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2001.09.06

고3 교실은 연중무휴 ‘수시모집 대란’

수업 파행·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기대 밖… 학부모·교사들 “1학기 모집은 득보다 실”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15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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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교실은 연중무휴 ‘수시모집 대란’
    2002년 입시는 이미 올 봄(5월20일~6월20일) 65개 대학이 1학기 수시모집에서 1만118명을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전국 171개 4년제 대학이 순차적으로 2학기 수시모집에 들어간다. 8월 말부터 12월까지 계속되는 2차 수시모집 선발인원은 9만9923명. 전체 모집인원의 25.7%에 이른다. 수시가 끝나면 곧바로 정시모집으로 이어지는 연중 입시체제다.

    그러나 2002년 대학입시가 처음 목적대로 학생들을 입시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차 수시모집 결과가 발표된 후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에는 시행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러 의견들이 게시되었다. 그 중 한 고3 학부모가 “답변을 듣고 싶다”며 올린 질문은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조기 입시(1,2차 수시모집)를 하는 장점이 무엇인가요?

    2.일선 학교에서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학원 등을 수강하면 학력을 인정해 준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학부모의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할 텐데 그 점에 대한 검토는 하셨는지요?

    3.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이 외국어 학원 등에 다니면 고교 3학년 교육과정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텐데….



    4.저는 딸애가 고3 과정을 학교에서 다 마쳤으면 합니다. 아무리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도 어쨌든 고교3년이 학창시절 중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현행 수시모집은 한마디로 합격해도 고민, 안해도 고민이다. 무시험 전형 첫해를 맞아 지금까지 수시모집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기본적인 교육과정이라도 순조롭게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학부모의 말대로 현행 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고3 교실의 파행적 수업운영에 있다. 두 차례 수시모집에서 얼마든지 복수지원이 가능하고, 정시모집(가나다 3개 군)은 최대 세 군데까지 지원할 수 있는 등 올해부터 실시한 연중 입시체제에 교사와 학생 모두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다. 고3 교실은 1년 내내 진학지도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게다가 수학능력시험 결과에 관계없이 일찌감치 1학기 수시모집에서 합격증을 받아 쥔 학생들에게 학습의욕이 있을 리 없다. 1학기 수시모집의 경우 고2 때까지의 내신성적만 반영하기 때문에 사실상 고3 수업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생들은 단지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수능시험이 끝날 때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는데, 이들과 올 11월에 있을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수시 합격생이 대학과 고등학교 중 어느 쪽 소속인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졸업을 안했으니 당연히 고등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학과, 우수학생을 선점하고 등록금까지 받았으면 대학이 교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등학교 사이에서 이들은 갈 곳이 없다. 몇몇 대학에서 리더십 캠프나 독서지도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일회성 행사로 끝난다.

    합격생은 공부 시간 내내 잠을 자거나, 교과서 대신 버젓이 토익·토플책을 펴놓고, 운전면허시험공부를 해도 일선 교사들은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으로 생활지도를 대신하고 있다.

    “학급은 담임교사가 이끄는 게 아니라 몇몇 아이들이 주도해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1차 수시 합격자는 학급 임원인 경우가 많아요. 만약 이들이 등교하지 않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을 하면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 분위기도 흐트러지지요. 그나마 1학기 수시모집 합격자는 학급당 많아야 한두 명에 지나지 않지만 2학기 선발이 끝나고 나면 교과지도에 더 큰 혼란이 예상됩니다.”

    고3 교실은 연중무휴 ‘수시모집 대란’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구로고 천희완 교사(사회과)는 5~6월중 시행하는 1차 수시모집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한다. 담임 교사가 학생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인 학년 초에 이루어짐으로써 추천서 작성 등에 어려움을 겪는데다, 만약 몇몇 학생이 합격하더라도 나머지 학생의 학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등 후유증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략적으로도 각종 대회 입상자나 특정과목 성적 우수자, 학교장 추천 등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능 성적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일반성적 우수자는 수시보다 정시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조언이다.

    “수능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아이인데 1학기부터 수시모집에 응시한다고 우왕좌왕하다 보면 정작 수능 준비에 소홀해 양쪽 다 놓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시는 자기소개서, 추천서, 심층 면접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지요. 교사 입장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이 학교 저 학교 수시에 응시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천희완). 서울 구정고의 김진성 교장도 “수시모집은 학교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다. 특히 1차 수시의 경우 재수생이나 특기생 등 아주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시모집 시기 조정과 함께 지적된 사항이 내신위주 평가로 인한 불공정성 문제다. 수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내신과 심층면접. 그러나 내신의 경우 학교마다 학력 차가 큰데다 성적 부풀리기까지 성행하고 있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차 수시 결과가 발표된 후 학생들 사이에서 “모의고사 300점도 안 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유리한 학교이고 전교 회장 경력 때문에 명문대학에 붙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평가 자체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대학이 수시모집 합격자라도 최소한 몇 등급(대개 2등급) 이상의 수능 성적을 요구하는, 조건부 입학 즉 ‘수능등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지막까지 수능 성적이 당락의 변수가 되기 때문에 자칫 조기 선발의 취지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또 새 대학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고민 중 하나가 그토록 기대하던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비디오 카메라를 동원한 심층면접 대비 과외가 등장했고, 시사상식을 브리핑해 주는 각종 학습지, 장당 10여 만 원씩 하는 자기소개서 대행업 등 신종 과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의 김명신 공동회장은 “잦은 입시제도 변경이 오히려 수험생들에게 신종과외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과외를 하고 안하고는 옆에 길 안내자를 앉혀 놓고 지름길·샛길까지 표시된 새로운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사람과 옛날 지도만 갖고 목적지를 찾는 사람이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후자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만 그만큼 시간이 걸리니까 게임이 안 되죠. 돈 드는 입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종합해 지난 8월8일 ‘1학기 수시모집 평가서’를 발표했다. 경희대 고려대 동덕여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중앙대 한양대의 1학기 수시모집에 대한 평가를 보면, 먼저 △1차 수시를 없애고 2차와 통합해야 하며 △내신성적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발방법 도입이 필요하고 △심층면접의 경우 출제 내용과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변별력이 의심스럽고, 시사문제에 치우쳐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시민모임측은 “연 2회 이상 수능시험을 실시하자”는 내용의 청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에게 2002년 대학입시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현재 고3 수험생들이 중학 3학년이던 98년, ‘교육비전 2002’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교육개혁의 중심축은 수행평가와 무시험 전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시험 전형 첫해인 2002년 대학입시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교육개혁을 반드시 성취하겠다. 대입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고 청소년들을 과외에서 해방시키겠다”고 한 공약을 평가 받는 자리기도 하다. 새 입시제도가 시행 첫해부터 조령모개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교육현장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과감한 수정과 보완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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