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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준비해서 탈락이라고?”

직무 관련 없는 스펙은 감점 원인인 ‘자충수펙’ … ‘극기 · 이색 경험’ ‘한자 · 한국사 자격증’ 등 무용지물

  •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열심히 준비해서 탈락이라고?”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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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준비해도 안 되는 건가 봐요.”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박모(26) 씨의 말이다. 박씨는 7년 전 서울 유명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는 청년실업이 대표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그의 지상 목표는 휴학이나 졸업유예 없이 한번에 취업하는 것. 공모전 참여가 어려운 1, 2학년 때는 대외활동을, 군에 다녀온 후 3, 4학년 때는 공모전과 어학점수, 각종 자격증을 따며 보냈다. 당연히 학점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 3학년 처음 취업준비 스터디를 시작했을 때 스터디원들은 그를 ‘스펙 깡패’라 불렀다. 그래서 내심 졸업 전 취업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문은 높았다. 최종 면접까지 여러 번 올라갔지만 첫해 취업에는 실패했다. 몇 년 더 취업준비를 하던 그는 더는 화려한 스펙이 이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 다다익선이던 스펙이 이제는 직무에 적합하지 않으면 유용하지 않게 됐다. 일부 회사에서는 직무와 관련 없는 스펙을 이력서에 적으면 감점 등 불이익을 주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에 최근에는 취업준비생 사이에 스펙을 쌓은 것 자체가 자충수라는 뜻의 ‘자충수펙’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스펙 쌓기를 게을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일자리가 너무 없어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직무경력을 원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사실상 경력직 같은 신입사원을 뽑겠다는 것.


“직무에 맞지 않으면 자충수펙”

박씨의 목표는 대기업 입사. 3년 전인 대학교 3학년 시절, 그는 당시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선배들은 “자기소개서를 풍부하게 만들려면 에피소드로 쓸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봉사활동이나 체력적, 정신적으로 극기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만 해도 ‘N종 스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학벌, 어학연수, 봉사활동, 대외활동 등 매해 취업에 꼭 필요하다는 스펙의 가짓수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그는 방학에도 쉴 틈이 없었다. 광고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공모전에 여러 번 참가해 입상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봉사활동을 했고, 여름방학 때는 극기 경험을 위해 국토대장정까지 떠났다. 

박씨 외에도 청년 대부분이 취업을 위해 다양한 스펙을 쌓고 있었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취업준비생 21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9.2%가 ‘적당한 취업준비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취업포털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53.6%·복수응답), 다양한 스펙 쌓기(19.1%) 등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학생 임모(25) 씨는 “이공계를 제외한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은 당장 채용하는 곳이 많지 않다. 가능한 직군에는 전부 지원할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많은 스펙을 쌓으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렇게 스펙 쌓기 등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만큼 취업이 어렵기 때문. 4월 17일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리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청년층(15~29세)에서 신규 대졸자 실업률은 18.3%로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9년 청년층 신규 대졸자 실업률은 14%였다. 8년 만에 청년 실업률이 4.3%p 오른 셈. 같은 기간 청년층 전체 대졸자 실업률도 7.3%에서 11%로 3.7%p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준비생의 스펙이 대부분 무용지물이 됐다. 지원하는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스펙은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10월 200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 시 불필요한 스펙을 갖춘 지원자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7%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스펙 1위는 ‘극기, 이색 경험’(15.5%·중복응답)이 차지했다. 뒤이어 ‘한자, 한국사자격증’(12.8%), ‘석·박사 학위’(12.2%), ‘공인영어성적’(8.8%), ‘해외 유학·연수 경험’(3.4%) 등이었다.


“직무 적합한 스펙이 뭔데?”

취업박람회를 찾는 취업준비생들. [뉴스1]

취업박람회를 찾는 취업준비생들. [뉴스1]

인사담당자들이 이 같은 스펙을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직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58.1%)이었다. 한편 다른 담당자들은 ‘변별력이 없는 스펙’(23.3%), ‘자격 조건을 과하게 초월함’(12.2%)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응답 기업 가운데 21.6%는 ‘불필요한 스펙을 갖춘 지원자에게 감점 등 불이익을 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3년간 취업준비를 해온 준비생들은 이 같은 소식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취업준비생 정모(25·여) 씨는 “3~4년 전만 해도 뭐든지 잘하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학 생활 내내 다양한 스펙을 쌓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필요 없고 오히려 불이익을 준다니, 그간 취업준비한다며 들인 시간과 노력이 부정당한 느낌”이라고밝혔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필요한 스펙으로 꼽은 것은 ‘인턴 경험’(24%)이었다. 뒤이어 ‘특정학과’(13%), ‘창업 및 사회활동’(11%)이 차지했다. 해당 스펙이 꼭 필요한 이유로는 ‘실무에 필요한 스펙이어서’(61%·복수응답)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조직 적응력을 알아볼 수 있어서’(24%), ‘지원자의 성실성을 가늠할 수 있어서’(23.5%)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최근 공정한 채용을 강조하는 분위기라 서류상 스펙보다 지원자의 능력에 집중하는 편이다. 인턴 등 직무역량을 직접 알아볼 수 있는 스펙이 각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무에 맞는 스펙만 쌓아도 된다면 취업준비생의 부담은 줄어들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턴도 신입사원 채용과 유사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 취업준비생 김모(28) 씨는 “기업이 인턴을 채용할 때도 직무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 직무 경력을 쌓기 어려우니 인턴 기회를 잡으려 취업 스터디 등에 목을 매느라 취업준비 기간만 길어진다. 신입사원 채용 시 직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국 기업이 원하는 사람은 신입사원 연봉으로 입사할 타사의 경력직이라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인턴이 쉽지 않으니 전공을 살려 관련 직무에 지원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취업 깡패’로 불리던 공학계열까지 전공 하나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통계청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청년의 체감실업률은 21.8%, 청년층 신규 졸업자의 체감실업률은 33.6%를 기록했다. 체감실업률이란 시간제 근로자 중 추가 취업이 가능한 사람과 잠재적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 등을 실업률에 포함한 수치다. 대졸자 전공별로는 역시 인문·사회계열의 체감실업률이 40.2%로 가장 높았다. 그 뒤는 공학계열이었다. 공학계열의 체감실업률은 40.1%로 인문·사회계열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전공 불문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
 
그렇다고 창업하자니 나이가 걸린다. 2016년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입사원 채용에 남자는 32세, 여자는 30세라는 연령 상한선이 있기 때문.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창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데 걸리는 기간만 해도 최소 1년이다. 여기에 실질적 성과까지 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게다가 창업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이익을 내보겠다고 시작하는 것이다. 취업 스펙으로 쓰려고 창업한다는 발상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모 출중하고, 어리고, 학벌 좋은 사람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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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능력이 취업에 크게 작용한다지만 여전히 서류도 중요한 요소다. 각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 때 스펙 등 인적사항을 전혀 보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 실무능력 위주의 채용문화를 확산하고자 고용노동부는 사진, 성별, 출신 학교 같은 항목을 제외하는 ‘표준이력서’를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에서는 이력서로 지원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월 52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1.9%가 ‘표준이력서 도입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응답 기업의 88.4%는 입사지원서에 개인 신상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각 기업이 원하는 신상을 갖춘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이는 입사지원서에 어떤 내용을 기입하는지를 살피면 쉽게 알 수 있다. 입사지원서에 기입하는 신상 내용으로는 연령(82.4%·복수응답)이 가장 많았고 출신 학교(69.8%), 성별(69.8%), 사진(67.7%)이 뒤를 이었다. 외모, 연령, 학벌 등 대학 입학 후 노력 여부와 관련 없는 내용만 스펙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그렇다고 인적사항을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지원자가 개인 신상 항목을 충실히 적지 않을 경우 28.1%의 기업은 감점 처리했고, 13.1%는 무조건 탈락시켰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잘 태어나야 취업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대학생 이모(25)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채용 비리 관련 보도가 나오는 것만 봐도 많은 사람이 부모 혹은 친지의 영향력을 통해 취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경력 갖춘 신입사원’이라는 형용모순이니 결국 취업준비 등의 활동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취업 현실에 좌절하는 청년은 이씨 외에도 많았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지난해 한국, 중국, 미국, 일본 4개국 대학생 각각 1000명씩 4000명을 대상으로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 대학생의 과반(50.5%)은 청년의 성공 요소 1순위로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재능’(각각 45.3%, 35.4%)을 꼽았다. 미국 대학생의 23.4%는 ‘노력’으로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간동아 2018.05.30 1140호 (p28~30)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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