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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ㅃㅂㅋㅌ’ ‘앙 기모띠’ ‘자살각’ 손가락 대화방 휴먼급식체

초성 연결, 자문자답 B급 언어의 진격…10대 비속어 통해 존재감, 유대감 느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 유설희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졸업

‘ㅃㅂㅋㅌ’ ‘앙 기모띠’ ‘자살각’ 손가락 대화방 휴먼급식체

‘ㅃㅂㅋㅌ’ ‘앙 기모띠’ ‘자살각’ 손가락 대화방 휴먼급식체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의미를 해독하기 어려운 온라인 언어 ‘휴먼급식체’가 유행하고 있다. EBS 뉴스 캡처

‘엌ㅋㅋ아무생각 없이 시켰는데 콜라 1.25리터 파겉절이 개이득인부분이구요ㅋㅋㅋ이거 최소 혜자각ㅇㅈ? 어ㅇㅈ ㅇㄱㄹㅇㅂㅂㅂㄱ 치킨집에서 이런 이벤트하는건 다른 치킨집에서 못보는거 ㅇㅈ한 부분이죠 다른치킨집:인정합니다 ㅋㅋㅋㅋㅋ엌ㅋㅋ ㅇㅈ한부분인각ㅇㅈ? 반박시 치알못 ㅋㅋ 한 마리 시켰는데 두명이서 배부르게 먹는각인부분입니다 행님들ㅋㅋ’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휴먼급식체 치킨 후기’ 내용이다. 다소 거칠게 해석하면 ‘별 기대 없이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 1.25ℓ와 파절이가 서비스로 와서 좋았다. 가격에 비해 제품의 양과 질이 뛰어나다. 다른 치킨집에서 이런 이벤트 하는 것을 못 봤다. 이걸 반박하는 사람은 치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 마리로도 두 명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휴먼체와 급식충이 만났더니

‘ㅃㅂㅋㅌ’ ‘앙 기모띠’ ‘자살각’ 손가락 대화방 휴먼급식체

10대가 많이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급식충 마이너 갤러리’에 한 이용자가 올려놓은 휴먼급식체 안내문. 디시인사이드 홈페이지 캡처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 중인 휴먼급식체는 ‘휴먼체’와 ‘급식충’을 합성해 만든 단어로, 전자는 문서작성 프로그램 ‘한컴오피스’의 글꼴명, 후자는 청소년을 급식만 축내는 벌레로 비하하는 유행어다. 정리하자면 휴먼급식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즉 초중고교생이 널리 쓰는 어투를 속되게 이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모든 청소년이 휴먼급식체를 쓰는 건 아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김모(12) 군은 “우리 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인터넷 개인방송을 보는데, 그 친구들이 주로 휴먼급식체를 쓴다”고 했다.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의 인기 진행자인 ‘철구’ ‘로이조’ 등이 휴먼급식체를 사용하는데, 이들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가 휴먼급식체 사용자라는 설명이다. 이런 까닭에 온라인상에서 휴먼급식체는 ‘철구체’로 불리기도 한다. 휴먼급식체를 많이 사용하는 또 다른 부류는 온라인 게임 마니아층과 디시인사이드 등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들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독특한 언어문화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휴먼급식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초성만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 예를 들어 ‘ㅇㅈ’은 ‘인정(認定)’의 줄임말이다. ‘ㅂㅂㅂㄱ’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는데 이는 ‘반박불가’의 줄임말이다. ‘ㅇㄱㄹㅇ’은 ‘이거레알’이라고 읽으며, 어떤 내용이 사실임을 강조할 때 쓴다. ‘레알’은 영어단어 ‘리얼(real)’을 변형한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ㅃㅂㅋㅌ’도 있다. ‘빼박캔트’로 읽는 이 표현은 관용구 ‘빼도 박도 못하다’에 영어단어 ‘캔트(can’t)’를 합쳐 만든 조어다.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중학생 이모(14) 군은 이처럼 초성만 적는 이유에 대해 ‘스마트폰 사용’을 들며 “스마트폰은 컴퓨터에 비해 키패드가 작아 글자를 입력하기 불편하다. 초성만 쓰면 의미를 빨리 전달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5〜6월 만 9〜18세 청소년 1000여 명의 TV·개인용 컴퓨터(PC)·스마트폰 로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207.5분으로, TV 시청(69.7분) 및 PC 인터넷 이용시간(8.3분)을 압도했다. 휴먼급식체는 이처럼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휴먼급식체의 또 다른 특징은 ‘문답’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 앞서 언급한 치킨집 후기의 ‘다른 치킨집에서 못보는거 ㅇㅈ한 부분이죠 다른치킨집:인정합니다’ 부분에서 알 수 있듯, 휴먼급식체 사용자들은 글 중간에 ‘인정’ 답변을 넣는 경우가 많다. 한참 주장을 펼친 뒤 ‘인정? 어 인정’처럼 자문자답을 하거나, 돌연 부장판사를 등장시켜 ‘부장판사님도 인정? 네 인정합니다(feat. 부장판사)’ 같은 식으로 쓰기도 한다. 휴먼급식체의 이러한 엉뚱함은 일종의 ‘병맛’(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앞뒤 맥락과 이어지지 않는 황당한 말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신조어) 유머코드로 분류된다.
휴먼급식체를 쓰는 청소년들은 말끝마다 ‘~각’을 붙이기도 한다. ‘~각’은 ‘~한 상황’ 정도의 의미로, 자주 쓰이는 활용 형태는 ‘자살각’(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 ‘인정각’(인정할 만한 상황) 등이다. ‘앙 기모띠’ 같은 정체불명의 표현도 눈에 띈다. ‘기모띠’는 ‘기분’을 뜻하는 일본어 ‘기모치(きもち)’를 변형한 것으로, ‘앙 기모띠’는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기는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시기다. 청소년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는 동시에 또래집단과 같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감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고 해석했다.



또래문화에 휩쓸려 뜻도 모르고 사용

문제는 휴먼급식체에 부모를 모욕하는 표현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응 니애미’(그래, 너희 어머니), ‘응 느금마’(그래, 너희 어머니) 같은 상용구가 대표적이다. 휴먼급식체 사용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을 무시할 때 주로 이런 표현을 쓴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에서 해당 상용구를 검색하면 초등학생들이 이런 표현을 사용해 장난을 치는 동영상이 여러 편 검색된다. 이에 대해 비속어의 어원과 의미를 밝힌 책 ‘B끕 언어’를 펴낸 권희린 서울 장충고 교사는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교 고학년생과 중학생들은 또래문화에 쉽게 휩쓸린다. 친구들이 쓰는 말을 자신만 안 쓰면 뒤처진다고 생각해 유행어가 무슨 뜻인지 잘 몰라도 따라 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10대의 언어문화 가운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병곤 교수는 “온라인 방송 진행자의 언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면 방송윤리 차원에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하지만 규제만으로는 10대의 언어문화를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언어생활을 개선할 수 있도록 안목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욕이나 비속어를 스스로 돌아보고 다듬도록 하는 프로젝트형 학습이 일선 학교에서 실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간동아 2016.03.16 1029호 (p30~31)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 유설희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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