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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Asia 주간동아 특약

美·中 충돌론은 틀렸다

‘투키디데스의 덫’ 피하는 5가지 방법…“미래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 T. J. 펨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 |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美·中 충돌론은 틀렸다

들려오는 소식은 흉흉하다. ‘저무는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을 대비하며 양측의 대립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그 복판에 놓인 한국의 처지는 딱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래는 그처럼 암울할 따름일까. 미국과 중국에게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고, 이를 만들어가는 방법 역시 명확하다고 말하는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 기획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필자는 국제정치학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분야에서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전문가다. <편집자 주>

최근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흔히 ‘패권전이(Power Transition)’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곤 한다. 두 나라 전문가와 언론이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흥행몰이를 꾀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제는 미·중 관계를 떠나 아시아·태평양지역(아태지역)의 질서 전체를 이 같은 관점에서 풀이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러한 시각이 위험하고도 잘못된 방식이라고 판단한다.
패권전이 이론은 주요 강대국 사이의 권력이 갈등 고조라는 계기를 거쳐 뒤바뀌는 역사적 사례에 주목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세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의 패권전이, 결정적으로는 영국과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신흥국 독일과 일본에게 도전받았던 역사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흔히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 Trap)’이라고 부르는 패권전이 이론이 탄생했다. 쇠퇴기로 접어드는 역내 강대국 혹은 세계적 패권국은,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어내고자 신흥 강국과 군사적 마찰을 일으키곤 한다는 것이다. 한쪽은 도전받고 있는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내주길 거부하는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싸우게 된다는 게 그 골자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중국은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고릴라, 미국은 먹이와 암컷에 대한 우선권을 더는 지켜낼 능력이 없는, 전성기가 훌쩍 지난 늙은 고릴라다.



젊은 고릴라와 늙은 고릴라?

그러니 두 나라 사이 군사적 마찰이나 극적인 권력 이동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가설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은 급속한 성장을 통해 비틀대는 미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여왔다. 1980년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0% 남짓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고, 군사력 역시 미국이나 지역 내 다른 국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야심차게 내놓은 국제금융 및 역내 인프라 개발 계획, 압도적 규모의 대양해군 육성 계획, 특히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영토 주장이나 국제법적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동중국해·남중국해 수역에 대한 주권 주장 등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미국의 절대적인 경제·군사 우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전쟁에 휘말렸고, 2007~2008년에는 그간 도박을 일삼아왔던 미국 금융기관들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붕괴라는 재앙을 야기했다. 이러한 위기로부터 벗어날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일 뿐이다. 국내 정치의 이념적 대립으로 예산이나 인프라 관련 현안, 정부 인사결정, 기후변화 같은 주요 이슈에 관한 정책 결정 능력은 완전히 상실된 것처럼 보인다. 내치(內治) 능력을 잃어버린 국가가 세계를 이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 국방부는 이미 1992년부터 동아시아지역에서 그 어떤 ‘경쟁 국가(peer competitor)’도 탄생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대전략을 추구해왔다. ‘1994~99 국방기획지침’에서 미국 정부는 ‘어떠한 잠재적 경쟁국가도 역내 혹은 국제적 지위 확대에 대한 희망조차 갖지 못하도록 저지할 수 있는 기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두 나라 지도자들조차 패권전이 이론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사를 주기적으로 구사하곤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보다 한발 앞서 세계무역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정당성을 강조한 바 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한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배제된 혹은 대폭 축소된 ‘아시아인들을 위한 아시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대립만큼 협력한다

이처럼 패권전이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꽤나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필자 눈에는 미·중 관계에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5가지쯤 보인다. 특히나 무력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각의 시각에서 이러한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앞서 살펴본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과연 실제로 패권전이가 일어나고 있느냐는 점이다. 두 나라 사이 물리적 국력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중국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미군 전력이 중국 주변부에 진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미 국방부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전 세계 차원은 물론 아태지역 내 군사력에서도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수십 년의 격차를 보인다. 특히 미국 군사력이 지역 내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배가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격차는 한층 더 커진다.
중국 GDP는 구매력평가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을 앞질렀을지 모르지만, 중국 인구가 미국의 4배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실질적인 경제력을 평가하는 척도인 1인당 GDP는 미국이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뜻이다. 1979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기술 발전은 괄목할 만하지만, 혁신을 앞세운 정보기술과 인적자원 부문에서 미국이 보유한 강점은 여전히 가공할 만하다. 국제정치, 사회, 교육, 문화 분야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의 물리적·문화적 영향력은 미국이 지키고 있는 우위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질적인 패권전이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많은 이가 두 나라는 언젠가 군사적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울어가는 기존 패권국가는 현상 유지에 애쓸 것이므로 이에 도전하는 국가는 판도를 뒤집고자 무력갈등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는 게 패권전이 이론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두 번째 질문이 나온다. 오늘날 아태지역에서는 현상 유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짓기가 어렵다. 미국과 중국 모두 타이틀을 지키려는 방어자 혹은 이를 따내려는 도전자 어느 한쪽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제까지 두 나라는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무쌍한 유동성을 보여줬다.
일단 미국이 인권문제, 냉전형(形) 동맹 구도,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확고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앞세운 중국이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국제금융 구조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불거진 남중국해 문제에서 보듯, 중국이 기습적인 행위를 통해 기존 해양관리 통제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거꾸로 미국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환영하며 이에 상당 부분 기여해왔다는 사실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흡사 수십 년 전 일본과 독일을 지원했던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다양한 다자협의체에 중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썼고, 6자회담이나 미·중 양자 전략-경제 대화 같은 새로운 협의체를 만드는 데도 협력해왔다. 미국 스스로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G20과 북태평양해안경비포럼 등 다른 국가들이 만든 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WTO와 IMF 같은 국제기구가 부과한 규칙들을 수용해 자국의 국내 금융·경제 시스템에 도입했다. 애초 이들 규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국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수많은 지역기구와 국제기구의 일원으로 투철한 준법정신을 과시하고 있고, 가장 많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는 국가가 됐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는 미국과 중국은 빈 병의 양쪽 끝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전갈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실용주의적인 방향으로 적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두 나라다. 물론 각자가 규정하는 국익이 충돌할 개연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원치 않는 상황 전개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반드시 군사적 마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간의 미·중 관계는 잘 보여준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지더라도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센함과 스테덤함

세 번째로 살펴볼 요인은 미·소 두 나라의 군사적·경제적 이익이 제로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거 아테네와 스파르타, 미국과 일본, 냉전 당시 미·중 대결과 달리, 최근 미국과 중국의 경제와 안보 이익은 겹쳐 있다기보다 분화돼 있는 게 사실이다. 언뜻 양국의 군사적 대비 태세만 놓고 보자면 새로운 양극체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후견인으로 남아 있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나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관계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한 협력으로 이어졌다. 미국도 한국이나 일본 같은 지역 내 국가들과 안보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역내 투자나 가치생산 사슬(Value Chain), 채권시장, 무역협정 같은 경제 분야에서의 상호의존성에 의해 곧바로 상쇄된다. 금융, 무역, 통화에서의 이러한 연결고리는 국방 혹은 안보 분야에서의 경쟁이 도를 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역설적으로 두 나라는 상대방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상대국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군사적으로는 적군일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함께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파트너인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존성은 무력충돌 가능성을 희박하게 하는 네 번째 요인을 만들어낸다. 복합적인 상호의존형 경제관계로 연결된 두 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협력을 모색하게 됐다. 소말리아 아덴 만에서의 해적 소탕 작전, 이란 핵협상, 2007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대응한 경제적 조치, 6자회담을 통한 협력, 최근에는 사이버안보나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양자협정에 이르기까지, 협력이 경쟁을 압도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간혹 두 나라 국익이 충돌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합치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렇듯 복합적인 상황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자 미국은 해군 구축함 라센함을 보내 작전을 벌인 바 있다. 이를 가리켜 두 나라가 패권전이를 향해 치닫는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그 일주일 뒤 미 해군 구축함 스테덤함이 중국 상하이를 친선 방문한 사례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는 분명 긍정적인 성격의 현재진행형 군사협력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다섯 번째 요인이다. 기본적으로 패권전이 이론은 구조 차원의 변화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이 이론이 전쟁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정책결정자들의 선택 같은 중간 단계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 이론 속에서, 대립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은 물리적 힘의 변화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학습능력을 갖고 있고, DNA에 의해 조종돼 벼랑으로 돌진하는 나그네쥐와는 다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잘 알고 있던 미국과 소련은 40년 넘는 냉전 기간에도 직접적인 군사대결을 벌인 적이 없다. 미·중 두 나라를 비롯한 현대 주요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전쟁이 국가의 안녕을 개선해줄 실현 가능한 선택이라고 믿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미래를 보는 눈이 중요한 이유

결국 향후 미·중 관계와 아태지역 판도는 지금의 안보·경제 체제를 억지로 지키는 데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강대국이 기존의 모든 흔적을 제거하는 식으로 전개될 리도 없다. 그보다는 각 나라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따져 불편한 순응의 길을 가게 될 공산이 훨씬 더 크다. 이미 지역 내 주요 국가는 다차원적인 상호의존성이나 서로의 경제력·군사력 판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지켜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도전과제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서서히 펼쳐지는 이러한 역학관계가 관련 당사자들에게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리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적대와 갈등보다 군사적 균형과 경제적 상호의존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과 미국은 그간 군사적 마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각국 지도자들에게 심어줬다. 대립이 불가피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수록 각국이 무자비한 적대감보다 ‘불편한 순응’을 택하게 될 개연성도 한층 더 커진다. 이 지역 지도자들이 상호협력과 긍정적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제로섬 성격의 대립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리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미·중 관계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국가 지도자들에게도 아태지역의 안정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작품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먼저 내다보는 눈이다. 지도자들이 스스로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자세다. 그래야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창의력이 아무런 제약 없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최악의 의도를 갖고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은 결국 모두가 피하고자 했던 전략적 딜레마로 이어질 따름이다. 결정은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주간동아 2016.02.17 1025호 (p60~61)

T. J. 펨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 |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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