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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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대권주자 최고위원을 지자체장으로?

대선 후보 과열 경선 사전 차단 고육책 …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 저울질 한창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입력2005-01-26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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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상반기 중 실시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을 조정하는 문제가 정치권의 현안이 되는 가운데 여권 핵심부가 민주당의 대권 예비주자 및 최고위원들을 수도권 자치단체장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은 당의 최고위원이나 대권 예비주자들 가운데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청와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현재 각개약진하는 최고위원들을 내세워 지방선거를 치름과 동시에 자칫 과열 양상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예비주자들의 대선후보 경선 다툼을 사전에 진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지방선거 최고위원 기용론은 지방선거 후보 및 대선 후보 조기 가시화론과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지방선거 준비에도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는 데 반해 민주당은 ‘레임덕 방지론’에 묶여 이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권의 위기감이 깊어지는 것. 지난 5월2일 김중권 대표가 “후보 조기 가시화와 대통령 레임덕과는 관계가 없다”는 당내 일부의 시각을 말한 것도 이같은 위기감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 자체가 사실상의 대통령 선거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권 예비주자들의 정리 문제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김대표가 후보 조기 가시화라는 화두를 꺼낸 것은 어느 정도 김대중 대통령과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남궁진 대통령 정무수석이 지난 5월3일 “대선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해야 유리하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얘기”라고 진화에 나섰음에도, 당내에서는 조기 가시화의 불씨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는 12월 말쯤 김대통령이 구체적인 대선후보 선출 방법과 시기를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지방선거에서 지면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도 한나당의 대세론을 꺾기 힘들 것”이라며 “선거를 치른 사람은 지방선거 이전에 대선후보를 가시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민주당의 지방선거 준비가 대통령 레임덕 방지론이나 후보 조기 가시화론을 둘러싼 논쟁에 부딪쳐 차질을 빚는 반면, 한나라당의 준비는 한발 앞서 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의 수도권 지방선거 후보는 대충 압축된 상태. 아직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경기지사 후보로 손학규 의원, 서울시장 후보로는 홍사덕 국회부의장,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최병렬 서청원 의원 등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손학규 의원의 경우 경기지사 후보로 거의 굳어진 느낌이다. 이회창 총재와 손의원 양쪽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는 부인에도 당내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손의원의 경기지사 후보 내정설에 기울어 있다. 한때 이회창 체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던 손의원은 최근 “개헌론에 반대한다” “정-부통령제에 반대하며 4년 중임제도 반드시 도입해야 할 근거가 빈약하다”며 이총재 편으로 돌아섰다. 또한 “과거 민주화 경력에 따라붙던 훈장을 겸허하게 내려놓아야 한다”고 민주화 개혁세력과의 의도적인 거리두기에 들어갔다. 이런 발언들이 학계와 정계인사 100여 명이 참여한 개인연구소를 서울 충정로에 연 시점에 맞춰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서울시장을 차차기 대권 도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인사들이 많기 때문. 최근 한나라당 비주류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서울 시장 후보를 낙점받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총재를 압박하는 요인도 제각기 다르다. 김덕룡 의원은 비주류 수장이라는 점이, 이부영 의원은 당내 진보세력의 구심점이라는 점이, 서청원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최병렬 의원은 서울시장 출신에 당내 보수 중진세력의 기둥이라는 사실이 서울시장 선택의 매우 비중 있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홍사덕 부의장의 서울시장 후보 내정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김덕룡 의원이 끝까지 목소리를 높인다면 비주류 끌어안기 차원에서 이총재가 김의원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맡길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당내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공개적인 도전 의사를 표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경선 시기가 다가올수록 대권 도전과 서울시장 낙점의 실리 챙기기 사이에서 치열한 신경전과 교통정리가 진행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경우는 어떨까. 2002년 대선의 분수령이라는 중요성이 있음에도 민주당에서는 지방선거에 대한 청와대의 복심(腹心)이 드러나지 않아 뜬소문 차원의 말만 돌아다녔다. 따라서 최고위원의 수도권 지자체장 후보 기용설은 지방선거에 대한 여권 핵심의 구체적인 구상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에 대항마로 나설 민주당의 경기지사 후보는 손의원과 마찬가지로 경기 출신의 최고위원이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의 경기지사 후보설이 매우 유력하게 나돈 적도 있다. 지역구도 경기 남부(안산)인데다, 빠른 기간에 대변인을 거쳐 과기부 장관까지 승승장구한 것은 경기지사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몸집을 키우려는 여권 핵심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관측이 나왔던 것. 그러나 경기도민 사이에 차기 지사는 경기 출신 인사여야 한다는 여론이 폭 넓게 자리잡고 있어 충북 출신인 김장관은 경기도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당의 유력한 자체 분석이다. 특히 인구 분포로 보았을 때 경기 북부가 아닌 남부 출신이어야 선거전에 유리하다는 것.

    김근태 최고위원의 경기지사 기용설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지역구는 서울이지만 경기도 부천 출신으로, 손의원과 색깔이 비슷하면서도 개혁성과 중량감에서 훨씬 앞서간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인이라는 것. 물론 대권 예비주자의 과열 분위기를 축소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대권 도전을 공식 발표한 김최고위원 진영에서는 펄쩍 뛸 만한 소리다. 한 측근 인사는 “대권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는데 무슨 뜬금 없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서울시장 후보도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정대철 최고위원과 노무현 고문, 이해찬 정책위의장의 발탁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대철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출마에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최고위원이 이무영 경찰청장 경질을 주장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언행을 보인 이면에는 동교동계 한 핵심인사에게서 “당신밖에 더 있느냐”는 ‘격려성 발언’을 듣고 약간 앞서간 측면이 적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 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최고위원에 이어 정책위의장으로 전격 발탁된 과정에서 동교동계 구주류와 김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한 이해찬 의장 또한 서울시장 출마에 의욕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기용 여부에 대한 청와대의 기류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물론 서울시장 후보는 차기 대선의 향방은 물론 차차기 대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심사숙고는 한참 더 지속될 전망이다. 고건 현 시장의 재기용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의 거취문제도 미묘한 사안이다. 한실장은 지난번 선거에서도 뜻을 세웠지만 김대통령의 만류로 꿈을 접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올 가을쯤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선거에 대비하는 계획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기용은 한실장 후임을 염두에 두었다는 얘기가 있다.

    최고위원을 위시한 예비주자들을 지방선거에 내세우려는 여권 핵심부의 이같은 기류가 확정될 경우 해당 인사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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