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흔들고 보자” … 야당도 리더십 위기

‘국정 동반’ 책임 무시 대권염두 정치 공세 … 비판 넘어서는 비전 제시 없어

  • 입력2005-06-01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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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조건 없는 국회 정상화를 선언한 11월24일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공적자금 동의안 처리를 놓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거의 완전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의 ‘선처’만을 기대했던 모습에 대한 소회인 듯했다. 그의 말인즉 공적자금 동의안 처리에 대한 최근 여야의 공방이 지난 96년 노동관련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결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국내 경제 회생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연내 노동관계법 처리를 분명히 했지만,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는 △노사합의에 의한 법개정 △국제적 기준의 노동자율성 보장 △철저한 여론 수렴 등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노동관계법 처리에 반대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12월26일 꼭두새벽에 노동관계법을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했다. 국민회의 등은 당연히 “원천 무효”를 외쳤고 정국은 파행을 거듭했다.

    그로부터 일년 뒤인 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 아래 98년 1월 임시국회에서 노동법 개정 등 관련 입법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비록 환란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이 김 당선자에게 정리해고 확대의 명분을 주었지만, 1년 전 노동관계법 처리를 막았던 것이 ‘잘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한국 경제가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 흐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 처리가 꼭 해야 할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처리 또한 시급한 사안이었던 것.

    여야는 11월24일 총무회담을 갖고 공적자금 동의안을 공적자금 국정조사계획서 등과 함께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회창 총재의 ‘조건 없는 국회 등원’ 천명에 따른 후속 조치다. 본인 스스로의 입으로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적자금 추가 조성안 처리 등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이회창 총재가 자신의 원칙을 깨고 ‘대승적 자세’를 견지한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행동’으로 비쳤다.



    물론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한사코 공적자금 동의안 처리에 반대했더라도 그 이후의 해법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론의 비난은 자연히 한나라당과 이총재에게 쏠렸을 것이고, ‘협량’(狹量)이라는 대권주자로서의 이총재 이미지 또한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다시 말해 현 수순에서는 공적자금 처리에 동의하고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이총재의 대권 전략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에 24일 기자회견이 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은 최근 동방금고 ‘정현준 게이트’와 여당의 탄핵안 상정 무력 저지 등에 대한 공세를 통해 얻은 정국 주도권을 공적자금 추가투입 동의로 멋있게 ‘끝내기’하고, 이를 내년의 대권 레이스에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수순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제 2의 정현준 게이트’가 될지 모를 열린금고와 한스종금의 ‘진승현 게이트’마저 불거지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또 하나의 호재를 만난 셈.

    여당이 정국 주도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야당에 끌려가는 최근 일련의 정국 상황들은 묘하게도 임기 말의 김영삼(YS) 정권과 닮아 있다. 다만 그 시기가 YS 정권 때보다 일년 정도 앞당겨졌다는 사실이 다를 뿐. YS 퇴임 일년 여를 앞둔 지난 97년 1월. 당시 김대중 총재는 한보사태를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핵심부의 비호와 영향력 없이는 불가능한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면서 “김대통령(YS)이 책임질 일”이라고 몰아붙였다.

    올 일년 내내 계속된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는 YS 정권에 대한 야당 시절 김대중 총재의 공세와 꼭 닮아 있다. 현재의 야당으로서는 정권교체 이전의 야당 투쟁 방식만 따라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13 총선 당시 이회창 총재 역시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고 김대통령을 맹비난하며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가 있을 수도 있다”고까지 공격했다.

    당시 홍사덕 선대위원장 또한 “(증시 붕락 현상의) 치명적 원인은 김대중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북한 특수(特需) 발언 때문”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공격을 했다. 이한구 의원이 제기한 국부유출론 역시 마찬가지다.

    총선 당시 한나라당 이한구 선대위 정책위원장은 “IMF 위기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정부의 부채비율 감축 압력으로 우리 기업과 은행, 증권사 등이 헐값에 기업체를 매각할 수밖에 없어 국부가 과도하게 유출됐다” “공기업 개혁이 경영개선보다는 외자유치 홍보용으로 전락,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위원장의 이 주장은 유권자들의 막연한 애국심에 손쉽게 불을 질렀고 총선 정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그러나 국부유출론의 공세 속에서도 부산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삼성자동차의 조기매각과 조기가동을 정부에 촉구했고, 이에 대해 이위원장이나 한나라당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했다. 총선 후 삼성자동차의 해외매각이 타결되자 부산 의원들이 환영 일색인 가운데 이의원은 “삼성자동차 매각은 국부유출론과 기본이 다른 사안”이라고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당 차원의 성명이나 논평도 일절 내지 않았다. 결국 국부유출론 자체가 총선에서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내려는 정치 공세 목적의 이론이었던 것. 이런 사실은 이의원이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 있던 97년 IMF 직후 “대외신인도는 IMF와 맺은 협정을 충실히 이행할 때만 높일 수 있다” “IMF 요구를 한꺼번에 이행해야 한다”고 목청 높였던 사실을 보더라도 입증된다.

    이처럼 경제 논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왜곡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특히 경제 정책을 해석하는 데 있어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태도가 비일비재하다보니 경제 정책의 집행 과정 자체가 정치적 상황에 의해 ‘갈 지자’ 비틀걸음을 걷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회창 총재 역시 총선 당시 이한구 위원장의 말을 따라 국부유출과 국가채무 등을 언급하며 “겉으로 제법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경제구조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난 일색으로 나갔다. 이총재가 11월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현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신 관치’를 꼽은 것도 경제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한 사례다. 지난 정권 때부터 누적된 ‘시장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경제 위기를 현직 대통령의 ‘신 관치에 의한 구조조정’으로 단순화해서 몰아가는 ‘정략적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임시국회의 대표연설에서 이총재는 ‘국유화된 투신사들을 속히 경쟁 입찰로 분할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나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총재가 자신의 뚜렷한 경제관이나 비전 제시 없이 정부의 실책만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소극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처럼 ‘국정 동반 책임자’로서의 야당의 위치를 망각하고 오로지 대권만을 염두에 둔 정치공세 차원의 무분별한 경제 공세를 펼치는 것은 결국 야당 지도자의 리더십 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 설사 다음 정권을 잡는다 해도 오도된 논리에 의한 경제 위기가 그 정권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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