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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열 번째 스펙이 된 ‘전역 연기’

기업들의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에 관심 급증… 북한 4차 핵실험 후 1000여 명 신청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열 번째 스펙이 된 ‘전역 연기’

열 번째 스펙이 된 ‘전역 연기’

해병 1사단 연병장에서 장병들이 전투체력 점검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일보

취업준비생이 쓰는 용어로 소위 ‘취업 스펙 9종 세트’가 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잘생긴 외모)이다. 최근 여기에 한 가지 항목이 추가되고 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취업준비생 카페에는 ‘제10의 스펙은 군대 전역 연기’라는 내용이 눈에 띄게 늘었다.
취업준비생들이 전역 연기제도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15년 8월부터.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사태가 일어난 직후 군인 100여 명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전역 연기는 최대 3개월까지 가능한데, 당시 연기 신청의 주된 이유는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 때문이었다. 신청자들의 애국심과 동료애를 높게 평가한 김요환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육군 85명에게 자신의 명의로 된 취업추천서를 발급했다.
그 후 몇몇 기업이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을 선포했다. SK그룹은 2015년 9월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 설명회’를 열고, 그해 8월 전역 연기를 신청한 장병들에게 SK그룹 채용을 약속했다. 그 결과 다수가 SK 계열사에 입사 지원해 현재 고용된 상태며, 대학에 복학한 일부 장병도 ‘졸업 후 SK 취업’을 보장받았다. 당시 특별채용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이 보여준 열정과 패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DNA가 될 것”이라며 특별채용 배경을 설명했다.



참신한 채용 vs 형평성에 어긋나

열 번째 스펙이 된 ‘전역 연기’

SK그룹은 2015년 9월 자발적 전역 연기 장병 중 입사희망자 60여 명을 대상으로 특별채용 설명회를 가졌다. 동아일보

롯데그룹도 전역을 연기한 장병 24명을 지난해 9~10월 채용했다. ‘국가에 대한 책임감과 동료애’가 주된 이유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의 마음가짐이라면 정형화된 ‘스펙’을 따지지 않아도 기업과 사회에서 제 몫 이상을 담당할 것이라 판단했다”고 채용 이유를 밝혔다.
동성그룹도 전역을 연기한 장병 2명에게 채용 의사를 전했다. 당시 대학 복학생이던 이들에게 동성그룹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입사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채용확약서를 수여했다. 동성그룹 관계자는 “조직에는 희생정신을 갖추고 대의를 생각할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두 장병이 그러한 인재였고 직접 만나보니 투철한 애국심에 감동받아 채용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세 기업 모두 앞으로도 이러한 채용제도를 지속할지 여부는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갈렸다. 일부는 “진정성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참신한 채용”이라고 찬성했지만 “형평성에 어긋나는 채용 특혜”라는 비판도 일었다. 2012년 전역한 한모(26) 씨는 “2010~2011년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사건을 겪으면서 휴가까지 반납했는데 취업 특혜는 전혀 없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구모(31) 씨는 “인턴만 4년째인데 군 간부로 재입대해서 채용이 보장되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역 연기 후 2011년 제대한 대학생 박모(27) 씨는 “내 경우는 자기소개서에 ‘전역 연기’를 써도 입사 지원한 회사에서 별다른 호응이 없었다. 왜 지난해 8월에 전역 연기 신청한 사람들에게만 이런 채용 기회가 주어졌는지 생각할수록 씁쓸하다”고 말했다.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군 장병 1000여 명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스펙업’ 등 취업준비 카페에서는 ‘애국심 발현이 아니라 취업을 노린 꼼수’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국방부는 1000여 명의 전역을 연기할 만큼 심각한 안보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신청자 중 해병대 15명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역 연기 승인을 보류했다.



‘기업 이미지 개선에 활용’ 비판도

열 번째 스펙이 된 ‘전역 연기’

2015년 8월 28일 당시 김요한 육군 참모총장(왼쪽)이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전역 연기 장병에게 취업추천서를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국회는 자발적 전역 연기 신청자들에 대한 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있다.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국방위원회)은 2015년 12월 ‘군인사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는 단기복무 장교·부사관과 현역병이 스스로 전역 연기를 신청할 경우 연장 기간 군인 신분을 보장받는 것이다.
홍철호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전역 연기 중인 장병들이 훈련하다 사망이나 부상을 당했을 때 국가의 책임범위가 불명확하고 급식이나 장비 등의 추가 필요 경비에 대한 산출 근거가 없어 이를 보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법률안이 시행되면 자발적 전역 연기자가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홍철호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몇몇 기업의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 때문에 ‘국가에 봉사’가 아닌 ‘취업 목적’으로 전역을 연기하는 병사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돼도 군의 필요에 따라 전역 연기 승인이 이뤄질 것이므로 취업 목적을 위해 전역하는 경우는 제한될 테고, 특별채용 등의 조치는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사항이라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이 취업준비생에게 혼란을 주는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전역 연기 장병 특별채용을 실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 요소를 입사지원 시 가산점으로 인정하면 모를까, ‘무조건 채용’을 내거는 것은 취업난이 심각한 현실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며 “이러한 채용제도가 지속되면 순수한 애국심으로 전역을 연기한 다수의 젊은이까지 마치 취업 목적을 위해 전역을 연기한 것처럼 비쳐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간동아 2016.03.16 1029호 (p32~33)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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