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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명’ 대 ‘이명박근혜’

고개 숙인 이재명… 언제까지 文과 함께할까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문재명’ 대 ‘이명박근혜’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부 정치 전문가는 20대 대선 키워드로 ‘문재명’(문재인+이재명)을 꼽는다. ‘이명박근혜’(이명박+박근혜)와 비교해보라는 취지다. 임기 말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지지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여당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2012년 18대 대선후보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내세우자,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무능한 현직 대통령을 계승한다”며 ‘이명박근혜’라는 단어를 회자시켰다. 선거는 박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당시 선거 결과를 두고 “유권자들이 박 전 대통령 선출을 이명박 정부 승계가 아닌 단절로 봤다”는 분석도 있었다. 전임 정부와 단절하는 방식은 정권교체뿐 아니라 권력교체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7대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 기간은 물론, MB 정부 내내 이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이 전 대통령에 염증을 느낀 이들 중 상당수가 문재인, 박근혜 두 후보를 놓고 저울질한 끝에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보다 권력교체?

기존 권력에 거부감이 강한 시기 ‘여당 내 강력한 야당’은 역설적으로 권력 재창출 원동력이 된다. 대통령 간선제를 고집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직선제와 민주화를 내건 6·29 선언을 한 덕에 정권을 이어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문민정권을 내세우며 전임자와 단절을 천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도전 덕분에 정권교체를 막아냈다. 2017년 19대 대선 때 야당 후보 경쟁에서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민주당 20대 대선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강하게 충돌했다. 이재명 대선후보는 경기도지사 취임 후에도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지 않고 ‘마이웨이’를 택했다. 일각에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야당의 정권교체 못지않게 현 집권세력과 각을 세울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왔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을 압도할 정도로 차별화해야 할 것이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이 후보는 그야말로 ‘이재명’으로서 노선을 견지했다.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9월 27일 검찰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 관련 로비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제출하는 등 의혹이 확산하자 문 대통령과 밀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0월 10일 민주당 서울순회경선(3차 슈퍼위크)에서 누적 득표율 50.29%로 대선후보가 된 것이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이 후보는 여당 대선주자가 됐으나 30만 명 규모의 3차 선거인단 투표만 놓고 보면 득표율 28.3%로 이낙연 전 대표(62.3%)에 대패했다.

임기 말 대통령은 여론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대장동 의혹이 자꾸 터져 나오면 민심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빨이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이 묵인하면 검찰이 여당 대선후보를 강도 높게 조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민주당 대선주자로 확정되자 이 후보는 “편을 가르지 않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 “김구 선생의 일념, 김대중 대통령의 신념, 노무현 대통령의 열정,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당(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이틀 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13일 만에 청와대에서 만나 오찬을 함께 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한 여당(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본선에서 패배했다. 문 대통령은 여당 대선주자 확정 16일 만인 10월 26일 이 후보를 청와대에서 만나 점심시간 직전까지 차담(茶談)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아니라 이철희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만 배석하게 했다.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것처럼 이 후보를 옆에 두고 앉았다. 이 후보는 이 수석을 마주 보고 앉아, 옆에서 문 대통령과 대담했다. 이 수석은 “어제(10월 25일) 오후 늦게 대통령께서 한-아세안 정상회담 등 본인 일정을 고려했을 때 오늘 오전이 (이 후보와 만나기에) 좋겠다고 했고, 이 후보도 오늘 오전 일정이 비어 있어 만남(시점)을 정했다”고 밝혔다. 회담 전날에야 문 대통령이 면담을 허용한 것으로 읽힌다. 차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과 경기도지사로서 함께 국정을 끌어왔는데, 나는 물러나는 사람이 되고…”라고 말했을 때 이 후보는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았다” “우리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역사적인 정부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에 담아둔 얘기가 있다”며 “지난 대선 때 제가 모질게 한 부분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그 심정 아시겠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11월 1일 검찰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 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공) 기획본부장을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그러면서 검찰 측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게 금품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배임 적용이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다음 날 2일 문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넥타이를 매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이 후보는 “부동산 문제로 국민에게 많은 고통과 좌절을 안겨드렸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발이익 환수제 강화 등 부동산 불로소득을 막는 제도개혁을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이에 호응하겠다고 했다.

“그 심정 아시겠죠”

대장동 게이트 의혹은 또 터져 나왔다. 윤정수 성남도공 사장이 11월 1일 성남도공 홈페이지에 법무법인이 판단한 법적 조치 방안과 함께 자기 명의로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대응방안에 대한 보고’를 올린 것이다. 이틀 뒤 3일에는 같은 홈페이지에 ‘대장동 대응방안 대국민 보고서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을 올렸다. 대장동 민간사업자를 결정할 무렵 성남도공 사장이던 황무성 씨가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관련 녹취파일을 공개한 데 이은 사건이었다. 황 전 사장은 조사를 받을 때 검찰 관계자가 자신을 가리켜 “바지 사장이었네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것이 바지사장이다. 두 사장의 행보는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함으로 보인다.

또 다른 성남도공, 성남시 관계자가 대장동 게이트 의혹과 관련된 추가 증거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확실한 근거가 제기되면 검찰도 배임 관련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으며, 이 후보가 곤란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명박근혜’의 실패를 기억하는 민주당은 ‘문재명’ 작전에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1313호 (p12~1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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