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그의 노래, 그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

신해철 사망 1주기에 부쳐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11-02 11: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의 노래, 그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
    지난해 10월 27일 저녁, 나는 제주도 협재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멍했다.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인근 포구로 나갔다. 한 손에는 소주 몇 병을 담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칠흑의 바다를 보며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를 듣고 시커먼 하늘을 보며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나발로 들이켰다. 취했다. 계속 그의 음악을 들었다. 절로 흐르던 눈물이 통곡처럼 일렁였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늦도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술주정하듯 글을 올렸다.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그들도 울고 있었다. 그날 밤새도록 온라인에는 슬픔의 물결이 흘렀다. 일종의 국장(國葬)과 다름없었다.

    1년이 지났다. 1주기가 됐다. 다시 추모가 이어진다. 그의 대표곡들을 모은 음반이 넉 장의 LP(사진)로 제작돼 3000장 한정으로 공개됐다. 비교적 고가였음에도 예약만으로 모두 팔렸다. 지난 연말 신해철이 천국에서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 화제를 모았던 석정현은, 1주기를 즈음해 다시 신해철이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 지미 헨드릭스, 존 레넌 등 요절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내놓았다. 이 그림은 SNS에서 폭발적으로 리트위트되고 공유됐다. 윤종신은 매월 내놓는 싱글 ‘월간 윤종신’ 11월호 특별반을 발매했다. 신해철의 솔로 1집 수록곡 ‘고백’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신해철과 윤종신의 인연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무한궤도는 이듬해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해체한다. 팀을 이끌었던 신해철은 90년 ‘고백’이 담긴 첫 솔로 앨범을 냈고 무한궤도 앨범에서 건반을 쳤던 정석원은 장호일과 015B를 결성, 역시 90년에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015B의 이 앨범에서 신해철은 ‘슬픈 이별’과 ‘난 그대만을’의 객원보컬로 참여했다. 친구 소개로 정석원을 알게 된 윤종신 역시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를 부르며 박학기의 계보를 잇는 미성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91년, 신해철은 윤종신의 데뷔 앨범에 실린 ‘떠나간 친구에게’를 함께 불렀다.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신해철은 록, 일렉트로닉, 재즈 등 여러 장르를 섭렵했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음악의 길을 걸었다. 손석희도 인정하는 논객이자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자리를 굳혔다. 윤종신은 1990년대 발라드의 대표주자를 거쳐 늦깎이 예능인이자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수장으로서 후배 음악인을 양성하는 ‘사장님’이 됐다. 가는 길은 달랐지만 둘 다 음악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2014년 종합편성채널 JTBC의 신생 프로그램 ‘속사정 쌀롱’이었다. 신해철과 윤종신 외에도 진중권이 같이 출연했다는 사실은 공교롭다. 윤종신이 음악인으로서 동료였다면, 진중권은 논객으로서 동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대중의 인식 안에서는.

    윤종신은 ‘고백’의 리메이크를 최대한 신해철 목소리와 비슷하게 시작한다. 서서히 자신의 감성을 입혀나간다. 화가 서원미가 신해철의 초상화를 그려나가는 과정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맞물려 감정은 서서히 북받쳐 오른다. 1년 전, 협재 포구에서 느꼈던 그 기분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유희열이 발매를 앞둔 토이 7집에 급하게 실었던 신해철 추모곡 ‘취한 밤’에 담긴 그 거친 북받침과 연결된다. 매년 이맘때, 신해철의 노래를 듣고 싶어질 것이다. 신해철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도 듣고 싶어질 것이다. 밤바다와 바람이, 늘 생각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