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2001.04.17

3D 애니메이션 ‘결정판’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입력2005-02-28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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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애니메이션 ‘결정판’
    아프리카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가 국내 극장가에 상영되면서 이름이 알려진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셸 오슬로.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친숙한 관객들에게 그의 그림이나 화법은 무척 낯설게 느껴졌을 테지만, 그의 작품은 장면장면이 한폭의 그림 같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눈과 귀를 통해 전해오는 이국적인 풍광, 아프리카라는 배경이 지닌 원시성과 자연의 싱그러움, 그 속에 배어 있는 원초적 생명력을 재현해 낸 솜씨도 놀라웠지만, 애니메이션의 주요 캐릭터들이 순수 아프리카 혈통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는 하얀 피부의 앵글로색슨족과 귀여운 동물들만 등장해 오지 않았던가.

    3D 애니메이션 ‘결정판’
    그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5월5일 개봉 예정)는 우리가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란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란 사물의 외곽선, 즉 실루엣을 이용해 움직임을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빛이 투과되는 배경 위에 관절 부위를 움직일 수 있는 인형들을 올려놓고, 조금씩 움직임을 바꾸어가며 한 프레임씩 촬영해 이를 영사함으로써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흑백의 콘트라스트만 존재하는 단조롭고 심심한 영화가 아닐까 걱정하던 사람들은 첫 장면에서부터 보석처럼 빛나는 영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눈부시도록 우아한 배경 칼라와 정교한 촬영,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내러티브, 시종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상황 설정이 다른 애니메이션과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만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제작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사물을 조명과 실루엣으로만 표현하기 때문에 다양한 빛의 색감과 섬세한 라인의 표현이 가능하고, 사물이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부드러운 동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3D 애니메이션 ‘결정판’
    요즘 유행하는 3D 입체 애니메이션이라고 이보다 더 화려할 순 없을 듯. 일본식 정자와 산세의 섬세함, 이집트 왕관과 의복의 화려함, 작열하는 태양과 노을이 물든 하늘빛 등이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는 풍부한 입체감과 색채감으로 관객의 입을 벌어지게 한다. 그림자연극을 볼 때와 같은 신비감, 선의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우아함과 정교함이 한없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에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감독은 풍요로운 상상력으로 사랑에 관한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을 구슬목걸이처럼 차근차근 꿰어나가면서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6개의 재미있는 단편들을 보여준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이긴 용기와 정성, 그리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고통과 치유에 대한 조언을 들려준다. 한편 한편의 우화 속에는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인간에 대한 애정, 낙관적 세계관이 골고루 녹아 있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은 ‘화양연화’ ‘빌리 엘리어트’ ‘어둠속의 댄서’ 같은 영화들을 제쳐두고 이 영화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다.

    ‘이 신선한 영화를 보고 나면 전형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름쯤 지난 빵처럼 식상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외국 평론가의 말이 그리 과장된 것이 아님을 영화를 본 후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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