개헌을 국정 돌파 수단으로 삼으면서 역설적으로 현 시기 개헌 논의는 동력을 잃은 측면이 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작금의 국정혼란이 일정 부분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야기됐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이들조차 현 상황에서는 개헌을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략적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선(秘線)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고, 책임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한겨레’ 칼럼에서 ‘개헌이 정국의 중심이 되면 ‘게이트’는 부차적 문제가 되어버린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와 의회정치가 분리된다. 지금은 권력 나누기 논의에 빠질 때가 아니라 ‘명예혁명’을 계속 진전시킬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실체 규명과 개헌 논의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987년 이후 약 30년 만에 시민사회의 힘이 정국운영의 중심으로 부상한 시점에 개헌을 이루지 못하면, 차후 헌법이 정략적 야합의 결과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당 의원 상당수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추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삼아 외치(外治)를 맡기고, 내치(內治)는 국무총리가 담당하면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등 현 집권세력이 계속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번 개헌 시기를 놓친 상태에서 과거 박근혜 대통령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지도자가 나타나면 헌법 개정이 어느 방향으로 이뤄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덕룡 ‘시민이 만드는 헌법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도 ‘지금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대통령선거(대선) 구도가 짜이고 유력한 대선후보가 부각되면 개헌이 어려워진다. 더 늦기 전에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국민 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행 헌법 하에서는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기보다 대립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임기 초 제왕처럼 군림하다 결국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무소불위 제왕적 권력을 민주적으로 나누는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승자독식구조가 만든 불통정치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새누리당 정진석(왼쪽에서 두 번째) 원내대표가 11월 16일 대한민국살리기포럼 주최로 열린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 것인가, 개헌합시다’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왼쪽)[뉴스1]. 정세균 국회의장이 10월 28일 경기 수원시 호텔캐슬에서 열린 지방분권개헌 500인 원탁토론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자료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최고 지지율이 83%에 달했다. 그러나 임기 말 아들 현철 씨가 연루된 한보 비리와 외환위기 등이 겹치면서 6%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임기 말 각종 측근 비리에 연루돼 식물 대통령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첫 과반 득표(51.6%) 대통령으로 힘 있게 출발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임기 4년 차인 올해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지지율이 역대 정권 최저인 5%(한국갤럽 11월 8~10일 조사, 11일 발표)까지 추락한 상태다. 다음 정부에서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대 국회 시절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이 구성한 ‘헌법개정자문위원회’에서 제출한 헌법개정안의 화두도 ‘분권’이었다.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 당시 헌법개정자문위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안보·통일 등 외치를 맡고, 국회(양원제 국회 중 하원)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국내 정치를 맡는 통치체제를 설계했다. 이 개헌안에는 또 현행 5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바꾸고, 대통령이 초당적·중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당적 이탈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18대 국회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 역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통해 이원집정부제안과 정·부통령 4년 중임제안 등 2개의 개헌안을 제출받은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정부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 대통령은 4월 26일 45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기가 막혀 마음이 아프다”며 “내가 국민의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통령까지 하려 했고, 열심히 밤잠 안 자고 이렇게 고민해서 왔는데 대통령 돼도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밝혀지는 사실에 따르면 당시 박 대통령과 그의 핵심 측근들은 재벌 등을 상대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선조직의 힘에 비하면 정작 공식적인 정치의 장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박 대통령은 초대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아들의 병역면제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하는 바람에 내각도 구성하지 못한 채 임기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정부가 제안한 각종 법안과 정책이 번번이 국회의 벽에 막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10월 27일 국가미래연구원 등이 주최한 ‘국가운영체제와 개헌’ 토론회에서 “정치는 여야 간 파트너십을 통해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실종되고 여야가 사생결단의 대결 정치를 하는 이유는 승자독식의 권력구조 때문”이라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니 ‘상대방이 망해야 나에게 기회가 온다’는 생각에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진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각종 ‘어두운 힘’을 통해 권력을 행사할 유인을 만든다.

반면 시민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력으로 흔들림 없이 국정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다 실망하고, 다음 선거 때가 되면 또 다른 ‘영웅’을 찾아나서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미국사 산책 10’에서 ‘제왕적 대통령론은 대통령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는 대중의 영웅 숭배주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 역시 저서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을, 또 다른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이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성공하는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또 이를 장악한 특정인이나 집단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썼다.



개헌 골든타임 올해냐, 내년이냐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10월 27일 국가미래연구원 주최로 열린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다-국가운영체제와 개헌’ 토론회에서 개헌 필요성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이준일 교수는 “많은 분이 내각제는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인 정치체제, 대통령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정치체제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우리 헌정에서 유일하게 내각제를 택했던 제2공화국 당시 정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이 성숙했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민 선택에 따라 권력을 나눠 갖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게 훨씬 민주적이며, 심지어 효율적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학계와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다양한 권력구조를 담은 개헌안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그 테이블을 언제 차릴 것이냐다. 헌법재판연구원장 등을 지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드러난 내용만 봐도 대통령이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짓밟고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머잖아 검찰 수사를 통해 범죄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처럼 오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과정을 진행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허 석좌교수는 “1987년 ‘6월 혁명’ 당시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와 ‘장기집권을 허용하지 않겠다’ 두 가지였다. 이를 관철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다른 부분에서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 특히 권력의 견제와 균형 장치가 미흡하다. 이번에 헌법을 고치게 되면 좀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검토를 통해 오래도록 규범력을 유지할 수 있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차기 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는 “현행 헌법 하에서 차기 대통령을 뽑으면 또 한 번 불행한 역사가 반복된다. 이를 피하려면 지금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해 차기 지도자는 새로운 헌법 아래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1987년 개헌 약속을 통해 정국을 수습했고, 재임 중 헌법을 개정해 12월 차기 대선을 치른 뒤 이듬해 퇴임했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현재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할 동력은 충분히 마련돼 있다. 현행 헌법상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국회의원 재적(300명) 과반수(151명) 동의가,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할 때는 재적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백재현,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등이 간사를 맡은 ‘20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회원 수가 이미 200명을 넘긴 상태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6월 16일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강력한 개헌 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던 개헌 논의가 10월 24일 박 대통령의 개헌 추진 발언과 잇달아 터진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일 뿐이다.

이에 대해 강력한 개헌론자인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는 박 대통령의 개인적 잘못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구조가 맞물려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개헌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개헌 논의는 정치적 흥정 대상이 되고 정략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다. 대통령 퇴진 문제를 매듭지은 뒤 다시 개헌을 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한국정치학회장)도 “현행 헌법은 5·16 쿠데타와 뒤이은 군정 시기에 기초된 1963년 헌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권력구조 등 여러 부분에서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이번 위기를 극복한 뒤 이를 계기 삼아 새로운 시스템을 찾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혼용) 때문에 세상이 암흑에 뒤덮인 듯 어지럽다(무도)’는 뜻이다. 11개월 전 지면에 등장한 이 말이 요즘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다시 시민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지도자 한 명의 잘잘못에 따라 국정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은 개선해야 한다는 데 각계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1987년 군부정치를 종식한 ‘시민의 힘’은 헌법 개정을 통해 시민혁명으로 완성됐다. 2016년의 촛불이 또 다른 민주주의 시대를 열 수 있을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

‘촛불혁명’의 마무리는 개헌?

1987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민주화시위에서 시민들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동아일보DB]

“우리는 이제 제국의 신민이 아니고 민주공화국의 자유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제왕이 아니고 당당히 우리 국민입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이동녕 임시의정원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 헌법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법은 예외 없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명문으로 밝히고 있다. 헌법 제1조 1항이 바로 이 내용이다. 뒤를 잇는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헌헌법에서 2조로 독립해 있던 것을 62년 5차 개헌 때 1조 안에 포함한 것이다.

채 70년이 안 되는 헌정사에서 우리 헌법은 지금까지 모두 9차례 개정됐다. 대부분 집권자가 임기 연장 등 정략적인 목적으로 헌법을 고쳐 썼다. 하지만 1987년 9차 개헌은 성격이 다르다. 그해 발생한 박종철, 이한열 군 사망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민주화시위가 벌어지면서 대통령 간선투표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힘을 잃었다. 이후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대통령 직선제, 단임제 등을 담은 헌법개정안이 마련됐다. 이 새로운 헌법은 그해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93.1% 찬성으로 가결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2016년은 1987년 이후 약 30년 만에 다시 시민이 헌법 개정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해다. 그동안은 정치권이 헌법 개정 논의를 이끌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이뤄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한 사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중이던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개헌을 추진하는 등 정부마다 행정부가 주도하는 개헌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헌 시도는 매번 정략적인 이유로 무산되곤 했다.






주간동아 2016.11.23 1064호 (p30~33)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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