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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산아제한인가 출산장려인가

출산, 이제는 선택의 문제

국가 가족계획보다 부부의 의지 크게 작용… 서넛 이상이거나 아예 없거나 ‘양극화’

출산, 이제는 선택의 문제

출산, 이제는 선택의 문제
10년, 아니 5년 전만 해도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부모와 아들, 딸 두 자녀였다. 셋이나 넷씩 아이를 낳은 가정에는 어김없이 호기심어린 눈초리가 따랐다. 자녀가 넷쯤 되면 심지어 ‘야만인’이라는 비난마저 감수해야만 했다. 반대로 자녀가 없는 경우에도 호기심의 눈길은 멈추지 않았다.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혹시 아이가 안 생기는 건 아닐까.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나 등등.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세기가 바뀌어서일까. 자녀의 숫자 또는 자녀가 있거나 없는 것은 더 이상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국가적인 출산율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이와 상관없이 서넛의 자녀를 낳거나 늦둥이를 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하나에 만족하거나 아예 자녀 없이 사는 가정도 드물지 않다.

세금 잘 내는 변호사로 유명한 손광운씨(42)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각기 14·13·8·5세인 네 명의 자녀들이 그에게는 행복의 근원이다. 아이들로 북적대는 거실에서 사는 재미를 실감한다는 그는 뒤늦게 셋째를 낳으면서 육아의 참맛에 눈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넷째까지 낳기로 부부 간 합의를 보았다. 97년 막내딸을 낳았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고 한다.

아이가 많다 보니 그에 따른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휴가를 위해 여행사에 예약할 때의 일이다. 여행사 직원은 ‘주렁주렁’ 딸린 아이들을 보고 40대 초반의 손변호사를 손자손녀를 거느린 할아버지로 착각하기도 했다. 아직은 학원에 보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비가 들지 않지만 경제적 부담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손변호사의 주위에는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40, 50대의 동료들 중에는 그의 가정을 보고 늦둥이를 낳기 위해 애쓰는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평소 ‘자식이 국력’이라고 생각한다는 손변호사는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서넛의 자녀 정도는 충분히 낳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의 일에 일희일비하다 보니 한국의 부모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대한 보조자 역할에 만족한다면 그처럼 힘들지는 않겠지요. 물론 아이가 많은 부모는 남들보다 아끼고 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출산, 이제는 선택의 문제
손변호사처럼 서넛 이상의 자녀를 두거나 늦둥이를 낳은 가정의 수는 예상외로 많다. 은혜산부인과의 장부용(48) 원장은 세 자녀를 키운 후 마흔둘에 늦둥이를 낳았다. 뜻밖의 임신으로 생긴 아이지만 느지막하게 본 막내딸을 키우는 재미는 위의 세 아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장원장은 원치 않은 아이라 하더라도 낳은 후에 후회하는 경우는 한번도 못 보았다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후에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와는 반대로 자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기관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한종훈씨(41)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 하나만을 두었다. 전업주부인 아내는 아이를 더 낳고 싶어했지만 그는 복잡한 세상에 자녀를 출산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장남인 한씨는 손자를 보고 싶다는 부모의 압력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자식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살기는 점점 힘들어지는데 자식까지 많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노후를 의지할 것도 아닌데 아들 필요하다는 건 옛말인 것 같습니다.” 만약 과거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는 자녀를 하나 이상은 갖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일하는 여성은 또 다른 이유로 출산을 기피한다. 오는 11월1일부터 시행하는 모성보호법에 따라 석 달로 늘어난 출산휴가를 신청할 때부터 직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다 육아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 출산을 원치 않는 맞벌이 부부들을 일컫는 ‘싱커스족’(Thinkers)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싱커스족이란 맞벌이(Two Healthy Incomes)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고(No Kids), 일찍 정년퇴직(Early Retirement)해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일간지 기자인 이수진씨(32)는 결혼 5년차. 그러나 그녀는 아직 2세를 가질 계획이 없다. 앞으로도 되도록 낳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남편 역시 이씨의 계획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상태다. “주위에서 능력 있는 친구들이 육아문제 때문에 주저앉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회사에서 승진을 눈앞에 두었다가 육아 때문에 계약직으로 돌아서거나 아예 그만두는 경우죠. 개인적으로도 안타깝지만 이거야말로 국가적인 낭비라고 봅니다. 남자나 여자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십분 발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자녀에게 쏟아야 하는 희생과 부담을 자신과 남편에게 쏟을 작정이다.

신세대들은 자녀를 노후를 위한 ‘보험’이나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 역시 많이 엷어진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은 더 이상 부부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아이를 몇이나 낳을 것인지, 또는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매우 개인적인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국가의 산아제한이나 출산장려정책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오히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육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하는 여성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지원 없이 아이를 키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는 자녀의 수를 제한하거나 거꾸로 많이 낳으라는 식으로 출산을 강요하기보다는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을 위해 육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출산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신세대 부부들은 일방적인 가족계획보다 한 아이라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8.02 295호 (p64~65)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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