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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4차원 토크 ③

“다들 쫄지 마!! ‘무데뽀’ 정신으로 가는 거야”

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태용의 정신승리 이야기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다들 쫄지 마!! ‘무데뽀’ 정신으로 가는 거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군대 가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도, 인생의 목표도 없이 클럽 다니며 노는 게 일이었다는 그는 스스로 그 시절의 자신을 “히피였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콘텐츠 삼아 8만 구독자를 가진 1인 유튜버로 성장한 김태용(30) 씨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가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무기로 시장을 구축한 유명 크리에이터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길 없는 길을 ‘무데뽀(막무가내) 정신’으로 개척한 ‘청년 정신’의 소유자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때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다고 한다. “미대 진학을 꿈꿨지만 실패하고 아버지 권유로 동국대 회계학과에 들어갔다. 학점은 2.7. 경영학부 330명 가운데 뒤에서 13등이었는데 ‘어떻게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12명이나 있을까’ 그게 신기했다.” 

‘꼴찌였다’는 걸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며 깔깔 웃는 앳된 얼굴이지만, 기자 눈에 들어온 건 환한 웃음 속에서 매섭게 빛나는 가늘고 긴 눈매였다. 한번 꽂히면 직진하는 저돌성은 아마도 저 눈매에서 나오리라. 무기력한 청춘이 많다고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한 패기 어린 청춘도 많다는 생각에 안도와 희망이 생긴다.


인생을 바꾼 스티브 잡스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은 살아서의 업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도 그들의 영혼과 정신은 살아 있는 자들의 운명을 바꾼다. 스티브 잡스도 그런 점에서 태용의 인생을 바꾼 영혼이었다. 

“군대 상병 시절인 어느 날, 잡스가 죽었다는 뉴스가 신문 방송을 도배했다. 잡스라는 사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종교지도자도 아니고 자선사업을 많이 한 기업가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군대 친구 가운데 잡스 광팬이 있었다. ‘오늘은 인류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니 군대 안에서 둘이 함께 제사를 지내자’며 내무반에서 사과를 하나 가져오더니 제사상을 만들어 절을 하더라. 나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 



본래 아티스트를 꿈꿨다는 태용은 “‘창조적인 사람’도 세상이 이렇게 기억해줄 수 있구나 하는 내적 충격을 경험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잡스에 관한 책은 물론, 동영상을 닥치는 대로 읽고 보며 파고들었다. 잡스의 컴퓨터가 예술품으로 인정받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공산품도 예술품이 될 수 있고 예술가도 기업인이 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무조건 “만나주세요”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그는 제대하자마자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성공한 기업인들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회사 홈페이지에 무작정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답이 온 곳은 한 곳도 없었다. 

“30~40군데 보냈을 무렵 방법을 좀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만나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 같은 곳에 ‘당신 회사의 광고 카피나 신제품 전략이 소비자에게 전혀 어필하고 있지 않다. 마케팅 포인트를 알려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기적적으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막상 만나는 자리에 군에서 갓 제대한 어린애가 나타나니까 황당한 표정으로 그냥 일어나 나가버리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패기가 맘에 든다고 프로젝트를 주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케팅 전략을 짜주고 약간의 돈을 벌기 시작한 게 그즈음이었다. 바깥에서 보던 기업들의 세계를 안에서 들여다보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의 어려움도 알게 됐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그들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2012년 9월 복학해 학교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마침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바람이 불어 아이디어가 좋으면 정부 지원금이 나오던 때였다. 첫 사업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온라인상에서 파는 온라인 갤러리 사업이었는데,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작품을 휴대전화 케이스나 가방에 프린트해 작가와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마침 동국대가 청년창업선도학교로 알려진 때라 창업 열기가 뜨거웠다.” 

첫 사업은 그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온라인 유통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 4곳을 열고 수출도 시작했다. ‘서서히 독자적으로 큰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평소 알고 지내던 가구소재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협업하자며 동업을 제안해왔다. 하지만 1년 만에 망했다.


350만 원 들고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KMONG]

[KMONG]

“한마디로 자만했다. 가구사업이 곧 물류사업이라는 것을 몰랐고,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치였다.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계속 터졌다. 번 돈 다 까먹고 빚이 생길 때쯤 과감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접었다.” 

복학하고 1년을 재고품 ‘땡처리’로 시간을 보냈다. 대학문을 나선 스물여덟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취업은 싫고 사업하자니 겁도 났다. 문득 “답이 보이지 않으면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해서 향한 곳이 미국 실리콘밸리였다. 아르바이트 급여 350만 원이 통장에 입금되자마자 무조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후 시작된 그의 실리콘밸리 취재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로 연결된 세상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학연, 지연, 혈연 하나 없이 영어도 짧은 그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카메라 하나 들고 ‘미국은 처음입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실리콘밸리를 취재하기 위해 갑니다. 4차 산업혁명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와 현지 한국인 카페에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만남과 모임이 이뤄졌고, 일도 주어졌기 때문이다. 

“공항에 내려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에어비앤비 앱(애플리케이션)을 켜는 것으로 시작했다. 제일 싼 지역을 검색하다 1박에 5만 원짜리 8인실 숙소를 찾아냈다. 기차 타고 1시간 가는 웨스트오클랜드라는 곳이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갱영화에서나 나오는 슬럼가였다. 한마디로 분위기가 ‘쎄했다’. 다음 날 e메일로 연락이 왔다. 나의 영상과 메시지를 본 한 핀테크(금융+기술) 회사의 디자이너였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내게 딱 실리콘밸리 스타일이라며 용기를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도전에 정말 관대한 곳이었다.” 

그는 태용에게 “소파에서라도 잘 의향이 있으면 친구 집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데일리시티라는 곳이었는데 태용은 거기서 또 한 사람의 은인을 만난다. 

“영화 공부를 하는 한국 유학생이었는데 카메라 기법을 그분으로부터 배웠다. 그전까지 나는 조리개 개념도 모르던 생 초보 카메라맨이었다. 1차 인터뷰 샘플 영상을 만든 뒤 자신감이 생기자 국내 언론사들에 무조건 e메일을 보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 사이트에 링크해줄 수 있겠느냐는 거였는데 몇몇 언론사로부터 ‘오케이’ 답이 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인터뷰 영상은 ‘리얼밸리 시즌1’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유튜브에 올라갔다. 스타트업 창업자, 개발자부터 음식점 사장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일하는 한인 청년 17명의 삶과 생각을 담았다.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콘텐츠화한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유튜브 구독자 8만 명의 현재가 만들어진 발판은 이렇게 탄생됐다. 그는 45일간 체류하면서 낮에는 찍고 밤에는 영상 편집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태용이 실리콘밸리에서 얻은 것은 뜻밖에도 ‘힐링’이었다. 겉으로는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그였지만 내면에는 혼란과 방황이 컸던 그를 넉넉하게 품어줬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온통 도서관에 처박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고 왜 고민이 없었겠나. 다들 나를 ‘왜 그렇게 사느냐’는 한심한 표정으로 보는 분위기다 보니 우울했고, 내 인생도 이렇게 실패하고 마는 건 아닌지 막막했다. 실리콘밸리는 달랐다. ‘지금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혹은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아, 그래?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반응이었다. 실패에 관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일단 시작해보라고 격려하는 사람이 널려 있다 보니 긍정과 희망 에너지가 충전되고 ‘내가 가는 길이 맞구나’ 하는 확신에 용기도 생기고 위안도 받았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은 기업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정보 자체도 많지 않다. 미국은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가 대학 강의를 자주 하고 미디어에도 자주 나와 소비자와 매우 친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의 좌절, 고뇌, 성공 스토리를 자주 접하게 됐다. 우리는 삼성이 어떻게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됐는지, 네이버 창업 스토리는 어떤지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기업가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면 청년에게 도움이 많이 될 텐데, 그런 콘텐츠가 너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미디어에서 출발해 현재 다양한 기업 광고 콘텐츠 제작회사로 성장하게 된 구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식품배송회사 마켓컬리 새벽배송 광고나 이마트 물류체험 광고를 의뢰받아 유튜브에 올려 호평받았다. 

창업에 따른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는 한국의 분위기와 문화에 아쉬움을 많이 토로했다. 특히 어른 세대가 가진 불안이 자식 세대로 그대로 전이돼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부모 세대는 본인들이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자식도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자기들처럼 힘들게 살까 봐 걱정이 크다. ‘기존 질서에 들어가지 않으면 벼랑 끝이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내 길을 개척하며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몰라 일단 걱정부터 한다.”


청년을 ‘쫄게’ 하는 한국

창업에 대해서도 정보를 주기보다 두려움을 안겨주는 분위기가 청년을 ‘쫄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업에 대한 생각도 세대 차가 크고 정보가 너무 없다. 무조건 빚을 당겨쓰고 위험한 베팅을 하는 게 사업가의 배포고 기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쉽게 대박을 노린다든지, 위험에 대한 대비 없이 연대보증을 선다든지, 시장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없이 섣부르게 내지르다 망한 경우들만 보고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사업도 교육이나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단계별로 위험을 줄이고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체계적인 접근을 청년들에게 알려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인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사업이야말로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회공헌이나 기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자칫 돈 벌었다고 자랑하느냐는 질시와 비난 심리가 팽배해 용기를 못 낸다는 분도 많다. 학교에서도 기업인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고, 시장이나 경제에 대한 정보를 많이 못 얻어 아쉬웠다.” 

그는 부모세대가 청년들에게 ‘무조건 도전하라’거나 ‘얼마나 힘드냐’는 위로보다 구체적인 정보나 조언을 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빚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겐 도전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이런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보나 관점이다. 학자금 대출을 많이 끼고 있으면서 부모의 노후 걱정도 해야 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자아실현을 해나갈 수 있는지, 재무 설계나 커리어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말이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몇 년 차에 연봉이 얼마라는 게 기업 정보의 대부분인데, 입사하면 뭘 배우고 그걸 통해 어디로 또 향해갈 수 있는지 로드맵을 그려나갈 수 있게 현실적인 조언이 많았으면 좋겠다.”


결국은 고품질 콘텐츠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그에게 1인 미디어로서 성공 팁도 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차별성이다. 자체 광고 시스템을 가진 대기업들이 나에게 광고 제작을 의뢰하는 것은 스타트업 창업자,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특정 구독자 층을 본 것이다. 내 채널 시청자 층이 대부분 구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단지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는 구독자의 질이 있다. 1인 미디어가 대세라고 무조건 앞뒤 안 가리고 조회수만 높여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래 가지도 못한다. 조회수나 구독자 수를 신경 안 쓰고 총 시청 시간, 마지막 몇 분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놓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승부는 콘텐츠 품질에서 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그에게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학력 콤플렉스는 없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콤플렉스는 없는데 부러운 건 있다. 정보와 네트워크다. 삐딱하게 볼 일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치가 다르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까지다. 기업 생태계도 많이 달라졌다. 매우 이성적이다. SKY 출신이라 뽑는다? 투자해준다? 이런 거 없다. 고졸에게도 기회가 많다. 정말 실력이 중요하다. 정보나 네트워크 격차는 학교에 따라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인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누가 요즘 청년을 무기력, 무개념이라 한탄했던가.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중국, 동남아 창업가들로 콘텐츠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생태계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그의 ‘무데뽀’ 정신이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주간동아 2019.08.30 1204호 (p48~53)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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