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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10>|박정희의 핵 개발①

한국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막아라

“동북아 불안정 야기하는 결정적 요소”로 인식…기술, 장비 접근통제 등 개발 저지 나서

한국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막아라

한국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막아라
1975년 미국은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지금까지 정보공개법을 통해 비밀 해제된 1975년의 비밀문서들을 통해 유추해보면, 주한 미대사관이 이 정보 초기 탐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다.주한 미 대사관(대사·리처드 스나이더)이 한국 정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정보 평가서를 여러 차례 워싱턴에 보냈고, 이 현지 평가를 바탕으로 워싱턴의 정보 담당자들이 이를 확인하는 증거들을 확보한 것이다.

1975년 2월 말에 이미 워싱턴은 ‘한국의 핵 개발 능력에 대한 부처간 합동 연구를 종료’한 상태였고, ‘향후 10년 안에 한국 정부가 제한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를 비롯해 CIA, 국무부, 국방부 등 각 부처의 정보 채널 및 부처간 정보 교환을 통해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이 초기 단계(initial stage)에 들어섰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KISON이 지난해 말 공개한 바 있는 미 국가안보회의의 1975년 2월28일자 한국 핵 개발 문제에 대한 2급 비밀 비망록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으며,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동북 아시아에서 결정적인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점을 확신한다. 우리의 기본 목표는 한국 정부가 핵 실험(nuclear explosive) 능력이나 운반 수단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단념시키고 억제시키는 것이다’라고 못박고 있다.

이 문서는 또한 ‘한국 정부가 민감한 기술과 장비(equipment)에 접근하는 것을 미국의 독자적 행동 및 공동 공급국들의 정책 개발을 통해 금지시킨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한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특히 펜타곤을 긴장시켰다. 더구나 같은 시점에 한국 정부는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위한 록히드사의 제트 추진 기술의 구매를 추진하고 있었다. 핵무기 운반 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한국에 대해 국무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강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펜타곤의 불만이었다.

국방부의 모톤 아브라모위츠(Morton I. Abramowitz) 부차관보는 국가안보회의의 리처드 스마이저(Richard Smyser) 앞으로 보낸 비망록(1975년 3월5일자, 2급 비밀)에서 록히드사의 기술 판매 건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국무부의 안이한 자세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 계획에 대한 CIA의 평가를 인용하고 있다.



‘한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최근의 CIA 평가는 다음과 같음.

한국은 일부 외국을 통해 추진용 생산 시설 및 기술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음. 한국은 이미 미국 회사와 이중 추진용 생산 시설(a double based propellant production facility)을 구매하기 위한 상담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보다 더 효능이 좋은 혼합식 추진체(composite propellant)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은 미국 일본 프랑스 서독 영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음.’아브라모위츠가 인용한 이 CIA 평가 내용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CIA의 공개된 문서를 접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 짤막한 평가 내용은 나름대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1975년 초 국가안보회의와 국무부, 주한 미 대사관 사이에 한국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계획을 주제로 한 미국의 대응책이 논의된 뒤, 같은 해 7월 국무부는 다섯 장짜리로 된 조치 비망록(Action Memorandum)을 작성해 포드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 앞으로 발송한다.

‘재처리 건에 대한 대한국 방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7월2일자의 이 비망록은 로버트 잉거솔 국무부 장관 대리가 발송인으로 되어 있으며, ‘민감한 정보 자료 및 방법이 포함되어 있음’이라는 경고 표시 도장이 각 문서 오른쪽 하단에 찍혀 있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재처리 시설 구입의 배경에 대해 이 조치 비망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배경:한국 정부는 프랑스로부터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바로 손에 넣게 될 소규모의 파일럿급(pilot scale) 재처리 플랜트를 구입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해 왔음.가까운 시일 안에 잠재적 (핵)확산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며, 한국의 핵무기 획득은 극도로 위험하고, 미국의 중요한 국익에 직접 손상을 입힐 수 있음. 지난 3월 백악관의 승인을 받은 한국의 핵 정책 관련 문건에서도 지적되었듯이, 비록 한국이 핵 초기 단계에 머물게 될지라도 위와 같은 결과들은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음. 미국이 핵 우산을 거두어들일 경우 한국이 핵 선택권을 행사하겠다고 한 박정희 대통령의 최근 기자회견문에서 이점은 보다 명백해졌음.

만약 한국이 직접 플루토늄을 추출하게 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거나 짧은 시간 안에 핵무기를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음. 재처리 및 플루토늄 비축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어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아주 곤란한 우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보호 수단을 제공해야 할 것임.’

미국의 정보 판단대로 한국 정부가 재처리 플랜트를 외국에서 사들여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 공정에 투입될 막대한 재원을 박정희 정권은 확보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당분간은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언젠가 필요로 하게 된다면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아시아 지역의 공동 플랜트를 통하거나, 혹은 재처리 플랜트를 보유하지 않고 공급 서비스 채널을 통해 훨씬 더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 정부가 미국 및 캐나다와 구입 협상을 벌이고 있는 발전용 원자로임. 미국산 두번째 원자로인 고리 2호를 구입하려는 한국 정부에 재정 지원을 하기 위한 요청안이 현재 의회에 계류 중인데, 수출입 은행에서 1억3200만 달러의 차관과 신용보증용 기금으로 별도의 1억1700만 달러를 제공하는 것임.

이 차관과 미제 원자로 판매가 한국 경제에 혜택이 될 것으로 보며, 우리의 비확산 목표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조종이 될 수 있을 것임. 케이시(Casey) 수출입은행장은 차관 요청안에 대한 의회 청문회를 연기하는 데 의회의 동의를 얻었음. 의회에 한국이 재처리 플랜트 보유 계획을 취소한다는 모종의 보장을 할 수 있다면 차관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임.’

문제는 한국 정부가 과연 이런 대안을 수용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가 재처리 플랜트 구매를 위해 접촉하고 있는 캐나다와 프랑스의 입장도 변수의 하나였다. 미국으로서는 한국 정부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미국 나름의 조치도 마련해야 할 입장이었다.



주간동아 2000.10.19 255호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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