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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고려가 아니라 고구리와 고리로 불러야 한다”

고구려 연구가 서길수 교수 고구리·고리사 연구 총서 1·2권 출간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고구려와 고려가 아니라 고구리와 고리로 불러야 한다”

‘고려국’이 적힌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 광배(왼쪽)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
연가7년은 고구려의 연호로 추정되기에 장수왕 재위 무렵 고구려라는 구호를 고려로 바꿨다는 증좌다.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고려국’이 적힌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 광배(왼쪽)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 연가7년은 고구려의 연호로 추정되기에 장수왕 재위 무렵 고구려라는 구호를 고려로 바꿨다는 증좌다.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옛날 옛날 고릿적에’나 ‘고릿적 시절 얘기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고릿적’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옛날의 때’라는 명사라고 나온다. 왜 옛날의 때가 고릿적일까. 정답은 없고 추론만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든 뒤 그보다 한참 전 왕조였던 고려 시절이라는 뜻으로 쓴 표현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럼 ‘고려적’이 ‘고릿적’으로 바뀐 걸까. 아니다. 고려는 원래 고리로 읽었다.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은 옥편을 한번 찾아보라. 오늘날에는 한자 뜻을 새겨서 높을 고(高), 빛날 려(麗)로 발음하는 그 麗에는 ‘나라이름 리’라는 별도의 뜻과 음이 있다. 그렇다면 한자로 된 나라 이름에 麗가 들어간 나라가 어딜까. 역사서에 등장하는 나라를 다 뒤졌을 때 딱 세 나라뿐이다. 고구려(高句麗), 고려(高麗), 구리(句麗)다.


나라 이름 리(麗)가 들어간 국명

15세기 ‘용비어천가’에서 麗를 리(离)로 발음하라는 한문주석(왼쪽)과 18세기 ‘전운옥편’에서 麗를 거성 ‘례’와 평성 ‘리’로 발음을 구별한 본문.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15세기 ‘용비어천가’에서 麗를 리(离)로 발음하라는 한문주석(왼쪽)과 18세기 ‘전운옥편’에서 麗를 거성 ‘례’와 평성 ‘리’로 발음을 구별한 본문.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구리는 부여가 세워지기 전부터 중국 쑹화강 북쪽에 있던 나라로 추정된다. 중국 사서에 고리(槀離), 탁리(橐離), 색리(索離)로 다양하게 표기되는데, 모두 마지막 발음이 ‘리’다.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부여 편을 보면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이 ‘고리지국(槀離之國) 왕자 출신’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를 두고 고구려와 혼돈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위서동이전에는 고리를 부여국 북쪽, 고구려를 부여국 남쪽이라고 해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세 나라 이름이 모두 리로 끝났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麗나 離는 바로 그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동원된 한자일 개연성이 큰 것이다. 일본어로도 고구려는 ‘고쿠리’로, 역시 마지막이 ‘리’로 끝난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리를 제외하고 고구려와 고려의 麗는 왜 ‘리’가 아니라 ‘려’로 발음하는 걸까. 

세종대왕은 1443년 한글을 창제하고 2년 뒤인 1445년 그 한글로 된 첫 책 ‘용비어천가’를 완성한다. 조선왕조의 창업을 기린 용비어천가 제6장에 ‘麗運이 衰ㅎ、거든’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고려의 운이 다 쇠퇴하였음으로’라는 뜻의 이 표현에 한문주석이 달려 있다. ‘麗音离高麗也.’ ‘麗는 리로 발음하고 高麗를 말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고려’로 읽지 말고 ‘고리’로 읽으라는 소리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여러 이유 중에는 혼란스러운 한자음을 표준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는데 그 사대부의 필수교양이 한시였다. 한시를 지으려면 특정한 자리에서 특정한 소리를 반복하는 압운(押韻)에 능통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당나라 때 발음 기준으로 중국어 4성 체계에 따라 분류한 106운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사대부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데다 명나라 때이던 당대의 중국어 발음 및 성조와도 달라 혼란이 컸다. 

세종은 이를 바로잡는 데 한글을 활용했다. 1446년 한글이 반포되고 2년 뒤인 1448년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인 ‘동국정운’이 완성됐다. 한자 발음을 한글로 통일해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麗는 거성(빛날 려)일 때 ‘례’, 평성(나라이름 리)일 때 ‘리’로 발음한다고 돼 있다. 

중국에서 이런 발음 차이는 ‘강희자전’(1716)이 통용되던 청나라 시절까지 이어졌다. 강희자전에도 나라 이름으로 쓸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면서 그 예로 高句麗와 高麗를 들고 있다. 현대 중국어에선 둘 다 발음이 ‘리’로 통일됐지만 거성과 평성이라는 성조를 통해 의미에 차이를 두고 있다.


용비어천가도, 박지원도 ‘고리’가 맞다 했다

고린내의 어원을 다룬 ‘열하일기’(위)와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비.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고린내의 어원을 다룬 ‘열하일기’(위)와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비. [사진 제공 · 서길수 교수]

한국에선 조선 세종 때까지만 해도 ‘례’였던 발음이 그 후 ‘려’로 바뀌었다. 그와 맞물려 고리를 고려로 발음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18세기 조선 정조 때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옥편 ‘전운옥편(全韻玉篇)’을 보면 ‘빛날 려’와 ‘동쪽나라 리’로 구별하면서 '리'로 발음할 때 예로 高麗를 들고 있다. 18세기 이전에 ‘례’가 ‘려’로 바뀌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고리'의 경우 대다수 언중이 그 전부터 ‘고례’나 ‘고려’로 발음했을 개연성이 크다.

15세기 간행된 용비어천가 시절부터 고리로 발음하라고 지적한 자체가 그만큼 고례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 후의 인물인 성현(1439~1504), 이익(1681~1763), 안정복(1712~1791), 박지원(1737~1805), 이덕무(1741~1793)가 모두 고리로 발음해야 한다는 기록을 남긴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1525년 간행된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고려 국호가 들어간 명나라 사신의 한시 각운을 두고 펼쳐진 토론 내용이 실려 있다. 용재가 국호로 쓸 때 麗는 평성(리)인데 거성(려)의 압운에 맞췄기에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반론이 제기되는데 고려의 국호가 ‘산은 높고 물은 곱다’는 뜻의 산고수려(山高水麗)의 준말이라는 것이다. 이익은 ‘성호사설’에 이런 통설이 억측에 불과하다며 고구리와 고리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사행단을 따라 다녀온 뒤 쓴 ‘열하일기’에서 ‘고린내가 난다’는 우리말 표현이 중국인이 고려를 비하하려고 쓰기 시작한 ‘高麗臭’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악취가 난다는 뜻의 형용사 ‘고리다’ 역시 고리라는 나라 이름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을 엿보게 된다. 어쩌면 ‘고리타분하다’는 말도 조선시대 들어 고려시대를 비하해 쓰던 표현이 굳어진 것일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이름부터 찾아줘야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구려의 본디 이름 고구리’와 ‘장수왕이 바꾼 나라이름 고리’. [지호영 기자]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구려의 본디 이름 고구리’와 ‘장수왕이 바꾼 나라이름 고리’. [지호영 기자]

이 같은 내용은 고구려 연구가로 유명한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구려의 본디 이름 고구리’와 ‘장수왕이 바꾼 나라이름 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 교수가 2007년 발표한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완하고 확장한 것이다. 중국 25사와 옥편이 모두 구리-고구리-고리로 이어지는 나라 이름을 리의 음가로 통일되게 표기했으며. 이는 그 나라 사람들의 발음에 맞춘 것임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고구려라는 국호가 고려로 바뀐 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 평양성 천도 이후일 개연성이 높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실제 중국사서에선 고려가 건국되기 전 고구려 시절 이미 2개의 국호가 혼재돼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정년퇴직한 후 “삶과 죽음에 대해 공부하겠다”며 머리 깎고 3년을 강원도 산사에서 보내다 환속한 서 교수는 이 책 2권을 시작으로 2021년 6권이 목표인 ‘고구리·고리사 연구 총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4년 육종암에 걸렸다 2019년 4월 완치 판정을 받은 그는 남은 생애를 총서 집필에 바치겠다며 지난 연말 출판기념회를 겸해 ‘살아서 하는 장례식’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며 동북공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도 넋 놓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워 다시 고구리·고리사 연구에 뛰어들었다”면서 “한국사 교과서부터 고구리와 고리라는 이름을 되찾아줘야 통일코리아의 국호를 만들 때도 당당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주간동아 2020.01.03 1221호 (p9~11)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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