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7

2020.09.18

중국, 美와 힘 겨루는 시기에 ‘압록강을 건너다’ 드라마 제작

애국주의 앞세워 미국에 맞서려는 의도, 40부작 ‘항미원조 전쟁’ 드라마 만들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9-1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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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의 포스터. [바이두]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의 포스터. [바이두]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북한)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6·25전쟁은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승인 하에 김일성의 북한이 기습 남침해 시작됐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남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그동안 모든 역사책에서 6·25전쟁을 ‘북침’으로 기록해왔다. 게다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6·25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미국)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전쟁이라면서 침략에 맞선 ‘위대한 정의의 전쟁’이며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변해왔다. 실제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7년 8월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 기념 경축대회 연설에서 “인민군대가 항미원조전쟁 등을 승리로 이끌어 국위와 군위를 떨쳤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주장들은 옛 소련 붕괴 이후 각종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 특히 중국은 승리했다는 주장과 달리 항미원조 전쟁에서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으며 패배했다.

    조선전쟁과 항미원조전쟁

    중국의 항미원조전쟁을 미화한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넘어'제작 발표회 모습. [바이두]

    중국의 항미원조전쟁을 미화한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넘어'제작 발표회 모습. [바이두]

    중국은 6·25전쟁을 내전으로서의 ‘조선전쟁’과 국제전으로서의 ‘항미원조전쟁’으로 구분한다. 중국은 조선전쟁이 1950년 6월 25일 38선에서 시작돼 같은 해 10월 24일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서 북한의 패배로 사실상 끝났다고 본다. 반면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이 10월 19일 압록강에서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휴전선에서 끝나면서 ‘침략자’(미국)를 400㎞ 이상 몰아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중국은 1950년 2월부터 인민해방군 병력 44만여 명을 동북지역에 집결시켜 놓았다. 중국은 김일성의 지원 요청에 따라 같은 해 10월 19일 인민해방군을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진입시켰다. 중국 인민지원군은 같은 해 10월 25일 평안북도 운산 지역에서 미군 제1기병사단과 한국군 제1사단을 기습 공격해 첫 승리를 거두었다. 중국은 10월 25일을 항미원조전쟁 기념일로 제정해 매년 성대하게 행사를 거행해왔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선동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관영 언론 매체들이 앞 다투어 항미원조 전쟁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특집 기사(8월 31일자)를 통해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 공산당과 인민군대의 혁명 정신을 널리 알린 전쟁이었다”면서 “항미원조 정신은 중국 인민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항미원조 전쟁 카드를 꺼내든 의도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신(新)냉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국민들에게 반미정서와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려는 속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6·25전쟁 당시 미국의 우세한 화력을 견뎌냈듯이 이번에도 미국의 강력한 압박을 버텨내며 이른바 ‘인민전쟁’이란 구호를 앞세우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 듯하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전쟁 승리 75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연설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왜곡하고 공산당의 본질과 목적성을 더럽히려는 그 어떤 사람과 세력에도 중국 인민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의 이런 발언은 미국이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소수민족 인권 탄압, 화웨이 등 IT기업 제재 등으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상교(대령)출신 군사전문가 웨강은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이 미국에 맞서 싸운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면서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인민들의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

    중국에서 항미원조 전쟁 기념일인 10월 25일 개봉될 영화 '금강천'의 한 장면. [신징바오]

    중국에서 항미원조 전쟁 기념일인 10월 25일 개봉될 영화 '금강천'의 한 장면. [신징바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중국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廣電總局)은 최근 전국회의를 열고 항미원조전쟁과 관련된 TV 드라마를 제작해 집중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제작에 들어간 대표적인 드라마는 40부작 ‘압록강을 건너다’(跨過鴨綠江)이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CCTV)이 만들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항미원조 전쟁 당시 미국 해군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진입하고 오폭까지 하자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분개해 칼을 빼 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또 “인민지원군이 파죽지세로 38선을 돌파해 서울을 점령하는 등 마오쩌둥 주석의 영명한 결정으로 중국은 민족의 존엄을 내보였고, 세계사에 새 국면을 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6·25전쟁 참전 정당성과 함께 용감히 투쟁해 승리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역사적 결단을 강조할 계획이다. 



    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 위페이(餘飛)는 “이 드라마는 항미원조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 인민들의 단결을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6·25 전쟁을 다룬 장편 드라마는 2016년 ‘38선(三八線·38부)’ 이후 4년만이다. 특히 CCTV가 직접 6·25 전쟁을 다룬 드라마 제작에 나선 것은 2000년 이후 20년 만이다. 최소 10억 위안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는 이번 드라마는 연말에 방영될 예정이다. CCTV는 이 드라마를 방영한 후에는 해외로 수출, 글로벌 반미 감정 고취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CCTV는 또 중국이 승리한 전투를 중심으로 항미원조전쟁을 조명하는 6부작 대형 다큐멘터리도 제작해 방영할 계획이다. 중국 관찰자망에 따르면 6·25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 ‘우리의 전쟁’(我們的戰爭)’도 오는 10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항미원조전쟁을 다룬 영화도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장진호 전투를 그린 ‘빙설장진호’(氷雪長津湖)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 때 벌어진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했던 미국 해병 1만5000명이 영하 3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12만 명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작전을 말한다. 당시 전투로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은 1만7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중국군 사상자도 4만8000여 명이나 됐다. 미군의 값진 희생 덕분에 북한 치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문재인 대통령 부모 등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한국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CCTV는 과거 이 영화와 비슷한 제목인 ‘빙혈 장진호(氷血長津湖)’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이 장진호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도 말 그대로 중국이 승리한 전투라는 점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5억 2000만 위안(885억 원)을 들여 만들고 있는 이 영화는 내년 초 개봉될 예정이다. 

    애국주의 영화 ‘특수부대 전랑(戰狼)’의 감독이자 주연인 우징(吳京)이 주인공을 맡은 ‘금강천(金剛川)’도 10월 25일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제작비만 4억 위안(682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휴전 직전 금강산 지류인 금강천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 영화제작사들은 ‘혈전 상감령’(血戰 上甘嶺) 등처럼 과거에 개봉됐던 항미원조전쟁 영화들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 영화계와 방송가에 항미원조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봇물처럼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 행사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또 오는 10월 25일 외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해 대대적인 항미원조 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질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반미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선전·선동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항미원조전쟁은 처절한 패배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참전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법 등을 무시하고 북한의 침략전쟁을 도와준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잃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체 사상자는 30만여 명이지만 실제로는 100만여 명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이 투입한 병력은 이른바 ‘윤전(輪戰)’ 방식으로 연인원 240만여 명이나 됐으며 비전투 요원 50만여 명까지 모두 290만여 명이나 됐다. 이들 중 세 명에 한 명꼴로 죽거나 다치는 등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의도는 이런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미국의 공세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미국에 맞서 ‘제2의 항미원조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은 엄청난 오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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