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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흙수저도 서러운데…건보료 독촉에 두 번 운다

건보료 체납으로 빚 대물림, 부과체계 개편안은 지지부진

흙수저도 서러운데…건보료 독촉에 두 번 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A(7) 양과 B(9) 군에게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국민건강보험료(건보료)를 부과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부모 없이 미성년자로만 구성된 단독가구라도 소득과 재산이 있으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서 정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연대 납부의무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건보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A양과 B군은 직업과 소득이 없어 건보료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A양의 큰아버지는 “4인 가족 중 아이 혼자 살아남았다. 동생이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아이를 돌보는 데 전념하고 있다. 참사로 가족을 잃고 불안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아이 앞으로 상속된 재산이 있을 테니 건강보험료를 내라는 건보공단의 태도가 황당했다”며 “언론에 나올 때만 주춤할 뿐 근본적으로 법이 바뀌지 않는 한 건보공단이 또다시 보험료를 독촉해올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세월호 사고 고아에게도 건보료 부과

건보공단 관계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시행령과 규칙에 따라 부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복지부)에서 관련 시행령을 고쳐 입법예고했다”고 해명했다. 복지부는 해당 내용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고쳐 건보료를 매기지 않도록 했다. 개정안은 부모가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 재산이 있더라도 소득이 없으면 보험료를 내지 않게 하는 단서 조항을 뒀다.

문제는 건보공단의 무리한 건보료 추징 사례가 이것만이 아니며, 그로 인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불합리한 징수 관행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7월 기준으로 건보료를 체납 중인 저소득 가구 수는 98만 가구, 체납금은 1조2000억 원으로 생계형 체납자는 줄지 않고 체납금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에 따르면 1월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 적용 인구는 지역가입자 1483만2000여 명(29.6%), 직장가입자 1481만6000여 명(29.6%),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2044만8000여 명(40.8%)이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산정하지만 자영업자나 일용직 근로자 등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과 재산, 자동차, 가구원 수, 생활수준 등을 따져 건보료를 산정한다.

두 딸과 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을 대신해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김모(49) 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80여만 원이다. 큰딸이 대학을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매달 50여만 원을 벌어 생계에 보태지만 130만 원은 네 식구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의 남편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연명치료를 포기했다. 수년간 체납한 건보료 1500여만 원은 이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살기 급급해 체납금 납부는 엄두도 못 낸다. 밀린 건보료 외에 매달 내야 하는 건보료도 이들 가족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김씨는 구제 방법이 없는지 건보공단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그때마다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에게 토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가 보유한 토지는 선산으로, 땅값이 500여만 원에 불과해 팔 수 없고 재산으로서 가치도 크지 않다. 결국 지난해 건보공단은 고교생 둘째 딸의 급식비 통장까지 압류했다.

저소득층 옥죄는 연대납부의 덫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는 지역가입자 가구 구성원 전원이 연대납부 의무를 지는데, 부모가 건보료를 체납하면 자녀의 예금과 부동산이 압류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보료 체납으로 압류 조치를 받은 20대의 사례는 3만8980건, 압류 금액은 615억 원에 달하며 올해도 7월 말까지 2만8220건, 438억 원에 이르렀다. 대다수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었다. 건보료 체납으로 인한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압류 금액은 2013년 33건에 2억 원, 2014년 48건에 2억 원, 2015년 7월 말까지 65건에 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한 회사에 취업한 이모(28) 씨는 입사를 앞두고 통장이 압류되는 바람에 입사 취소 통보를 받았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뒤 20여 년 가까이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이씨.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동안 체납한 건보료와 연체금이 이씨에게로 왔고, 이 때문에 통장이 압류된 것이다. 20여 년 만에 아버지로부터 돌아온 2000여만 원의 빚. 상속 포기를 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오랜 기간 연락 없이 살았기에 사망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상속 포기가 불가능했다. 건보공단에서는 건보료를 24개월로 나눠 낼 수 있게 안내했으나 어렵게 합격한 회사는 입사가 취소된 상태였고, 직업이 없는 그가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큰 액수였다. 결국 이씨는 건보료 납부를 포기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다.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상임활동가는 “건보료 체납자의 90% 이상은 생계형 체납자다. 정부와 건보공단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독촉만 하고 있다. 건보료를 6회 이상 장기 체납해 건강보험급여가 제한된 사람도 많지만, 급여 제한 기간 중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발생하는 부당이득금이 부담스러워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많은 생계형 체납자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째 개선되지 않는 연체료 부과체계도 서민에게는 골칫거리다. 전기·수도요금이 일할 단위로 연체료를 징수하는 것과 달리 4대 보험료는 월 단위로 연체료를 징수해 하루만 연체해도 한 달 치 연체료를 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은 납부 기한이 지난 날로부터 체납된 건보료의 3%를 연체료로 부과하고, 1개월이 지날 때마다 1%씩 가산해 최고 9%까지 물리도록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 연체료를 월 단위 계산 방식에서 일할 계산 방식으로 변경 징수하는 개선안을 복지부와 건보공단 등에 권고했고, 4대 보험 연체료를 월 단위에서 일할 방식으로 바꾸는 관련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에 발의됐으나 계류 상태다.

정부, 단계적 개편안 마련 검토

복지부는 건보료 부담의 형평성을 맞추고자 2013년 7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꾸리고 장기간 회의를 거쳐 소득 중심으로 개편안을 내놓으려다 백지화했고 논란이 일자 재논의하는 등 번복을 거듭했다. 복지부는 10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통해 ‘부과체계 기획단에서 제시한 개편 방향과 목표를 근간으로 하되 국민적 수용성·형평성 제고를 위해 중·장기 로드맵 제시를 통한 단계적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가소득 폐지 및 최저보험료 도입을 우선 추진하되, 최저보험료 도입으로 저소득층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료 폐지는 중·장기적으로, 정률제 방식 전환 등은 점진적으로 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개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부과체계에 한 번 손을 대면 영향을 받는 대상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서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며 발견되는 문제점을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건보료 부과체계가 달라지면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해야 하기에 시뮬레이션은 필수적이지만 지난해 부지런히 진행했어야 하는데, 내년에는 총선도 있는 만큼 추진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보료 연체율 부과체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국세를 연체하지 않게 하려는 의미에서 세금 연체료가 일반 금융 연체료보다 센 편이다. 월 단위, 일 단위를 구분하기보다 연체이율의 적정선을 어디로 할지 논의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집 3채 있어도, 재산이 8억9999만 원이어도 건보료 안 내

국민건강보험료 민원 지속적으로 증가, 지난 2년간 1억2000만 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콜센터를 통해 2년간(2013~2014) 접수된 국민건강보험료(건보료·자격 관리와 보험료 부과 및 징수 등) 관련 민원은 1억1768만8621건이다. 건보료 민원은 2013년 5728만9747건에서 지난해 6039만8874건으로 310만9127건 증가했다.

건보료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건보료가 책정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인 조모(61) 씨는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대표지만 월급을 10만 원으로 신고해 매월 부담하는 건보료가 8380원에 불과했다. 반면 거주할 곳이 없어 노숙자로 지내는 최모(84) 씨는 폐허가 된 상가건물과 선산이 있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 소득이 없음에도 건보료로 매월 3만6150원을 내야 했다. 이런 형평성 문제 때문에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남인순 의원은 “지난해 건보공단에 제기된 민원 7634만 건 가운데 자격, 부과, 징수 등 건보료 관련 민원이 6039만8874건으로 대다수였고, 올해 건보공단 각 지사에는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항의가 가장 많았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놓고 정부와 여당이 늑장을 부리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늦어도 10월 초까지는 법제 개선 방안이 나와야 정기국회 내에 논의할 수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고 주장했다.

피부양자 자격을 잃어 지역가입자가 된 사람이 과도한 건보료 탓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국민건강보험법의 ‘피부양자 자격 상실기준’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에 따른 소득이 단 1원이라도 있으면 피부양자에서 제외된다.

화물차 기사인 이모(66) 씨는 올해 초 밀린 건보료 70여만 원을 내라는 독촉고지서를 받았다. 화물차 기사로 사업자등록을 한 이후 아들 앞으로 돼 있던 피부양자 자격을 잃어 건보료로 매월 24만 원을 내게 된 것이다. 화물차 기사로 벌이가 좋지 않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식당을 운영하던 이씨는 이후 식당이 팔리지 않아 월세 임대한 상태다. 자식들의 도움으로 빚 일부를 갚았지만 아직 2억5000여만 원 빚이 있고 매월 대출이자를 내야 한다. 이씨는 “지금도 자식들이 도와줘 은행이자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아내와 합친 연 실소득이 316여만 원인데 건보료로 연 284만 원을 내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건보료 폭탄을 해결해달라”는 민원을 보건복지부에 냈으나 묵묵부답이다.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제도는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 자녀를 부양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나, 기준이 느슨해 일부 가진 자가 혜택을 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행 피부양자 인정기준은 금융소득 연 4000만 원 미만, 연금소득 연 4000만 원 미만, 재산 9억 원 미만 등이다. 그러나 금융소득 연 3999만 원, 연금소득 연 3999만 원, 재산 8억9999만 원이어도 피부양자로 등록 가능한 것이 맹점이다. 건보공단이 새정연 남인순, 양승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적용 인구 가운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즉 건보료를 내지 않는 인구(2044만8000여 명, 전체의 40.8%) 중 주택 보유자는 404만7400여 명에 달했다. 보유 주택 수별로 보면 1채 보유자가 267만6067명, 2채 이상 보유자가 137만1352명, 3채 이상 보유자가 67만9501명, 5채 이상 보유자가 16만1463명이었다.




주간동아 2015.10.12 1008호 (p28~30)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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