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2000.10.19

대북정책 핵심 4인방은 누구?

국정원·통일부·청와대에 포진해 임동원 박재규 ‘투톱’ 뒷받침…역할·비중엔 차이

  • 입력2005-06-27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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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정책 핵심 4인방은 누구?
    남북한은 지난 50년 간의 적대감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으나, 아직 북한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교류만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만일 북한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북한을 위한 한국의 투자계획은 난항을 보일 수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9월30일자)에 실린 한반도 관련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 기사의 지적대로 남북한은 각기 방식은 다를지라도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일 조금씩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과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을 ‘투톱’으로 내세우고 있는 데 비해 김정일 위원장은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투톱’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대남관계 및 대미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김위원장이 예상을 깨고 군부 2인자인 조명록 부위원장을 북미 고위급회담(10월9∼12일) 대표로 참석케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군(軍)을 모든 방면의 전면에 내세워온 ‘선군영도’(先軍領導)에서 개방의 고삐까지를 군부에 쥐여주는 ‘선군개방’(先軍開放)의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은 남북의 획기적 관계개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부가 변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앞세워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줄 것’을 요구해왔다.

    모두 아는 바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 장관과 외교안보통일분야의 대북정책 전반을 조율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정원장을 ‘투톱’으로 내세워 남북 평화공존의 틀을 짜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도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두 사람은 각각 두 번씩 김위원장을 면담한 바 있다.

    박재규 장관은 정상회담 수행에 이어 2차 장관급회담 때 평양을 방문해 김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했다. 또 임동원 원장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비밀 방문해 김위원장을 면담하고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선언문의 ‘밑그림’을 사전 조율했다. 바로 이런 ‘물밑 역할‘ 때문에 임원장은 국정원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통령특보’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참여했다. 또 지난 추석 연휴 때는 김용순 비서가 김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답방함으로써 임동원-김용순 채널은 서울 청와대와 평양 중구역 1호청사(김정일 집무실)를 잇는 상시 핫 라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임동원-박재규 투톱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핵심 인사는 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서영교(徐永敎) 국정원 5국장-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이봉조(李鳳朝) 청와대 통일비서관이다. 이 실무 핵심 4인방에는 국정원과 통일부 그리고 청와대 인사가 고루 분포되어 있으나 이봉조 비서관이 통일부 출신임을 감안하면 국정원과 통일부가 같은 비율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맡고 있는 역할과 비중을 비교하면 이같은 양적 균형은 의미가 퇴색된다.

    다음은 추석연휴 기간에 서울에 온 김용순 특사와 관련된 일화다. 김비서의 갑작스런 서울 방문으로 주무 부처인 통일부와 국정원에 비상이 걸린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두 부처의 전직원들은 추석연휴 기간에 귀성(歸省)은커녕 김비서가 머문 4일 동안 철야를 하거나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할 정도였다. 그러나 두 부처의 직원들이 연휴기간의 강행군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달랐다. 국정원 직원들은 김비서가 김정일 위원장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사 자격으로 온 것인 만큼 그의 카운터파트인 임원장을 모시고 있는 자신들이 비상근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은근히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부 직원들은 ‘남의 잔치에 동원된’ 느낌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통일부 직원 가운데 상당수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지방에 내려갔다가 긴급 호출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하기도 했다. 하기는 장관도 (김비서의 서울 방문) 하루 전에 통보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죽하겠느냐”고 자조 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김비서의 방문 자체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안을 이유로 국정원이 정보를 독점한 탓이 크다는 볼멘소리다. 특히 통일부 직원들은 임동원 원장이 통일원차관-통일부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도 국정원의 대북정보 독점은 여전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용순 비서의 서울 체류기간 중 예정에 없던 ‘깜짝 회담’이 열린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특사의 목적은 최고지도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통 비공개-비공식으로 이뤄지는 게 관례다. 그러나 김비서는 국정원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9월14일 오전 남산타워 참관일정을 취소하고 임동원 원장과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북측에서 김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등 4명이 참석한데 반해 남측에서는 임원장과 박재규 통일부장관, 김보현 3차장 등 5명이 참석했다. 남북회담에서 대표단 숫자를 달리한 회담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통일부장관이 뒤늦게 포함된 것은 국정원이 대북업무를 독점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공개-비공개 남북회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정상회담 이전까지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이었다가 차장으로 승진한 김보현 3차장이다. 김차장은 ‘국무총리 특보’라는 직함으로 98년 베이징 쌀-비료회담부터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공개 예비접촉 등에 이르기까지 김대중 정부 들어 모든 대북접촉의 ‘막후 주역’으로 활동해 왔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김차장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임원장과 함께 평양을 비밀 방문, 김용순 비서-임동옥 통전부 제1부부장과의 4자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 의제를 사전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정상회담 때는 당시 백화원 영빈관에 설치된 우리측 평양 상황실을 관장했으며 김용순 특사의 서울 답방 때는 함께 온 임동옥 통전부 제1부부장의 카운터파트였다. 김차장의 이런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접촉 과정에서는 양영식 통일부 차관과 김영성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참사가 각각 수석대표와 단장 자격으로 회담실무 준비접촉에 나서 선발대 파견 등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합의를 이끌어냈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각각 선발대 단장과 부단장 자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 준비 실무를 관장한 두 ‘S’국장이 손인교 남북대화사무국장과 서영교 통일부 국장이다. 두 사람 모두 중앙정보부 출신이지만 손사무국장은 일찌감치 통일부로 ‘이적’한 반면 서국장의 당시 공식 직함은 국정원 대북전략국 단장이었다. 서영교 단장은 정상회담 이후 대북전략국장으로 승진해 김보현 차장과 함께 대북전략 업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측은 통일부를 중심으로 ‘범정부’적인 정상회담추진위원회(위원장 박재규 통일부장관)를 구성해 회담을 준비했다. 또 그 산하에는 실무를 관장하는 준비기획단(단장 양영식 차관)과 기획통제실(실장 김형기 통일정책실장)을 설치했다. 기획통제실장은 당시 정부 16개 부처별 회담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대표단 관리, 대통령 경호-의전 등 실질적 회담 준비를 담당하는 기구. 따라서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정상회담의 모든 준비가 통일부 주관으로 이뤄졌다. 김실장은 정상회담 당시 김보현 ‘국무총리특보’가 팀장을 맡은 평양 상황실의 전략수행원 5인방의 한 사람으로서 회담을 이끌었다. 현재는 3차에 걸친 남북 장관급회담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고 있다.

    이봉조 청와대 통일비서관은 통일부의 대북정책을 조율해온 몇 안 되는 핵심 브레인 중 한 사람이다. 이비서관은 지난해 6월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 억류사건이 발생해 햇볕정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자들에게 “햇볕정책이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시험문제가 어렵지 않은 편이다. 대북포용정책을 입안했을 때 어느 정도 장애요인은 이미 예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할 만큼 소신도 있는 인물이다. 통일부에서 주로 대북정보 분석을 담당해온 이비서관은 정상회담 수행 방북 소감을 물었을 때도 “20년 동안 남북문제를 담당해왔는데 그 결실을 2박3일간 거둔 것 같아 지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김정일위원장은 짐작한 대로 특수한 퍼스낼리티를 갖고 있었고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합리성, 리더십, 식견 등을 지녔다”고 자신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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