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3

2016.06.22

국제

북해 유전 해체, 석유시대 종말의 신호탄

수명 끝난 시설 처리비용 최대 100조 원…뒤늦게 날아든 ‘오일 호황’ 청구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6-17 17: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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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전 세계 최대 해저유전이던 북해 유전(The North Oilfield)은 영국에게 말 그대로 ‘신의 축복’이었다. 북해는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에 둘러싸인 대서양 부속해를 말한다. 최대 길이 960km, 최대 폭 580km, 수면 면적 75만km2, 평균수심 94m인 이 바다에는 풍부한 어족 자원과 유전 및 가스전이 있다. 1967년 덴마크 앞바다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영국과 노르웨이 등 연안국은 북해 유전에서 경쟁적으로 탐사를 벌였다. 특히 영국은 1970년 10월 스코틀랜드 북동부 애버딘으로부터 200km 떨어진 북해 포티스 지역에서 유전을 찾아내면서 오일 붐을 맞기에 이른다. 이후 거대한 해전 유전이 속속 발굴됐다.

    1970년대 영국은 강성 노동조합과 과도한 복지제도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경제상황은 7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까지 받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북해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 수출 덕에, 해마다 30억~40억 파운드(약 6조6700억 원) 적자를 기록하던 영국 정부의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다.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강력한 노동개혁정책이 성공한 요인 중 하나도 북해 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유국이 된 영국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영국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

    북해 유전은 하루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되면서 세계 최대 유전지대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당시 북해에서 대표적으로 원유가 많이 생산된 곳은 1971년 스코틀랜드 북동쪽 셰틀랜드 제도 근처에서 발견된 브렌트 유전이다. 브렌트 유전은 하루 평균 최대 50만 배럴을 생산할 정도로 원유가 풍부하게 매장된 곳이었다. 이 때문에 포티스, 오스버그, 에코피스크 등 북해의 여러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통칭해 ‘브렌트유’라고 부르게 됐다. 브렌트유는 현재 국제 원유시장에서 기준가로 삼고 있는 서부텍사스유(WTI), 두바이유 등과 함께 3대 유종(油種) 중 하나다.

    하지만 브렌트 유전의 원유 생산량은 1980년대 중반 절정기를 맞이한 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9620만 배럴(4월 기준)의 원유가 생산되는 가운데 브렌트 유전의 원유 생산량은 1000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전성기에 비해 5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수년 내 브렌트유는 전혀 생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해의 다른 유전에서 뽑아 올리는 원유 생산량도 하루 평균 87만 배럴을 기록해 2009년 150만 배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북해 유전은 빠르게 노후화되고 있어 머지않아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유전의 생산비용이 너무 높다 보니, 국제유가가 배럴당 30~40달러 선까지 떨어진 이래 BP(British Petroleum), 로열더치셸, 엑손모빌 등 주요 석유업체는 수지타산을 고려해 더는 원유를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조차 원유 순수입국으로 돌아섰다. 이제 파티가 끝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북해 유전 곳곳에선 유전 해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로열더치셸은 지난 40년간 브렌트유를 뽑아내다 2011년 생산이 중단된 원유 플랫폼 ‘브렌트 델타’를 철거할 계획이다. 거대한 강철요새나 다름없는 브렌트 델타는 상부 구조 무게만 2만4000t, 해저로부터 총길이는 300m로 에펠탑만 하다. 상부 구조를 지탱하는 다리는 런던 시계탑 빅벤과 맞먹고, 해저 원유 저장탱크는 웬만한 올림픽 수영 경기장과 비슷한 규모다.

    상부 구조를 먼저 제거할 계획인 로열더치셸은 이를 위해 초대형 해양플랜트 설치선인 파이어니링 스피릿호를 동원한다. 보잉 747기보다 5배 길고 적재량은 4만8000t에 이르는 이 초대형 선박은 절단된 브렌트 델타의 상부 구조를 갑판에 싣고 612km 떨어진 잉글랜드 북부 티스사이드로 운반한다. 로열더치셸은 상부 구조에서 해체된 철골의 97%를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열더치셸이 브렌트 델타를 폭파시켜 바다에 가라앉히지 않는 이유는 환경오염 우려 때문이다. 이 회사는 1995년 사용 연한이 끝난 해저 원유 저장탱크를 바다에 가라앉히기로 했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등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적이 있다. 그 대신 이를 해체해 육지로 옮기기로 했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시간과 기술은 물론, 수십억 파운드의 자금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로열더치셸은 최소 20억 파운드(약 3조30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브렌트유’ 명칭 사라질 듯

    상부 구조물을 제거한 뒤 하부 구조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리 구조물은 높이 165m, 넓이 18m나 된다. 해저 원유 저장탱크도 16개에 이른다. 로열더치셸은 다리 구조물 위에 등대를 달거나, 선박 규정에 따라 해저로부터 50m만 남기고 잘라내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 하부 구조물이 부식돼 없어지는 데만 수천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정을 메우는 작업도 쉽지 않다. 가히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향후 북해에 있는 모든 유전 시설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해에는 크고 작은 해상 플랫폼 470개, 유정 5000개, 파이프라인 1만km, 콘크리트 블록 4만 개가 있다. 이들 시설물을 2050년까지 모두 제거하는 데 최소 300억 파운드(약 50조 원)에서 최대 600억 파운드(약 100조 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국민이 인당 1000파운드씩 수십 년간 특별세금을 내야 하는 규모다.

    본격화하는 북해 유전 해체는 석유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듯하다.  ‘석유는 무한정 생산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는 의미다. 국제 원유업계 일각에선 벌써부터 브렌트유를 더는 국제유가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반면 브렌트유 가격 산정에 서부 아프리카, 중부 아시아, 브라질 등의 원유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적 가격조사기구 플래트(Platt’s)의 조지 몬테페크 글로벌 부문 이사는 “브렌트유 가격 산정 방식에 곧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국 에너지 연구기관의 추정 근거와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원유 생산이 최고점에 이르는 이른바 ‘피크 오일(Peak Oil)’ 시기는 2030〜2050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으로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 유전에서만 생산한다면 현 소비 수준을 감안할 때 길어야 2050년까지밖에 석유를 쓸 수 없으리라는 예측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비전 2030’ 정책을 추진하는 등 산유국들은 벌써부터 석유 없이 생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북해 유전의 수혜자였던 영국에게는 더욱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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