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의원 밥값은 이렇게 하는 거야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단병호 의원 … 재벌에 쓴소리·환경 PCBS 문제로 홈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8-11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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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밥값은 이렇게 하는 거야

    ‘제도권 인사’가 된 ‘투사’ 단병호 의원.

    1980년대 초 서울 도봉구의 A건설 공장, ‘노동자 단병호’는 고약한 가루가 날리는 작업장에서 하루 12시간씩 고되게 일해야 했다.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10만원을 들고 상경해 둥지를 튼 공장은 일하다 다쳐도 보상조차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나는 ‘생지옥’이었다. 군대식 노무관리에 치를 떨고, 비인간적 노동 환경을 몸으로 깨치며 그는 투사가 되어갔다.

    근로기준법 등 14건 법안 대표발의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그의 이름 앞엔 ‘투사’란 말이 늘 따라붙었다. 그는 늘 ‘교도소 담 위를 걸었다’. 구속과 수배 생활만 8년 5개월. 붉은 머리띠와 격한 구호는 ‘투사 단병호’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국회에 들어온 지 1년 남짓.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듣지 않고도, 벌써부터 그는 ‘제도권 인사’가 되어 있었다. ‘제도권 인사 단병호’의 일일(日日)은 ‘이게 바로 정치’라고 깨치게 만든다.

    “부조리를 보았을 때 그것에 맞서서 해결해갈 것이냐, 물러설 것이냐의 선택에서 전자를 골라 대항하고 맞섰다면 투사다. 투사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내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투사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직 예측키 어렵다. 다만 국회의원의 가장 큰 소임은 입법과 국정 감시다. 법과 제도를 통해 사안 사안 개선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6월9일 승용차에 동승한 기자에게 국회의원으로서의 초심을 이렇게 피력했다.

    그리고 그는 상임위로 환경노동위원회를 골랐다면서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고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환경 문제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이제 막 공부를 시작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또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실망이 많았다. 보수정당은 민생을 위한 정책을 펴자고 호소하더니 당리당략만 따지고 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금배지를 단 뒤 변했다는 음해는 이따금씩 들려왔다. 민생에 귀를 닫은 다른 의원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일을 했다. 근로기준법개정안, 노동조합법개정안 등 14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보수정당의 반대로 본회의를 통과하지는 못했으되 ‘견제구’ 구실은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법과 제도를 통해 하나씩 개선해나가겠다는 다짐을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으나, 버리지는 않은 것이다.

    더하여 그는 다짐대로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키 위해 국회에 파견 나온 영원한 위원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런 그의 바람대로 ‘현장의 동지’들은 문턱이 낮아진 국회의원회관을 제집 드나들 듯 찾았고, 그 역시 전국 방방곡곡의 현장에서 바닥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지역구 의원들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역구를 누비는 것과 비교키 힘든 정성이다.

    의원 밥값은 이렇게 하는 거야

    2003년 11월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단병호 위원장(오른쪽에서

    그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국가 대표 기업-삼성-을 호되게 공격하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 중 하나다. 무노조 방침을 고수하는 삼성이 돈으로 노동자를 회유해 노조를 탈퇴시켰다는 의혹을 국회에서 제기하기도 했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라면 노조에 대한 관점도 선진 기업들 수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라고 한다. 슬그머니 친(親)재벌 인사로 옷을 갈아입는 노동계 출신 인사는 부지기수로 많다. 기업을 보는 시각이 옳건 그르건,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여름 들머리에 막 공부를 시작했다는 환경 문제에서 최근 홈런을 터뜨렸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단 의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떨어지는 감을 먹으려는 게 아니라, ‘거리’를 찾아 읽고 ‘이슈’를 수소문한다”고 평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에 한국에서는 2008년께 죽음을 부르는 화합물 PCBs(폴리염화비페닐)가 대부분 사라질 전망이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PCBs와 관련된 단 의원의 문제 제기와 사후 대처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PCBs는 미국·일본·대만·벨기에 등에서 괴질을 일으켜 인류에게 재앙을 일으킨 화합물(주간동아 491호, ‘한국전력, 치명적 위험물질 PCBs 알면서 불법 유통’ 기사 참조)로 잠자던 ‘PCBs의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바로 그다. 그는 79년부터 사용이 규제된 PCBs가 한국전력, 군(軍), 철도, 지하철, 학교, 병원 등의 변압기에 잔존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한국전력이 전봇대에 설치했다가 철거한 폐변압기에 대한 오염실태를 조사했다.

    의원 밥값은 이렇게 하는 거야

    민주노동당의 조촐한 오전 의원총회 모습.

    실태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10대의 표본 중 8대에서 PCBs가 검출된 것이다. 환경부 문건을 입수해 PCBs의 위험성과 실태 등을 공개한 ‘주간동아’ 보도를 비롯해 신문과 방송에서 관련 내용을 잇따라 전하면서 ‘PCBs’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PCBs를 불법으로 유통시켜온 한국전력에 비상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한국전력은 PCBs 유통을 중단하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의원 소임은 입법과 국정 감시”

    나름대로 PCBs 근절을 위해 노력해온 환경부도 좋은 우군을 만났다는 반응이다. 여론을 등에 업으면서 산업자원부와 ‘공룡’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눈치를 덜 봐도 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뻥뻥 때려주니 우리가 얘기할 때와는 파괴력이 다르더라”는 게 환경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단 의원처럼 국회에서 특정 이슈에 천착해 가시적인 결과까지 만들어내는 경우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면서 “단 의원과 경쟁, 협조하면서 입법까지 갈 것이다. 환경부로선 단 의원이 고맙다”고 덧붙였다.



    홈런을 터뜨린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PCBs에 노출된 폐변압기의 절연유가 재활용돼 산업시설에서 절삭유로 쓰인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PCBs가 함유된 절연유로 만든 절삭유를 쓰는 공장 노동자들이 PCBs에 노출되는 건 또 다른 큰 문제다.

    단 의원은 다시 추적에 나서 민간 변압기의 폐절연유와 폐절연유가 포함된 폐유를 재활용해 시중에 유통된 절삭유의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는 7월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중의 절삭류에서 PCBs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자료를 받아’ 지적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 추적과 직접 실험을 통해 공장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절삭유의 위험성을 검증해낸 것이다. 또한 한국전력의 폐변압기뿐 아니라 아파트·상가 등에서 사용되는 민간 변압기에도 PCBs가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힘으로써 변압기의 PCBs 오염실태가 공공 및 민간 부문 전반에 걸친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로 인해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까지 나서 절삭유의 PCBs 오염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는 PCBs를 비롯한 POPs(잔류성유기오염물질)를 근절하기 위해 특별법 입법에까지 나설 요량이다. 환경부도 특별법에 적극적이다. 8월 11, 18일, 25일 국회에선 POPs 관련 세미나가 열린다. 끝으로 9월1일 특별법안을 검토하는 토론회를 거친 뒤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환경부가 제출한 법안과 함께 논의될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의원의 ‘본업’보다는 ‘정당인 활동’에 더 바쁜 이들이 되새겨야 할 ‘국회의원 단병호’의 ‘교과서적인’ 말이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소임은 입법과 국정 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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