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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국가 美” vs “우주 중심 中” 우월의식 大충돌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투키디데스 함정’ ‘킨들버거 함정’이 가리키는 미래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1등 국가 美” vs “우주 중심 中” 우월의식 大충돌

5월 9일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인 미국 해군 제9항공모함전투단. [사진 제공 · 미 해군]

5월 9일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인 미국 해군 제9항공모함전투단. [사진 제공 · 미 해군]

“아테네의 부상, 그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 탓에 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몸소 겪은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신흥국 아테네와 전통적 패자(覇者) 스파르타의 충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통찰에 빗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지금도 회자된다. 저명한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가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자 만든 개념이다. 신흥세력이 기존 지배세력을 위협할 때 발생하는 분쟁 직전의 불안 상황을 가리킨다.

국제사회의 우환이 될 또 다른 ‘킨들버거 함정’도 있다. 신흥 강국이 기존 지배세력만큼 세계질서를 다잡지 못할 때 발생하는 재앙을 뜻한다. 국제관계학 석학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하버드대 교수가 찰스 킨들버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개념이다.


두 제국 향한 글로벌한 시선

킨들버거는 저서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기존 패권국 영국을 대체한 신흥국 미국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해 대공황이 발생했다”며 “1929~1931년 영국은 국제경제 시스템 안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미국은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 않았다. 세계경제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지프 나이는 대공황 당시 미국과 같이 오늘날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이 아닌 국제질서의 ‘무임 승차자’처럼 처신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지금 ‘두 가지 함정’을 논할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한국이 처한 국제질서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다. 오늘날 세계는 미국과 중국 간 ‘신(新)냉전’을 목도하고 있다.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패권을 쥔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한국이라는 좁은 시공간을 벗어나 두 제국을 글로벌하게 관찰하려는 시도가 절실하다. 과거 세계를 인식하던 ‘변방의식’의 낡은 안목을 버리고 거대한 발상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사회의 두 가지 함정을 다시 살펴보자.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인으로서 직접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이 30년 동안 장기화한 탓에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전쟁은 아테네라는 도전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파르타가 일으켰다.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스파르타뿐 아니라 전체 그리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자국의 급속한 발전은 아테네인의 자부심이었다. 이 자부심은 타국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국가 간 ‘힘의 전환’이 이뤄지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앨리슨은 최근 500년 동안 16번의 세계적 패권 전환이 이뤄졌다고 본다. 그중 12번은 전쟁을 통한 전환이었고 4번만 전쟁 없이 이뤄졌다. 각각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 사이 포르투갈이 에스파냐에 제국 자리를 내준 것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세계 패권 자리에서 밀어낸 것 △미국이 1945년 이후 40여 년간 냉전에서 소련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것 △1990년부터 현재까지 독일이 유럽 주도권 경쟁에서 프랑스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 사례인 독일이 특히 흥미롭다. 최근 유럽에서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으나 무력을 동원할 기미는 전혀 없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유럽을 지배하려던 독일이 무너진 지 70년이 넘었다. 이제 과거 승전국들이 거꾸로 독일에게 유럽 경제를 이끌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극도의 우월의식 사로잡힌 美·中”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어떨까. 이제 중국의 부상은 국제질서의 상수이자 장기 조건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첫걸음이다. 미국과 중국이 두 가지 함정을 슬기롭게 돌파해야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피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말처럼 미국과 중국은 ‘문명의 대결’을 펼칠 것이다. 다만 어느 개인이나 국가도 상대방을 누르고 우위에 서려는 욕망을 가졌다. 그렇기에 앨리슨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중국도 미국과 똑같다고 상상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는 중국과 미국이 “극도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점에서 같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국이 ‘태양이 두 개인 우주’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가. 미국이 또 하나의 초강국과 공존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운가. 국가 건설 때부터 형성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미국은 자국이 일등이라는, 중국은 자국이 우주 중심이라는 의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핵심 가치는 ‘자유’다. 반면 중국은 ‘질서’ ‘안정’을 추구한다. 국가 형태 면에서도 미국은 민주공화정이고 중국은 당국(黨國)체제, 즉 공산당 독재체제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 파워엘리트 집단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로부터 중국 인식의 기본 틀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리콴유는 부단히 중국 지도자를 만났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정치인을 만나 “중국은 서방과 다르다. 미래에도 서방의 일원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작고한 리콴유는 생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만났다. 그를 만난 후 미국 측에 “시진핑과 중국공산당 체제 강화에 주목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부강(富强)을 동시에 이루려는 ‘중국몽’이라는 포부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앨리슨은 시진핑 시대의 프로젝트인 중국몽이 미국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두 대통령이 한 역할을 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몽이 ‘미국의 세기에 대한 강력한 비전’(시어도어 루스벨트)과 ‘역동적 뉴딜정책’(프랭클린 루스벨트)을 합친 것 정도로 중요한 구상이라는 얘기다.

세계 패권의 주요한 축은 역시 경제 역량이다. 중국은 국가 통제로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동시에 강화해 경제성장을 이뤘다. AI(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하는 7대 글로벌 기업(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 3곳이 중국 기업이다. 세계 정치의 ‘새로운 석유(new oil)’로 각광받는 많은 인구와 막대한 데이터 자원에 중국은 ‘빅데이터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부상하고 있다. 조지프 나이는 경제발전의 중심인 주요 기술을 선점하고 세계 고등교육을 선도하는 미국이 일정 기간 중국을 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동시에 “두 나라의 상호의존성이 높아졌기에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경제 디커플링·정치 압박 다 싫다

2008년 당시 시진핑 국가 부주석(오른쪽)을 만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신화=뉴시스]

2008년 당시 시진핑 국가 부주석(오른쪽)을 만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신화=뉴시스]

중국이 자리한 아시아는 어떤가. 아시아 여러 나라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아시아에는 그 나름 힘의 균형이 있다. 어느 아시아 국가도 중국과 경제적 디커플링을 강요하는 냉전식 봉쇄 전략을 바라지 않는다. 또한 중국이 아시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것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과 경제적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그 정치적 압박을 거부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처음 중국을 찾았을 때 그 누구도 중국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92년 헌팅턴은 이념이 아닌 문명적 차이가 중국과 서양을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시 20년이 흐르고 시진핑이 등장했다. 시진핑 정부는 2049년 ‘현대적 사회주의 국가’를 이룬다는 미래 청사진을 내놨다. 이른바 ‘차이나 드림’ 실현을 목표로 삼은 셈이다. 한국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지녔고 민주주의 발전의 선두이기도 한 한국. 미국과 중국 두 제국에 대해 이제 관성적 사유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준비해야 한다.





주간동아 1302호 (p50~52)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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